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유엔군 화장터·북한군 묘지…전쟁의 흔적을 걷다
[앵커]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유엔군 화장터, 그리고 북한군 묘지까지.
모두 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직접 걷고 돌아보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긴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엔 6.25때 전사한 친척을 둔 참가자도 있었는데요.
이 길이 보다 특별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단절의 시간과 공존의 가치를 돌아본 그 길을 염진아 리포터가 함께 걸었습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북녘땅이 바라보이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이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합니다.
["안녕하세요."]
화창한 휴일, '평화의 바람 기행'에 나선 종교인과 시민 참가자들입니다.
[이범자/'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통일 아니면 평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고 주변에 보면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분단의 현장을 눈으로 보고, 느끼며 평화의 교훈을 되새기는 시간을 마련한 겁니다.
[정수용/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직접 이렇게 분단의 접경지역들을 와 보면 우리가 분단됐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불합리한 현실들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평화의 기행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북녘 땅이 지척에 자리한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입니다.
이곳을 시작으로 전쟁이 남긴 흔적을 돌아보며 평화의 의미를 되짚어갈 참가자들의 여정에 함께해 보겠습니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 강 건너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북한이 어딘지 가장 궁금하실 텐데 저 맞은 편에 있는 곳이 황해북도 개풍군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전망대에서 북한까지의 거리는 가까이는 약 460미터.
망원경으론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는데요.
["저기 앞쪽에 논이랑 사람들이 꽤 많이 있어요."]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 닿을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최영미/'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마음이 어떠세요?) 짠하죠. 같은 민족이라는... 같이 누리지 못해서 분단이라는 게 참 아픈 거잖아요."]
다음 장소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긴 참가자들, 남과 북의 화해를 염원하며 만들어진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에 보이는 모자이크 작품이 눈에 띄는데요.
[정수용/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남북의 작가가 함께 만든 그림입니다. 남쪽에 있는 이콘(성화 모자이크)을 전공하는 작가와 신부님이 그림을 그렸고 평양에 있는 만수대 창작사 공훈 작가들이 (중국) 단둥에 나와서 직접 모자이크를 제작하고 제작된 모자이크를 배로 들여와서 이곳에 설치한 그런 성당이 되겠습니다."]
이 성당은 분단 이전, 북한 지역에 있던 성당의 모습을 바탕으로 복원된 공간입니다.
이내 다시 길을 나서봅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마다 한 참가자의 눈길엔,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주복동/'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아버지가 (고향이) 개성이었기 때문에 엄마,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나요. 우리 어렸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불렀어도 통일 쉽지 않은 거구나."]
전쟁과 분단은 여전히 누군가의 삶 속에 남아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는데요.
[송창열/'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작은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사하셨거든요.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거잖아요. 분단의 비극이 하루빨리 종식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참석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연천.
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자락, 거칠게 쌓아 올린 돌벽과 굴뚝이 어딘가 황량하게 남아있는 공간, 6.25 전쟁 당시 전투 중에 숨진 유엔군들을 화장했던 곳입니다.
[정수용/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10대 후반,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 멀리서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유럽 끝에 있는 튀르키예, 유럽, 미국, 이런 데서 왔던 청년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서 전쟁을 하고 어떤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 유엔군 화장터는 공방전이 치열했던 1952년 지어져 휴전 직후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선 잊혀져 있는데요.
낯선 땅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다 쓰러져 한 줌 재로 산화한 다른 나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참가자들이 기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유은경/'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많이 희생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프네요. 그 시대에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여기에 오니까 그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70여년 전 우리나라를 위해 전투에 참여한 유엔 참전국은 16개국.
전쟁의 포화 속에서 4만여 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고, 1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부상을 입거나 실종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는데요.
국적은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전쟁은 수많은 흔적을 남깁니다.
연천 유엔군 화장터가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을 보여주는 장소라면 파주에는 또 다른, 다소 뜻밖의 장소가 있는데요.
바로 북한군의 유해가 묻혀진 묘지입니다.
참가자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전쟁의 기억을 향해 이어집니다.
이들의 발길이 닿은 곳은 적군 묘지로도 불리는 '북한군 묘지'로 1996년 국방부가 조성한 곳입니다.
6.25전쟁으로 숨진 국군의 유해 발굴 과정에서 수습된 북한군 유해와 과거 남한에 침투했다 죽은 북한 공작원까지, 약 800여 구가 묻혀 있습니다.
[주영채/동학민족통일회 : "6.25전쟁 때 저는 6살이었어요. 6.25전쟁을 본 사람인데 북한 군인들이 여기에 묻혀 있는 사실을 현재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묘비에는 이름 대신 '무명인'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는데요.
["(무명인이라고 적혀있네요.) 아무래도 이름 없이."]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과 매장된 날짜에서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짐작해 봅니다.
묘지는 적군의 유해라도 존중하여 매장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의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조성됐는데요.
묘비의 방향은 북쪽을 향해 있었습니다.
[정수용/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사망자들이) 고향을 바라보는 게 맞지 않겠냐라는 생각에 처음 조성하신 분들이 그 마음을 담으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군 유해의 송환 문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바람도 이어집니다.
[이지유/'평화의 바람 기행' 참가자 : "언젠가는 통일이 되면 다 북한으로 자기 고향으로 집으로 송환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 바람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넘어 화해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정수용/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 "남과 북이 화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데 있어서 (남북의) 돌아가신 분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부터 먼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박 2일 동안 진행된 평화의 바람 기행을 이어간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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