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에 ‘생활숙박시설’ 적혀 있는데 실거주 착오 주장 받아들일 수 없다” [허란의 판례 읽기]
[법알못 판례 읽기]

생활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고 분양계약을 체결했다가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수분양자들이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었다.
분양업체의 홍보 과정에서 ‘실거주 가능’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계약서와 확인서에 생활숙박시설임이 명시돼 있는 이상 착오를 이유로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숙 시행령 바뀌자 법정 다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월 29일 생활숙박시설 수분양자 4명이 분양업체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2025다217022)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의 원고들은 2021년 1~2월 서울 서초구 소재 생활숙박시설 ‘J’의 각 호실에 대해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합계 약 2억원을 납부했다.
계약에 앞서 피고 분양업체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유튜브 광고, 분양대행사 직원의 상담 등을 통해 “실거주와 위탁운영 선택 가능”, “오피스텔처럼 주거와 동시에 숙박시설로도 이용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홍보를 접했다.
원고 중 일부는 계약 전 분양대행사 직원에게 정부 규제 강화 가능성을 직접 문의하기도 했는데 직원은 “규제는 앞으로 분양하는 것에만 해당하고 지금 계약하면 상관없다”는 취지로 답하며 불안감을 없앴다.
그러나 계약 체결 직전인 2021년 1월 14일 국토교통부는 생활숙박시설을 주택 용도로 사용할 수 없도록 숙박업 신고 의무를 건축법 시행령에 명시하는 내용의 입법·행정예고를 했고 같은 해 5월 시행령 개정이 완료됐다.
이후 피고(분양업체)는 중도금 대출금 미변제를 이유로 2024년 4월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 전액을 몰취했다. 이에 원고(수분양자)들은 실거주 가능성에 대한 착오를 이유로 계약 취소와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광고엔 ‘실거주 가능’, 계약서엔 ‘숙박시설’
서울고등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가 광고와 상담을 통해 실거주 가능성을 광범위하게 홍보했고 규제 강화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도 이를 원고들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아 착오를 유발했다고 인정했다.
계약서상 면책 조항에 대해서도 원심은 유보적이었다. 피고의 광고·상담 내용과 결합해 볼 때 해당 조항은 ‘숙박업을 운영할 경우에 부과되는 의무’를 정한 것으로 인식될 여지가 크고, 주거용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원심은 피고가 원고들에게 계약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와 정반대의 시각에서 사안을 들여다봤다. 첫 번째 쟁점은 생활숙박시설의 법령상 지위였다. 대법원은 생활숙박시설이 제도 도입 당시부터 건축법상 영업시설군에 해당해 용도변경 없이는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지역에서 주거 용도로 사용된 사례는 행정 관리·감독의 공백에서 비롯된 사실상의 관행에 불과하며 이를 법적으로 허용된 이용 형태로 오해한 원고들의 기대 자체가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논리다.
홍보물 전체 맥락의 해석도 원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분양 홍보물의 일부 문구만을 떼어내 착오 유발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홍보물에 ‘주거·거주’라는 표현이 일부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동시에 ‘법적 용도는 숙박시설’, ‘숙박업·부동산 임대업’, ‘종부세·양도세 중과 배제, 전매 무제한, 1가구 2주택 무관’ 같은 문구들도 함께 제공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특히 ‘1가구 2주택 무관’이나 ‘종부세 중과 배제’는 오히려 해당 건물이 주택이 아님을 전제하는 표현으로 수분양자가 이를 꼼꼼히 살폈다면 주거용이 아님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법원의 시각이었다.
이번 판결은 법률행위 해석에서 처분문서가 갖는 우선적 지위를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계약서 표지에는 해당 건물이 ‘생활숙박시설’임이 명시돼 있었고 제22조에는 생활숙박시설 외 용도로 사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이익은 원고들의 부담이며 피고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원고들이 직접 서명·날인한 확인서에도 “본 시설이 생활숙박시설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건물 내 숙박업 운영 등 일체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동의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음”이라는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문언에 비추어 볼 때 계약 당사자들이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인식한 상태에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는 것이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 일반의 상식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동기의 착오 법리 다시 확인
이 세 가지 근거를 종합해 대법원은 동기의 착오 법리의 핵심 요건으로 돌아갔다. 동기의 착오가 계약 취소 원인이 되려면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돼 법률행위의 내용으로 편입됐다고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법리다(대법원 2000다12259 등).
대법원은 설령 원고들에게 실거주 목적의 동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계약서와 확인서라는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들의 인식이 이와 명백히 모순되는 이상 그 동기가 피고에게 표시돼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심이 피고의 착오 유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처분문서의 문언 해석 원칙과 동기의 착오 취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다만 환송심에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표시광고법 위반, 위약금 감액 등 예비적 청구를 통해 일부 구제를 받을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다.
특히 국토부의 입법·행정예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원고들에게 이를 고지하지 않은 피고의 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가 환송심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계약서가 증거”…광장, 대법원서 역전 승소
이번 생활숙박시설 사건 상고심에서 분양업체(피고)를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은 홍주혜·박철기·김나현·최승윤 변호사가 팀을 꾸려 원심 패소 후 대법원에서 역전 승소를 끌어냈다.
광장 측은 처분문서 우선 해석 원칙과 동기 표시 요건의 엄격 적용을 핵심 논거로 삼았다. 계약서와 확인서에 생활숙박시설임이 명확히 기재된 이상 홍보물 일부 표현만으로는 피고가 원고들의 착오를 유발했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대법원에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판결은 전국 수만 호에 달하는 생활숙박시설 분양 계약을 둘러싼 법적 분쟁 지형을 상당히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상당수 수분양자가 실거주 가능성에 대한 착오를 이유로 계약 취소 및 계약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왔는데 이번 판결로 그러한 청구의 인용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계약서와 확인서에 생활숙박시설임을 명시하고 주거 외 용도 사용에 따른 불이익을 매수인이 부담하도록 한 조항이 있는 한 분양 홍보물에 ‘실거주 가능’이라는 표현이 일부 포함돼 있더라도 착오 취소 주장을 관철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분양업체 입장에서는 계약서 문언을 통한 명시적 고지 관행이 법적 방어 논리로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반면 향후 유사 소송에서 원고 측은 착오 취소보다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이나 표시광고법 위반 등 별도의 법적 경로를 적극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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