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아들이 매독에 걸려 왔네요”…바다에서 놀다가 제왕이 된 사내 [히코노미]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비린내음은 물고기의 것이었을까, 인간의 것이었을까. 바다에 터 잡고 살아가는 사내들의 도덕심은 물가의 모래성처럼 수시로 무너졌다. 뱃일로 지친 몸뚱이를 달래는 건 술과 여자뿐. 육지에 발을 디딘 그들은 멀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욕정을 풀기 바빴다. 욕망의 냄새가 바다의 비린내에 얹혔다.

노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서, 소년의 몸에 매독이 퍼졌다. 바다는 소년에게 저주이자 선물이었다. 성병을 앓으면서도, 동시에 물의 지배자로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기 때문이었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훗날 경제사학자들이 ‘해운과 철도의 제왕’이라고 부르던 사나이였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가 학교를 때려치운 건 1805년, 11살 때였다. 갑갑한 학교에서 밴더빌트는 좀이 쑤셨다. 너른 바다의 부름에 응답하고 싶어서, 그는 아버지의 페리 회사에서 일했다. 거친 뱃일에 옥같은 손은 곰 발바닥이 되어가고, 방탕한 생활로 성병에 걸렸지만, 그는 오직 갑판에서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우리 마을서 큰 부자가 났다는디, 현수막이라도 걸어야 하는 거 아녀~?”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드 빌트. 벤더빌트 가문의 고향이다. [사진출처=Kasteelbeer]](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1/mk/20260321155104546jmjb.jpg)
승객들은 일에 미친 밴더빌트를 “제독”(Commodore)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비아냥이었으나, 그의 배가 늠름해지자 사람들은 존경의 뜻을 담았다. 자기 사업이 어엿해지자, 그는 사촌 소피아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매독의 전염성이 낮아진 덕분에, 두 사람은 아이를 열셋이나 봤다.


법정 싸움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밴더빌트는 승객들에게 승차비용을 받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수익은 더 커졌다. 승객들이 배에서 음식, 음료, 쇼에 지갑을 기꺼이 열어서였다. 오늘날 페이스북이나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리미엄(Freemium) 플랫폼의 원류가 밴더빌트였던 셈.


밴더빌트의 배에는 거친 육지를 거치지 않고, 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승객으로 가득했다. 캘리포니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수록, 밴더빌트 재산도 두툼해졌다. 금맥을 틀어쥔 건 광산업자가 아니라 밴더빌트라는 소리가 나왔다.

1850년대는 판과 판이 부딪치고 뒤틀리는 정치적 조산기였다. 니카라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용병 윌리엄 워커가 1855년 군대를 이끌고 니카라과 내전에 개입했다. 타고난 전술과 기세로 승리를 거두고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니카라과의 것이 모두 제 것이라는 마음으로 충만했다. 또 다른 전운이 감돌았다. 니카라과의 경제 대통령 밴더빌트가 워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어서였다.

니카라과의 미국인 대통령이 다음 먹잇감으로 삼은 나라들이었다. 니카라과를 공동의 적으로 세운 중앙아메리카 연합군의 결성. 밴더빌트는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배가 든든한 연합군을 니카라과는 홀로 맞설 수 없었다. 워커는 해변까지 쫓겨 총 맞아 죽었다. 니카라과는 다시 밴더빌트의 것이었다.
아메리카의 물길은 모두 밴더빌트의 것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허기졌다. 창업가의 배를 채우는 건 언제나 새로운 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찬 투정을 하며 새 음식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밴더빌트는 언제나 새로운 산업을 갈망했다. 그의 나이 60. 벤터빌트의 황혼은 대낮의 뙤약볕보다 밝고 뜨거웠다. 그의 동공이 물에서, 뭍으로 움직였다. 땅에서 새로운 길이 보여서였다. ‘철길’이었다.

남북 전쟁에서 밴더빌트는 북군에 베팅했다. 전후 사업을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북군에 물자를 나르고, 나중에는 선박까지 바쳤다. 미국 지도자들은 밴더빌트의 이름을 다시 되뇌었다.

거절하는 회사에 바다 사나이는 가차 없었다. 그들 철도의 통행을 방해하는 공작을 폈다. 한 겨울, 철도 한 가운데서 멈춰버린 기차에, 승객들은 아우성쳤다. 평판이 무너지고 철도 회사의 주식 가치가 떨어지면, 밴더빌트는 거액을 안고 그들 앞에 나타났다. 허드슨 강 철도, 뉴욕 센트럴 철도가 모두 그의 것이었다. 이리 철도 인수 당시, 밴더빌트는 시장에 나온 주식을 모두 사들였다. 제이 굴드라는 희대의 금융 악동이 가짜 주식을 끊임없이 발행해, ‘먹튀’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그는 의연했다. 인간은 고통으로써 더 크고, 더 깊게 배울 수 있음을 밴더빌트는 이해하고 있었다.

밴더빌트는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이 바뀌는 모습에 우쭐했다. 그의 말에 시비를 따지는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밴더빌트가 맨해튼으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아내 소피아가 반기를 들었다. 밴더빌트는 그 길로 소피아를 정신병원에 처넣었다. 자식들이 눈물로 반대했지만 밴더빌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밤마다 밴더빌트의 몸을 어루만지고 마음을 달래주었는데, 신기하게도 밴더빌트가 병세가 차도를 보였다. 밴더빌트는 이 명료한 정신에 힘입어 우드헐 자매의 동생과 결혼을 결심하기도 했다. 40살 어린 강령술사라는 정체에 가족들이 기함해서, 결혼은 물거품이 됐지만, 밴더빌트는 우드헐 자매를 극진히 대했다. 주식 중개를 차리는 데 도움을 줄 정도로. 주식 중개회사의 창업자가 여성이었던 첫 사례였다.

밴더빌트는 죽기 직전 말했다. “어리석은 자도 요행으로 돈을 벌 수는 있지만, 그 돈을 끝까지 지키는 데는 명석한 두뇌가 필요하다(Any fool can make a fortune; it takes a man of brains to hold onto it).”
![후대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2세가 지은 저택. [사진출처=UpstateNYer]](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1/mk/20260321155120218tmgu.jpg)
![코넬리우스 벤더빌트 동상. [사진출처=Thepsmith6]](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1/mk/20260321155121569forz.jpg)
ㅇ코넬리우스 밴더빌트는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중 하나로 불린다.
ㅇ증기선 사업을 했던 그는 니카라과에 새 길을 뚫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었다.
ㅇ남북전쟁 후에는 철도 사업에 뛰어들어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철도제국을 일궈냈다.
ㅇ호랑이의 자손은 고양이에 가까워서, 그의 후대는 사업을 모두 말아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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