[빈집의 재탄생] 1947년 지어진 낡은 한옥, '24시간 열린 미술관'으로

정다움 2026. 3. 22. 06:4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1947년 지어진 이 한옥은 일본인이 살다가 떠난 뒤 수십 년 동안 방치됐지만, 현재는 '계림미술관'으로 재탄생해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예술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남대 미술동아리 '그리세' 회원들, 원형 보존해 2020년 탈바꿈
주민에게 열린 문화공간·예술가에게는 보금자리 역할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광주 동구 계림미술관 [촬영 정다움]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사람 떠난 한옥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사랑채'로 탈바꿈했습니다."

광주 동구 계림동 한 골목 어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낮은 담장 너머로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낡은 외관을 뒤로 하고 삐그덕거리는 미닫이문을 열어젖히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서로 다른 색의 나무판자를 덧대 리모델링한 마룻바닥에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1947년 지어진 이 한옥은 일본인이 살다가 떠난 뒤 수십 년 동안 방치됐지만, 현재는 '계림미술관'으로 재탄생해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예술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전남대학교 미술동아리 '그리세'를 거쳐 간 창립 멤버와 예술가 10여명이 주축이 돼 헌책방 거리에 자리한 가옥에 미술관을 조성, 2020년 1월 문을 열었다.

전통·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벽을 허물거나 공간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기존 가옥 형태를 유지한 채 전시 공간,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거주 공간을 별채에 마련했다.

역사 간직한 계림미술관 [촬영 정다움]

계림미술관의 매력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데 있다.

주민 누구나, 아무 때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출입문을 잠그지 않는다.

예술인들은 기한 없이 별채에 머물며 레지던스로도 활용하고 있다.

작품 활동으로 생긴 흔적을 지우지 않는 것도 특징인데, 예술가들이 사용했던 재료나 미완성 작품은 그 자체로 새로운 전시물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에는 진시영·정운학·박정용·김혜경 등 50여명 작가가 거쳐 갔으며 개관 이래 20차례 이상 전시가 열렸다.

천장에는 가옥의 시간을 간직한 '상량문'이 남아있다.

상량문은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리며 그 연도와 의미를 기록한 글로, 가옥의 탄생 배경이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는 문구를 담는다.

한자가 빼곡한 상량문에는 "하늘의 삼광에 응해 인간의 오복을 갖추게 하소서"라는 문장이 적혔고, 그 바람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뒤에도 유지되고 있다.

계림미술관 '상량문' [촬영 정다움]

계림미술관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채종기 관장의 역할도 컸다.

그는 아버지가 매입한 가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기억을 되살려 변신을 주도했다.

채 관장은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고, 예술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소로 기억됐으면 한다"며 공간에 쌓인 시간과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채 관장은 "출입문을 닫는 순간 이 공간도 죽는다고 생각한다"며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daum@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