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12살부터 평생 기록한 몸의 이야기 [.txt]
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허구 속 진실
불완전한 감정·생각 대신 ‘몸 안의 감각’
감각이 이야기, 경험이 삶이 되는 순간

40대 중반이 됐다. 큰 변화 없는 내 일상에서 나이를 실감하게 하는 것은 딱 하나, 내 몸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통증과 불편함, 뻣뻣함이 찾아온다. 조금 더 예민하게 들여다보면 노화의 변화는 거의 매일 일어나는 듯하다. 날마다 다른 몸이 되어간다.
변화에 대해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내고 보면, 몸은 놀라움 그 자체다. 의식보다 먼저 반응한다는 점에서 나는 내 몸을 앞지를 수 없고, 무엇보다 평생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나로서 그것은 쇠퇴지만, 몸의 입장에서 변화는 단계마다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몸은 놀라움에서 놀라움으로 나아간다.” 다니엘 페나크의 말이다.
사회 풍자를 유머로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말로센 시리즈와 아동 문학으로 잘 알려진 페나크가 ‘몸’의 이야기를 쓴 것은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몸을 가진 인간’이었으니까. 몸의 이야기란 무엇일까.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떤 일이 벌어지는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들로도 하나의 서사를 만들 수 있을까. 다니엘 페나크는 이 질문에 일기를 펼쳐 보여준다.
‘몸의 일기’는 열두살부터 여든일곱살까지 한 남자가 자신의 몸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어린 시절 숲에서 강렬한 공포를 경험한 뒤, 화자는 ‘몸과 정신을 구별하고 상상력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며, 몸이 보내는 부적절한 신호에 맞서 상상력을 지키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일기란 보통 감정이나 생각을 적기 마련이지만, 그는 마음의 상태를 믿지 않고 오직 몸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재채기, 첫 몽정, 첫 독감, 갑자기 찾아오는 통증, 누군가를 사랑할 때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노화 같은 것들. 사건의 서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 기록들이 조금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건이 아니라 시간의 서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를 ‘삶’이라고 부른다면, 삶은 무엇보다 몸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처음 울음을 터뜨린 것도, 첫 욕망을 느낀 것도, 늙음이 시작되는 순간도, 눈을 감기 전 마주하는 마지막 풍경도 모두 몸의 일이다.
페나크에게 인간은 무엇보다 몸을 가진 존재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만, 사실 그것만큼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도 없다. 마음이나 감정은 실제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이자, 몸의 일을 내면의 언어로 번역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은 불완전하고 말은 언제나 근사치에 머문다. 슬픔이라고 말하지만 상실일 수도 있고, 분노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수치일 수도 있다. 그러니 더 정확한 언어는 몸일 것이다. 가슴이 빨리 뛰거나, 손이 떨리거나, 숨이 차는 것. 어쩌면 이 몸의 언어를 해독하는 것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세계를 생각으로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사는 존재라고.
그런 관점에서 페나크의 ‘몸의 일기’는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이 만난 세계를 몸의 언어로 정확히 들려준다. 사소한 생리 현상 하나도 사실은 몸이 세계와 부딪히는 하나의 사건이고, 인간의 삶은 바로 이러한 순간들로 이뤄져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페나크의 글쓰기도 바로 그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것을 ‘현실을 훔쳐 오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작가는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조각을 훔쳐 와 이야기로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훔치다’라는 동사다. 이 행위에는 작은 순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몰래 품는 비밀의 시간이 담겨 있다. 또 원래 있던 자리에서 맥락이 바뀌고 의미가 달라지는 일종의 변형이 숨어 있다. 훔쳐 온 현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때때로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한 남자가 평생 기록한 몸의 이야기가 그런 것처럼.
너무도 사실적으로 보이는 페나크의 이 기록은 자전적 소설이 아니라 완벽한 허구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작가의 삶에서 포착한 현실의 조각들이 들어 있다. 허구라는 틀 안에 현실의 감각이 놓이는 순간, 독자는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경험의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알아보는 것은 언제나 머리가 아니라 몸이다. 책을 쥔 두 손에 힘이 들어가거나 절로 탄식이 나오거나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몸이 먼저 글의 진실을 알아본 것이다.
‘몸의 일기’의 마지막 장에는 보잘것없어진 몸이 남아 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몸 아닐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으로 생을 끝마친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것만 같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결과가 아니라 경험 그 자체에 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통증이든 노화든 우리가 시간을 겪고 지나오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삶이 우리에게 내준 숙제이자 선물은 이 시간을 온전히 경험해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몸을 가진 존재로서, 몸으로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렇다면 서서히 저물어가는 이 몸도 아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몸으로 경험한 모든 것이 내가 살아낸 삶일 테니까.
‘몸의 일기’의 화자는 자신의 기록을 딸에게 남긴다. 생각이나 교훈은 시대와 함께 사라지지만, 몸의 경험은 세대를 넘어 반복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딸 역시 같은 몸으로 같은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삶을 남긴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살아낸 시간 그 자체를 건네는 일.

신유진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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