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신비로운 성배의 기사와 여인의 ‘비극적 사랑’
중세 전설 바탕…낭만주의 오페라
바그너 대표작…성숙한 음악 스타일
‘결혼 행진곡’ 신부 입장곡으로 유명
절대적 믿음-인간적 본성 간 충돌


성배(聖杯)와 성창(聖槍)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과 피를 담은 잔을 일컬으며 문학 작품과 일부 기독교 전승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유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했던 기적의 힘을 지닌 도구로 묘사되고 있다.
중세 유럽 십자군원정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성배와 성창을 찾기 위해 모험을 펼치는 기사들의 이야기가 주요 문학 소재로 각광을 받았으며, 현대에도 영화 <인디아나 존스>, <다빈치 코드> 등에서 성배를 찾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페라에서도 이러한 성물이 소재로 등장하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 1850>과 <파지르팔-Parsifal, 1882>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중 <로엔그린>은 바그너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지며 3막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전 세계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쓰일 만큼 오페라 자체보다 더 큰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바그너가 대본과 작곡을 모두 도맡은 3막 구성의 <로엔그린>은 낭만주의 오페라로 중세 전설을 바탕으로 하며, 바그너의 음악 스타일이 성숙해지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로엔그린>은 10세기 안트베르펜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백조의 기사' 전설을 다룬 작품으로, 제목은 성배를 지키는 기사인 로엔그린을 지칭한다. 바그너는 젊은 시절, 볼프람 폰 에센바흐(1170~1220)가 중세 전설을 바탕으로 쓴 파르지팔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파르지팔의 아들인 로엔그린 전설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1845년에는 요한 요제프 괴레스(1776~1848)의 로엔그린을 읽고 마침내 이 작품의 대본에 착수하게 된다. 집필 과정에서 바그너는 원래 별개의 이야기였던 기사 텔라문트와 부인 오르트루트의 전설을 결합하였고 그 밖에도 악역과 관련된 몇몇 소재는 니벨룽겐 전설에서 차용하였다.
오페라 <로엔그린>의 탄생과 초연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1848년 작품을 완성한 바그너는 이듬해 드레스덴 봉기에 가담했다가 수배자 신세가 되어 스위스로 탈출해서 <로엔그린>의 초연이 무기한 연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 친구이자 후원자인 프란츠 리스트(1811~1886)가 1850년 바이마르에서 바그너 대신 지휘봉을 잡고 초연을 성공적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는 무려 12년이 지난 1862년 빈 공연에 이르러서야 객석에서 자신의 작품을 처음 직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로엔그린>은 이미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터라, 작곡가 본인이 극장에 나타나자 관객들은 떠나갈 듯한 환호로 거장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하인리히 1세(876~936)는 실존 인물로 919년에 독일 왕에 등극한 인물이다. 따라서 <로엔그린>은 10세기 초반의 독일과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작품에 나오는 하인리히 1세의 행적은 실제와 무관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은 신비로운 성배의 기사와 인간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1막은 브라반트 왕국의 안트베르펀 성이 있는 스헬데 강변이 배경으로 백조의 기사와 운명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다.


3막은 금지된 질문과 비극적인 이별로 이 오페라가 마무리된다. 배경은 안트베르펀 성안의 신부 방으로, 결혼식이 끝나고 신방에 함께 있다. 하지만 오르트루트의 독설에 휘말린 엘자는 결국 호기심과 불안을 참지 못하고 금기시된 질문, "당신은 누구인가요?"를 던지고 만다. 약속이 깨지자 기사는 슬퍼하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는 성배의 성 몬살바트에서 온 기사이자 파르지팔 왕의 아들, 로엔그린이며, 이제 정체가 탄로가 나서 기사의 규율에 따라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 로엔그린이 떠나려는 순간, 백조가 사실은 마법에 걸린 엘자의 남동생이었음이 밝혀지고 마법이 풀린다. 그러나 동생은 돌아왔지만, 로엔그린은 세가지 유품을 두고 떠나가고 엘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숨을 거두며 막이 내린다.
오페라 <로엔그린>의 비극적 결말은 단순한 사랑의 실패를 넘어, '절대적 믿음'과 '인간적 본성'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엔그린은 신성한 세계에서 온 존재로 '이유를 묻지 않는 절대적 사랑'을 원했지만, 인간인 엘자는 사랑하는 이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지적 호기심과 불안이라는 본능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신화적 관점에서 엘자의 질문은 '에덴동산의 사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질문을 던지는 순간 신비로운 보호라 할수 있는 로엔그린은 사라지고 냉혹한 현실이 닥친다. 비록 결말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엘자가 수동적인 보호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진실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인간적 자각과 성장의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점을 고찰할 수 있다.
마지막에 엘자의 남동생인 고트프리트가 저주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것은, 희망과 정당한 권력 승계를 상징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로엔그린과 엘자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희생을 통해 브라반트 공국에는 정당한 후계자가 돌아오며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다는 정치적 상징성도 띠고 있다.
로엔그린이 떠나면서 엘자에게 남긴 세 가지 유품인 '칼', '반지', '뿔피리'는 단순히 이별의 선물을 넘어, 마법에서 풀려나 돌아올 엘자의 남동생 고트프리트가 갖추어야 할 진정한 통치자의 덕목과 힘을 상징하고 있다. 칼은 전투에서의 승리와 정의를 의미하며, 로엔그린이 엘자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던 것처럼, 고트프리트가 브라반트 공국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상징하고 있다.
반지는 영원한 충성과 결속을 상징하며 이는 통치자와 백성 사이의 신뢰, 그리고 성배의 세계와 지상 세계를 잇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뿔피리는 도움을 청하는 신호이자 소통을 의미하며 위급한 순간에 이 뿔피리를 불면 성배의 기사들이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약속과 더불어 통치자로서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결집하는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로엔그린>은 단순한 옛날이야기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타인을 온전히 믿고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최철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문화학박사
<Tip> 제3막 로엔그린과 엘자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이 결혼식에 쓰이게 된 배경은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가 바그너의 곡을 너무 좋아해서 자신이 결혼식에 입장할 때 이 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