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를 통해 이야기하는 중년 레즈비언의 삶

가시와라 토키코 2026. 3. 21. 09:4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년 레즈비언의 주거와 커밍아웃, 지금까지와 지금부터』 저자 가와치 시노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집에서 살며 살아갈 것인지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인생의 과제이지만, 성소수자에게는 역할 모델을 찾기 어려운 만큼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2025년 6월에 『중년 레즈비언의 주거와 커밍아웃, 지금까지와 지금부터』라는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50대 레즈비언이며 1급 건축사이기도 한 가와치 시노(河智志乃) 씨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고뇌, 커밍아웃 방법과 전략, 노후를 감안한 파트너와의 삶 모색 등을 두 채의 집 짓기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가와치 시노(河智志乃) 1971년 일본 치바 출생. 1급 건축사이자, 비영리법인 레인보우 커뮤니티 꼴라보(coLLabo 홈페이지 co-llabo.jp) 이사를 맡고 있으며,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 소송 원고이기도 하다. 복지주거환경 코디네이터 2급, 방문요양보호사 2급 양성 연수 과정 자격 보유. (촬영: 우이 마키코 宇井眞紀子)

“3년 전에 삿포로시 여성문화센터 직원분에게 ‘성인 레즈비언 책은 더 없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틈틈이 적어왔던 글을 책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었죠. 여성문화센터에 페미니즘 책은 많지만, 확실히 레즈비언 책은 적죠. 아직 사회가 여성 커플을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라고 가와치 씨는 말한다.

 

‘혼자의 집’ 짓기에서 ‘둘의 집’ 짓기까지

유소년기부터 성별 위화감을 느꼈던 가와치 시노 씨. “남자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있었어요. 여자의 몸도, 그 몸에 부여된 젠더 규범도, 성역할도 혐오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대상은 여자... 당시에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어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 동성애 혐오로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괴롭히던 나날들이었다. 직업으로는 ‘여성’답지 않은 건축 현장을 선택했지만,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30대에 접어들 무렵,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남성으로 사는 인생을 포기하고, 여성인 자신을 마지못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도 현장감독에서 건축설계로 전환하게 된다.

그와 함께 가와치 씨가 노력을 기울인 것은 앞으로도 혼자 살게 될테니 노후에도 쫓겨나지 않기 위한 ‘혼자의 집’ 짓기. 본가는 ‘부모와 세 자녀’가 사는 전형적인 단독주택이었다. 책 『중년 레즈비언의 주거와 커밍아웃, 지금까지와 지금부터』에는 부지 선정과 인프라 정비로 시작해 노후에도 살 수 있는 집 짓기 비법도 잔뜩 소개되어 있다.

‘혼자의 집’이 완성되면 만세를 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가와치 씨는 고독에 휩싸였다. 여성 연인은 있었지만, 자신이 ‘여성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레즈비언과 바이섹슈얼 여성들을 위한 공간에 갔다가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는 동료들, 그리고 일생의 파트너가 될 하토가이 히로미(鳩貝啓美) 씨를 만난다.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둥지를 틀고 있던 ‘여성’ ‘동성애자’ 혐오의 원인을 하나씩 하나씩 생각하고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여성으로서, 여성 파트너와 사는 여성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만, 레즈비언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였어요. 하지만, 하토가이와 친구들을 만나 레즈비언에게 따라붙는 역풍과 차별에 저항할 각오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50대 레즈비언, 1급 건축사이기도 한 가와치 시노(河智志乃) 씨가 2025년 6월에 출간한 책 『중년 레즈비언의 주거와 커밍아웃, 지금까지와 지금부터』(ミドルエイジ・レズビアンの住まいとカミングアウト、これまでとこれから, 겐다이쇼칸) 표지(좌)와 책 내부에 소개한 집의 평면도(우).

2009년에는 하토가이 씨, 동료들과 함께 레즈비언과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여성을 위한 ‘레인보우 커뮤니티 꼴라보(coLLabo)’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이가 들어도 하토가이 씨와 둘이서 살며 친구나 동료들도 모일 수 있는 ‘둘의 집’ 짓기를 시작했다. 연령에 따른 가변성이 있는 집으로, 나이가 많이 든 후에는 1층에서만 살 수 있도록 수도와 침실을 설계, 3층은 동료와의 작업 공간으로 삼았다.

“이제는 친구들이 가까이 사는 환경을 만들어 서로 반찬을 나누거나 안부를 묻거나 하며 지내고 싶어요.”

 

커밍아웃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

저서에는 신뢰와 관계를 심화하는 기술과 힌트도 가득하다.

“결혼할 수 없는 상황도 있으니, 저를 포함해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밝히지 못해온 사람은 파트너에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느낌이 있어요.”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 커밍아웃하는 방법도 꼭 읽어야 할 대목이다.

“커밍아웃은 타자와의 관계를 구축하거나, 지금까지 속여왔던 관계를 재구축함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죠.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데로도 이어집니다.”

커밍아웃의 우선도와 확장을 표로 만들고, 캐치볼을 예로 들어 오가는 대화를 정리했다. 캐치볼에서 어떤 볼을 던질지를 ‘PDCA’(계획-실행-평가-개선)으로 실천하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공증서와 유언, 재해와 소수자 등 다루는 화제가 풍성하다.

“이 책이 전국의 여성센터 서가에 놓이면 기쁠 것 같아요!”

 

가와치 씨는 2021년 하토가이 씨와 함께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Marriage for All) 소송의 원고가 되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을 위반하는 기본권 침해이자 차별이 아닌지 묻는 전국 단위의 소송으로 2019년부터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도쿄2차 소송 원고이다.

“성별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사람과 안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것, 결혼도 가능한 사회의 풍경을 빨리 보고 싶고, 뒷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Copyright © 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