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내 마음속에 저장”을 넘어 눈빛으로 새 시대에 각인하다[하경헌의 고빗사위]

하경헌 기자 2026. 3.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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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단종 이홍위 역으로 출연한 배우 박지훈 연기장면. 사진 ㈜쇼박스

연예인이 하나의 이미지를 크게 얻은 이후 이를 탈출하는 일은 개미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렵다. 예부터 많은 연예인들이 이러한 고정된 이미지에 어려움을 토로했고, 이러한 서사를 이용한 작품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형사 이미지’를 벗고 싶어하는 이정재의 로맨틱 코미디 ‘얄미운 사랑’이나 최근 개봉한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싶어하는 이동휘의 영화 ‘메소드연기’ 등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의 중력을 너무나 가볍게 벗어나는 이도 있다. 바로 지금 ‘단종 앓이’의 중심에 있는 배우 박지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박지훈의 이미지를 “내 마음속에 저~장!”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저장’의 포즈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세리머니와도 이어져 박지훈에게는 도망칠 수 없는 이미지의 굴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배우 박지훈. 사진 ㈜쇼박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누구도 그를 보고 ‘저~장!’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바라만 보면 눈물을 쏟을 것 같고,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득 담아 안은 처연한 군주의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를 찾거나, 단종의 묘인 장릉을 찾아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의 대부분 마음속에는 박지훈이 보여주는 연기가 있을 테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박지훈은 원래부터 아역 배우 출신이었다. 2006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주몽’ ‘왕과 나’ ‘김치 치즈 스마일’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익혔다. 뮤지컬을 겸하면서 춤과 노래를 접했고, 그 당시 초·중·고등학생이라면 모두 큰 인상을 받았던 아이돌 전성시대에 크게 자극받아 그는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도전한 것이었다.

그룹 워너원 활동 당시의 박지훈. 사진 스포츠경향DB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그의 ‘워너원’으로서의 경력 말고, 더욱 집중해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의 배우로서 차별성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제작사인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는 박지훈을 일컬어 ‘새로운 얼굴’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가 워너원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뒤쫓는 ‘성덕’의 느낌도 있었지만, 박지훈의 배우로서 이미지는 그 또래 누구나가 쉽게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2019년 JTBC 드라마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으로 연기를 다시 시작한 박지훈은 카카오TV의 ‘연애혁명’, KBS2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에 출연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20대 초중반 아이돌 출신 남자배우들이 낼 수 있는 ‘청량청량’한 청춘의 모습이었지만, 2022년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 1’에서 그의 이미지는 큰 변곡점을 그린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에서 연시은 역을 연기한 배우 박지훈 출연장면. 사진 웨이브

‘약한영웅 Class 1’은 웹툰 원작으로 정글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힘은 약하지만, 기지와 깡으로 싸우는 주인공 연시은의 서사를 다뤘다. 하지만 박지훈이 연시은을 연기하면서 연시은은 좀 더 입체적으로 변했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공허하고 슬픈 눈빛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영민하고 예민하던 웹툰 속 연시은의 캐릭터에 조금 더 풍부한 감정을 주입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아이돌치고는 다소 저음이었던 박지훈의 목소리 역시 연시은의 분위기와 들어맞았다. 그는 굳이 ‘억텐(억지로 흥을 끌어올려야 하는)’이 필요한 아이돌이 아닌,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배우로 더욱 많은 가능성을 뽐낼 수 있었다. 이는 넷플릭스 ‘약한영웅 Class 2’로 이어졌고 임은정 대표나 장항준 감독의 레이더에 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배우 박지훈. 사진 스포츠경향DB

단종의 눈빛에도 이러한 박지훈의 강점이 들어있다. 하지만 연시은과 단종의 눈빛에는 차이가 있다. 둘 다 공허한 부분은 있지만, 단종에게는 지키고 싶은 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결연함과 그러지 못했던 슬픔이 있었다. 반면 연시은에게는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허무함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잠들어있었다.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로 티빙 ‘연애혁명’과 웨이브 ‘환상연가’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 ‘약한영웅’ 시리즈를 제외한 작품들의 조회수도 올라가고 있다. 게다가 단종을 소재로 한 웹툰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 ‘약한영웅’ ‘취사병 전설이 되다’ 등 박지훈 주연 드라마의 원작들도 인기를 얻었다. 단종으로 시작해 박지훈을 거쳐 그의 전작, 원작까지 이어지는 ‘애호의 생태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단종 이홍위 역으로 출연한 배우 박지훈 연기장면. 사진 ㈜쇼박스

박지훈의 성공은 그럴듯한 피지컬과 남자다움이 아니더라도, 연기력으로 충분히 대중을 특히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단종 앓이’는 박지훈의 앓이로 이어졌고, 이는 ‘새로운 얼굴’에 대한 대중의 갈증 그 증거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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