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대상포진 백신의 반전] 치매 위험 20% 낮춘다… 염증 줄여 노화 늦추는 효과도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2026. 3. 22.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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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추고 노화 속도를 늦추는 데도 효과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사진 셔터스톡

대상포진 백신(Zoster Vaccine)이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영국에 이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수십만 명을 장기간 추적·관찰한 결과, 대상포진은 물론, 치매를 20% 줄이는 효과가 나타난 것. 치매는 조기 진단이 어렵고, 치료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데,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예방에 ‘꿩 대신 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파스칼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은 2월 6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랜싯 신경과학’을 통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이 캐나다 온타리오주 주민 46만여 명의 건강 데이터를 5년 반 동안 추적해 조사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은 미접종 사람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20% 정도 낮았던 것이다.

정책 변화가 찾은 뜻밖의 효과

치매는 기억력, 언어 능력, 판단력 등 인지 기능이 떨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후천적 장애다. 치매 환자의 약 3분의 2는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인데,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같은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퇴행성 질환이다.

제약사들이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없애는 항체 치료제를 출시했으나, 치매를 조기 진단할 방법은 없어 효과가 크지 않았다. 항체 치료제는 발병 초기 단계에만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치매 예방을 위한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은 대상포진 백신을 치매 예방 백신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1차 의료 기관에서 2017년1월 1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1만789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는데,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은 이 중 대상포진 백신 무료 접종이 가능한 연령대(만 65~70세) 전후에서 백신 접종자의 치매 진단 위험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보다 약 20% 감소한 사실을 발견했다.

(위)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사진 옥스퍼드대(아래) 영국 GSK의 유전자 재조합 사백신 싱그릭스. /사진 GSK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 건 영국에서 먼저 확인됐다. 앞서 2025년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셀’에 웨일스 주민 중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71~88세 고령자 28만여 명의 의료 기록을 7년간 추적·조사해,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은 사람은 미접종자보다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37% 줄었을 뿐 아니라, 치매 진단 위험도 20%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결과는 백신 부족 덕분에 확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웨일스 정부는 2013년 9월 대상포진 백신이 부족해지자 그해 79세가 되는 사람에게만 1년간 무료 접종 기회를 제공했고, 이미 80세를 넘은 주민은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른 요인에 상관없이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 임상시험’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진은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어 캐나다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사백신 판정승⋯ 치매 예방 효과 뚜렷

대상포진은 신경계에 잠복해 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질 때 다시 활동하면서 유발하는 신경 질환이다. 어릴 때는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수두가 되지만, 어른이 돼서 잠복한 바이러스가 활동하면 피부에 띠 모양 발진과 함께 극심한 신경통을 일으킨다.

현재 팔리고 있는 대상포진 백신은 약독화 생백신과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 백신(사백신) 두 종류다. 약독화 생백신은 살아 있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화해 만드는데, 세계 최초의 대상포진 백신인 미국 머크(MSD)의 조스타박스가 이 방식을 활용한다. 사백신인 유전자 재조합 백신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중국 햄스터 난소(CHO) 세포에 넣어 만든다. 세포를 배양하고 정제한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싱그릭스가 이 방식이다.

영국 웨일스에서 치매 위험을 줄였다고 확인된 대상포진 백신은 MSD의 생백신인 조스타박스였다. 하지만 조스타박스는 상대적으로 효능이 낮고 고령층에게서 면역 효과가 떨어져, 한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접종하고 있지 않다.

GSK의 싱그릭스는 대상포진은 물론이고 치매 예방에도 조스타박스보다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싱그릭스 승인 이후, 영국서 생백신(조스타박스) 접종이 중단된 것을 계기로 두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6년간 추적했다. 이어 2024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 따르면, 싱그릭스 접종자는 조스타박스 접종자보다 치매 진단까지 6개월이 더 걸렸다. 싱그릭스의 치매 예방 효과가 더 좋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생백신 역시 여전히 대상포진 백신으로서 장점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자체 개발한 대상포진 백신 스카이조스터는 2017년 시장에 진입한 후 MSD의 조스타박스 철수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싱그릭스는 2개월 간격으로 2회 접종해야 하지만 스카이조스터는 1회 접종으로 끝나고, 가격도 싱그릭스의 약 30% 수준이다.

대상포진 백신, 신경 염증 줄이고 면역 강화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USC) 김정기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노년학 저널: 시리즈 A’에 대상포진 백신이 노화를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 연구진은 70세 이상 성인 3884명을 대상으로 염증과 시간 경과에 따른 DNA 영향 등 일곱 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건강한 노화 점수를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염증 수치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낮고, 건강한 노화 종합 점수는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대상포진 백신이 어떻게 치매와 노화를 막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대상포진을 예방해 신경 염증을 줄이고, 면역 체계를 더 강화한 덕분이라고 여길 뿐이다. 겔트세처 교수는 “여러 국가에서 나온 결과를 보면, 7년 동안 새로 치매 진단을 받는 환자 5명 중 1명은 대상포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추정된다”고 했다.

겔트세처 교수 연구진은 젊은 층에게도 치매 방지를 위해 대상포진 백신 주사를 맞으라고 권장하려면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연 임상시험이 이뤄졌지만, 치매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 어떤 연령대에게 더 효과가 있는지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엄밀하게 설계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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