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이 전국 200개 목욕탕 찾아다니는 이유 [여책저책]

장주영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miangel@mk.co.kr) 2026. 3. 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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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잊혀지는 것이 있습니다. 70~80년대 생이라면 익숙했을 추억 하나 떠올려볼까요.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짧으면 일주일에 한 번 꼭 가는 곳이 있었죠.

뜨거운 물에 때를 불리고 몸의 이물질을 벗어내고 나면 그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공간, 목욕탕입니다. 목욕을 마치고 마시는 팩이나 유리병에 담긴 초콜릿 우유나 노란 바나나 우유는 꿀맛이었더랬죠.

충남 예산 덕산 스플라스 / 사진 = 한국관광공사
안타깝게도 우리의 추억을 가득 채웠던 대중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목욕탕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자리하며 공존하던 곳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새롭습니다.

전국의 오래된 대중목욕탕을 찾아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출간했습니다. ‘전국 목욕탕 탐방’입니다. 책은 평범한 직장인의 발걸음에서 시작한 생활문화 탐방기인데요. 빠르게 사라져가는 일상의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해 한국 특유의 정서와 추억도 발견하게 합니다.

​여행플러스가 책을 통해 ‘가까운 곳을 새롭게 바라보는 여행’을 소소하게 전합니다.

전국 목욕탕 탐방
김성진|베르단디
사진 = 베르단디
​평생 살면서 목욕탕, 좀 더 정확하게 대중목욕탕을 가본 횟수는 얼마나 될까.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로 한정하면 아마 열 손가락 다 펴기가 어려울테다. 그런 면에서 전국의 목욕탕만 200곳 넘게 다닌 이가 있다면 놀랍다. 심지어 그 방문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주인공은 블로그를 통해 목욕탕과 카페를 꾸준히 기록해 왔다. 약 8년 동안 축적한 자료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는 목욕탕 58곳을 선별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목욕탕을 기록한 문화 탐방서 ‘전국 목욕탕 탐방’이다.

​부산 출신의 저자 김성진은 목욕탕 탐방가라 불리기를 바란다.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목욕탕을 찾고 기록하는 그의 모습이 딱 그렇다. 책은 경남 통영부터 서울 성동구까지 전국 팔도를 돌며 의미 있는 대중목욕탕 58곳을 간추려 소개했다. 국내 유일의 목욕탕 도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 베르단디
​책은 단순한 목욕 시설 안내서가 아니라 한국의 생활문화와 지역 공동체의 흔적을 담은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국 각지의 목욕탕에는 저마다의 역사와 사연이 남아 있으며 책은 이러한 공간의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책에는 서울·부산·전라·경상·충청·강원·경기·세종·대전·제주 등 전국 지역의 목욕탕을 고루 다룬다. 서울에서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성수탕과 도심 노동자들이 찾는 매일온천, 한국에서 가장 작은 목욕탕으로 알려진 제일목욕탕 등이 등장한다.

부산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입욕할 수 있는 문오성해수탕, 독특한 바가지탕이 있는 구덕탕, 굴뚝 두 개가 나란히 솟은 장수탕과 천일탕 등을 알려준다.

​지역의 역사와 생활이 깃든 목욕탕도 눈길을 끈다. 강원 태백의 그린목욕탕은 탄광 노동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던 공간이며, 경남 통영의 청수탕은 새벽이면 어업 노동자들로 붐비는 곳이다.

전북 장수에는 주민들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운영하는 작은 공공 목욕탕이 있어 마을 공동체의 소통 공간 역할을 한다.

사진 = 베르단디
​목욕탕은 단순한 입욕 시설을 넘어 지역 사회의 생활 공간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사 계획을 나누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목욕탕이 한국인의 일상과 문화가 축적된 공간임을 강조한다.

책은 목욕탕의 건축과 시설, 문화적 특징도 흥미롭게 다룬다. 예를 들어 목욕탕 굴뚝의 형태가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 자동 등밀이 기계의 제조사가 지역별로 분포 차이를 보인다는 점, 그리고 과거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바가지탕이나 타일 벽화 같은 요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기록한다.

​또한 탈의실에 놓인 플라스틱 목욕 바구니, 목욕탕 매점의 커피우유, 목욕관리사와 이발사의 이야기 등 목욕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활 풍경도 함께 담았다. 특히 오래된 목욕탕에서 발견되는 타일 벽화와 색색의 목욕 바구니, 독특한 바가지탕 등은 한국 목욕 문화의 미학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목욕탕을 “가장 맨얼굴의 한국을 만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화려한 관광지나 유명 명소가 아니라 동네 골목 깊숙이 자리 잡은 목욕탕에서야말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사진 = 베르단디
책은 사라져가는 목욕탕 문화를 기록한 아카이브라는 점도 주목한다. 과거에는 동네마다 하나씩 존재하던 대중목욕탕이 최근에는 시설 노후화와 이용 감소로 점차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국 목욕탕 탐방을 시작했다.

​또한 ‘전국 목욕탕 탐방’은 새로운 국내 여행 방식도 제안한다.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둘러보는 대신 지역의 목욕탕을 중심으로 주변 시장과 음식점, 골목 풍경을 함께 경험하는 느린 여행을 추천한다. 이는 지역 관광 동선을 다양화하고 지방 소도시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지방 여행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목욕 문화 역시 한국의 독특한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책은 목욕탕을 중심으로 지역을 여행하는 새로운 관광 루트를 제시하며 한국의 로컬 문화를 깊이 경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은 익숙하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 목욕탕의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기록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전국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목욕탕의 이야기를 만나며 한국 생활문화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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