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희 대사의 시사칼럼]호르무즈에서 한반도까지, 힘의 질서가 묻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전 세계를 요동치게 하고 있다. 이란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전후 세계를 지탱해 온 국제질서와 규범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그 여파는 국제정치 전반은 물론 한반도 정세에도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란 전쟁은 2차 대전 후 정립된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 체제와 국제법 질서를 크게 훼손시켰다. 1945년 6월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채택된 유엔헌장은 영역보전과 주권존중,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무력사용 금지를 기본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란을 '임박한 위협'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조 켄트 미 국가대테러센터(NCTC) 국장은 "이란의 즉각적 위협이 없었음에도 이스라엘의 압박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며 사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에 이은 이번의 이란 공격은 국제경찰 역할을 수행해야 할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의한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경찰이 스스로 법과 규범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그린랜드 병합 주장과 나토 탈퇴 위협 등으로 나토 회원국들의 미국에 대한 시선이 옛날 같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과 동맹국들에게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이 국가들의 거부 내지 소극적 태도는 유사시 동맹체재가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나토 회원국들의 파병 거부는 이란 전쟁이 회원국들의 자동 개입을 규정한 나토 조약 5조의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근거로 한 거리 두기로 보인다. 그러나 나토의 '합법적 거부'가 향후 동맹을 향한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 인식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이 군사적 압박 수단으로 현실화되면서, 주요 해상로의 안전은 더 이상 당연한 전제가 아니게 되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안보 위협으로 직결된다. 공급망 안정 역시 경제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생존 문제로 직결되고 있다.
경제 제재의 한계도 분명해졌다. 강력한 국제제재도 이란의 핵 능력을 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사례에 더하여 제재만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재확인하여주었다. 만약, 이번 전쟁이 이란의 완전한 항복이나 핵능력 제거 없이 끝난다면, 앞으로 이란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골적인 핵무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국제 핵비확산체제(NPT)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변화는 한반도에 더욱 직접적인 함의를 갖는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사태를 보며 북한은 분명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핵을 보유한 국가는 협상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이는 결국, 북한에게 핵이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확신을 강화시키고, 북한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역시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모든 것을 거래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동맹에 대한 기여를 회피하면서 안보를 보장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미국의 군함 파견 요청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우리의 국익과 동맹 고려라는 전제하에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의존도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대처가 눈에 띈다. "이란군에 의한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를 규탄"하는 나토 주요 6개국 공동성명에 동참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준 후 트럼프를 만난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헌법상 한계를 설명하고, 법 테두리 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리한 요구와 현실 사이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만, 당장의 물리적 부담이 없는 7개국 공동성명에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이란 전쟁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국제질서는 선의나 규범보다 힘의 균형 위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호르무즈에서 시작된 파장은 이미 한반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그 파장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인식하고 대비하는 일이다. 결국, 한국은 보다 복합적인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동맹을 기반으로 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주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외교적 선택지를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말처럼 "우리가 (강대국처럼) 식탁에 앉지 못하면, 그들의 메뉴(먹잇감)가 될 것이다."
장동희 전 주핀란드대사/전 경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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