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의 클래식] 봄 햇살에 깨어난 선율…궁정에서 일상으로

장다해 기자 2026. 3.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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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피아니스트 허효정 추천
평화로운 들판의 한가로운 양떼 표현한 ‘바흐’
피아노 편곡보다 원곡 소프라노 아리아 추천
기악곡 ‘트리오 소나타’ 형식 마련한 ‘코렐리’
이탈리아 춤곡 리듬 더해져 생동감 살아나
새가 지저귀는 듯한 ‘베토벤’의 ‘봄’ 소나타
음악 향유계층 커지며 출판사가 곡명 붙여
클립아트코리아

봄바람이 부는 창가에 앉아 클래식을 듣다 보면 마음마저 산뜻해진다. 2명의 피아니스트에게 물었다. 포근한 햇살이 사방을 채우는 이 계절, 어떤 곡을 들어야 성큼 다가온 봄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을까. 조은아 교수에 이어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허효정 조선대 음악교육과 교수가 추천한 ‘봄에 듣기 좋은 클래식’을 소개한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게티이미지뱅크

‘바흐’의 칸타타 BWV 208 중 ‘양들은 평안히 풀을 뜯고’=첫 곡은 따스한 봄날, 궁정 연회에 앉아 있는 듯한 여유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리코더 두 대의 경건한 연주 사이로 소프라노 아리아가 맑게 울려 온화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평화로운 들판에서 풀을 뜯는 양들의 모습을 노래하며, 훌륭한 통치자 아래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누린다는 의미를 담았다.

바흐는 교회 음악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궁정에서 귀족에게 들려줄 세속 음악도 작곡했다. 이 칸타타 역시 바이마르 궁정에서 한 공작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탈리아어 ‘노래하다(cantare)’에서 유래한 칸타타는 독창과 합창, 기악 반주가 어우러지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성악 형식이다.

허 교수는 “목가적인 정취가 봄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며 “오늘날에는 피아노 편곡이 유명한데 원곡인 소프라노 아리아로 들으면 리코더와 호른이 선보이는 바로크 악기의 따뜻한 음색을 더 잘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곡의 화룡점정은 한 목소리처럼 노래하는 호모포닉 합창으로 ‘사랑스런 눈길이여, 즐거운 시간이여, 영원히 행복을 누리라’ 하는 가사를 읊는다. 

아르칸젤로 코렐리. 게티이미지뱅크

◆‘ 코렐리’의 ‘트리오 소나타 Op.4 No.9’=이번에는 ‘칸타타’에서 ‘소나타’로 넘어가 봄날 궁정의 활기 속으로 첨벙 빠져들어보자. 이 곡 역시 귀족이 머물던 궁정에서 연주하는 작품으로 우아하면서도 밝은 소리의 질감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두번째로 추천하는 ‘트리오 소나타 Op.4 No.9’는 17세기 후반 기악 소나타의 토대를 마련한 이탈리아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작품이다. 

그가 소나타라는 장르를 구축하기 전까지는 앞서 소개한 바흐의 칸타타처럼 가사가 있는 성악이 음악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교회에서 기도문을 멀리까지 전하려고 선율을 붙이자 음악이 발전했고 가사가 있는 성악만큼 악기의 물리적인 표현력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이후 악기의 소리가 명료해지면서 ‘연주하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수오나레(suonare)’에서 유래한 기악곡 ‘소나타’가 등장했다. 특히 코렐리가 두 개의 선율과 하나의 저음선이 어우러지는 ‘트리오 소나타’ 형식을 확립해 악기만으로도 의미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허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악기와 작곡 기법이 발전해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악곡이 나타났다”며 “봄날 궁정에서 산책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들으면 더욱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 곡은 네 악장으로 구성되며 느린 부분과 빠른 부분이 교차해 곡에 생동감이 살아난다. 특히 빠른 대목에는 이탈리아 춤곡인 코렌테(Corrente)의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리듬이 더해져 가볍게 흘러가듯 매끄러운 움직임이 돋보인다. 

루트비히 반 베토벤. 게티이미지뱅크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교회와 궁정을 거쳐 대중으로 퍼진 음악의 흐름 속에서 초록이 짙은 봄 한가운데 새가 지저귀는 듯한 생기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봄 소나타’로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이다.

네 악장으로 이뤄진 이 곡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다른 분위기를 이룬다. 1·2악장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 속에서 한적하고 평안한 봄날의 정서를 담는다. 3·4악장에서는 가볍게 튀는 리듬과 경쾌한 전개가 더해지며 한층 밝고 활기찬 흐름으로 전환한다.

허 교수는 “곡 전반에 흐르는 밝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가 봄과 잘 어우러진다”며 “특히 선율이 위로 뻗어 오르듯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햇살 아래 생명이 움트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고 말했다.

널리 알려진 이름과 달리 이 곡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있다. ‘봄’이라는 곡명은 베토벤이 지은 것이 아니라 출판사가 붙인 이름이다. 곡이 쓰인 1800년대 초는 부르주아 계층이 문화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음악은 교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베토벤의 곡은 음악 전문지뿐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허 교수는 “귀족 중심의 향유에서 벗어나 베토벤 시대에는 일반인까지 음악을 즐기는 층이 넓어졌다”며 “작품을 널리 알리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기억에 남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곡에 대한 당시 평가도 눈길을 끈다. 지금은 부드럽고 듣기 편안한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당대 비평가들은 오히려 “지나치게 과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프랑스 궁정음악의 균형과 절제를 따르던 독일 음악계에서는 베토벤이 보인 폭풍같이 자유로운 표현이 낯설게 받아들여졌다. 비판 속에서도 “비례와 질서를 갖춘다면 영원한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베토벤의 재능과 독창성을 인정하는 시선이 함께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오늘날에는 따뜻한 햇살과 생동하는 기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음악은 영혼에 날개를 달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음악이 영혼을 깨우듯, 바람처럼 자유롭고 햇살처럼 따사로운 클래식은 만물의 소생함을 찬미할 터. 지금이야말로 클래식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봄의 오디세이를 떠날 때다. 

[용어 설명] 호모포닉 합창
모든 성부가 같은 리듬으로 노래하며 화음을 만드는 형태의 합창이다. 소프라노·알토·테너 등 여러 성부가 있지만 같은 리듬으로 부르기에 가사가 또렷하게 전달된다. 

호모포니(homophony)는 우리말로 화성음악이라고 하는데, 한 성부가 주 선율을 맡고 나머지 성부는 화성적으로 반주한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대개의 음악이 이 화성음악이다. 여러 성부가 각기 다른 멜로디를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음악은 폴리포니(polyphony)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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