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칩 전쟁’…다음 승부처는 AI 스토리지

고명훈 시사저널e 기자 2026. 3. 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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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선단 V낸드 전환 속도전, eSSD 주도권 수성
SK하이닉스, QLC 기반 고용량 SSD로 존재감 확대

(시사저널=고명훈 시사저널e 기자)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한국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선이 AI 스토리지(저장장치)로 확장되고 있다. AI가 똑똑해질수록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당장 계산을 수행하는 작업 공간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못지않게, 방대한 데이터를 보관할 거대한 창고인 고용량 기업용 SSD(eSSD)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다.

ⓒGemini 생성 이미지

올해 주력 메모리는 3층? 4층?

올해 메모리 시장의 최대 화두는 단연 쿼드레벨셀(QLC) 기반의 eSSD다. 낸드플래시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셀)에 몇 개의 데이터를 넣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1개면 SLC, 3개면 TLC, 4개면 QLC로 불린다. 셀이 적을수록 속도는 빠른 대신 저장 용량이 작다. 반대로 셀이 많을수록 속도는 느려지지만, 대용량 데이터를 저렴하게 채워넣을 수 있다. 때문에 QLC는 대규모 서버를 운영하는 AI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 새로운 격전지에서는 SK하이닉스가 발 빠르게 치고 나갔다. SK하이닉스는 자회사 솔리다임을 앞세워 QLC SSD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며 실제 최근 경쟁사 중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 사업 부문을 인수해 미국에 설립한 SSD 자회사로, 일찍부터 3D 낸드 기술을 기반으로 eSSD에서 QLC 경쟁력을 키워왔다.

삼성전자는 전체 eSSD 시장에선 경쟁사 중 가장 큰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QLC 제품 양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그간 TLC 낸드를 주력으로 eSSD 수요에 대응해 왔다. 2024년 eSSD 수요가 폭증했을 당시 삼성전자도 수혜를 봤지만, QLC 중심 고용량 시장에선 경쟁사인 SK하이닉스 대비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이후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도 점차 좁혀지는 추세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eSSD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1.3% 하락한 33.8%,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는 3.4% 상승한 30.2%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는 8.3%p에서 3.6%p로 좁혀졌다.

윤창민 인하대 고분자공학과 교수는 "올해 기업용 SSD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은 QLC 기반 고용량 SSD와 선단 V낸드 전환 속도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는 평택을 중심으로 8·9세대 V낸드 전환을 가속하면서 QLC까지 포함한 폭넓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있고, 시안 공장을 통한 대규모 양산 체계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D 낸드 종료와 라인 재편은 단순한 축소가 아니라, 저효율 공정을 줄이고 고적층 V낸드와 QLC 중심으로 밀도를 높이는 방향의 구조 전환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SK하이닉스는 솔리다임을 통한 eSSD 사업에서 고용량 QLC 제품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으며, AI 데이터센터 수요와 맞물려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며 "올해는 삼성전자가 공급 안정성과 기술 전환을 기반으로 1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지만, QLC 기반 eSSD 영역에서는 SK하이닉스 진영의 추격 속도가 상당히 빨라 경쟁 구도로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올해까지는 여전히 익숙하고 검증된 TLC가 시장의 주력 모델이 될 전망이다. AI 반도체 시장의 최대 큰손인 엔비디아가 방대한 저장 공간을 위한 QLC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TLC 제품까지 골고루 쓸어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인 '베라 루빈' 시스템(CMX 플랫폼)에 TLC 기반의 서버용 저장장치를 납품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역시 TLC와 QLC 방식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다목적 저장장치를 개발하며 고객의 다양한 입맛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차세대 스토리지 선점 위한 패권 싸움

차세대 AI 스토리지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선점을 위한 낸드 기술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올 초부터 6세대 인터페이스 규격인 PCIe 6.0(PCI Express 6.0) 기반의 eSSD 출하가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PCIe는 서버와 SSD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이번에 등장한 PCIe 6.0의 경우 이전 세대(5.0) 대비 데이터 전송 속도를 2배로 높여 초광대역폭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엔비디아가 주최한 기술 콘퍼런스 'GTC 2026'에서 PCIe 6.0을 지원하는 서버용 SSD 'PM1763'을 소개하며, 해당 스토리지가 탑재된 서버를 통해 엔비디아 SCADA 워크로드를 현장에서 직접 시연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낸드의 HBM 버전'이라고 불리는 고대역폭플래시(HBF)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미국 샌디스크와 HBF 스펙 표준화 컨소시엄을 맺고 HBF의 글로벌 표준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HBF는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HBM처럼 3D 낸드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대역폭을 늘리는 개념이다. 가장 아래 '베이스다이'를 시작으로 위로 쌓아올린 낸드를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SSD의 고용량을 유지하면서도 대역폭을 HBM처럼 확대할 수 있단 점에서 향후 AI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샌디스크는 2027년 시장 진입을 목표로 HBF 시험용 버전 출시를 준비 중이며, 업계에선 2030년을 전후해 관련 수요가 본격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스토리지 신제품 중 하나로 HBF를 준비 중이며, 연내 개발을 완료하고 내년 제품 인증, 내후년 상용화를 목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HBF뿐 아니라, 솔리다임 기반 QLC에서의 강점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낸드에서의 성장 가치가 주가에 추가 반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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