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러시아 ‘종교 전쟁’ 이끈 필라레트 총대주교 별세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분리·독립에 앞장서
젤렌스키 “우크라 교회·국가 확고한 수호자”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우크라이나 정교회(OCU)의 분리·독립을 이끈 필라레트 OCU 명예 총대주교가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20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OCU는 이날 필라테트가 만성 질환의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고인은 강한 인격체로서 우크라이나 교회, 독립, 국가의 가장 확고한 수호자였다”며 “명예 총대주교의 타계는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큰 손실”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의회도 성명에서 “고인은 옛 소련에 의한 종교 억압 기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교회의 생존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본명이 ‘미하일로 데니센코’인 필라레트는 제2차 세계대전 도중 부친을 잃고서 종교에 귀의할 결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 러시아 정교회 수도사가 되며 ‘필라레트’라는 새 이름을 얻은 그는 소련에 속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왕성한 선교 활동을 했다. 1962년에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주교 서품을 받았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된 뒤 종교 분야에서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의 독립 교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필라레트는 이 같은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으나 독립파는 그가 우크라이나 교회의 얼굴을 맡아주길 간청했다. 결국 필라레트는 1995년 ‘러시아로부터의 종교적 독립’을 표방한 세력에 의해 키이우 총대주교로 선출됐다.
당시만 해도 우크라이나를 자기네 소관 영역으로 여긴 러시아 정교회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 알렉시 2세(2008년 사망)는 필라레트의 행동을 일종의 반역으로 간주해 파문 처분을 내렸다. 물론 필라레트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뒤 약 20년 동안 우크라이나 교회들은 예전처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따르는 교회와 새로 성립한 키이우 총대주교청을 지지하는 교회로 나뉘어 분열 상태에 놓였다.

당시 89세 고령이던 필라레트는 교회 지도부에선 물러났으나 OCU의 명예 총대주교로 추대되어 최근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그에게 최고의 영예에 해당하는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 필라레트는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며 젤렌스키에게 힘을 실어줬다.
필라레트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언행으로 구설에 올랐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터지자 필라레트는 이를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규정하며 가장 중대한 죄로 동성혼을 지목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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