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립하는 음악상, 누구를 위한 것인가 [콘텐츠의 순간들]

강일권 2026. 3. 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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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시상식은 한 시대의 음악을 설명하고, 음악의 가치를 재분배한다. 한국에는 비슷한 성격의 시상식이 서로의 권위를 잠식한다.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한국에는 대중음악 시상식이 많다. 연말 혹은 연초가 되면 방송사·언론사·협회·음악 플랫폼 등이 저마다의 이름을 내건 트로피를 꺼내 든다. 현재진행형인 시상식만 해도 10여 개에 이른다. 마마 어워즈(MAMA), 골든디스크 어워즈, 한국대중음악상(KMA), 멜론뮤직 어워드(MMA), 코리아그랜드뮤직 어워즈(KGMA), 서울가요대상, 한터뮤직 어워즈, 케이월드드림 어워즈(KWDA), 더팩트뮤직 어워즈(TMA), 디 어워즈. 여기에 개최가 연기되었거나 1회성에 그친 시상식까지 더하면 수는 더 불어난다. 시장의 크기를 고려하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셈이다. 심지어 그 안에서 다양성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대 음악시장을 둔 나라들조차 이 정도로 시상식이 난립하지는 않는다. 몇 개의 핵심 무대가 상징성을 나눠 갖고,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공식 결산처럼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그래미 어워드와 영국의 브릿 어워드가 대표적이다. 이 시상식들은 시상식의 가장 핵심적인 존재 이유, ‘권위’를 갖고 있다.

권위라는 단어는 종종 오해를 산다. 어딘가 딱딱하고 위계적이며, 강압적인 느낌부터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힘으로 복종을 끌어내는 태도처럼 들린다. 하지만 시상식이 갖춰야 하는 권위는 그런 종류의 힘과는 다르다. 여기서의 권위는 명령이 아니라 신뢰에 가깝다. 즉 시상식 결과를 발표했을 때 그 판단이 자연스럽게 존중받는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문화적 권위다.

2026년 2월1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EPA

예컨대 그래미 어워드가 여전히 세계 음악계에서 상징성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됐거나 무대가 화려해서가 아니다. 그 상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가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바꾸고, 몸값을 바꾸고, 세간의 평가까지 바꾼다. ‘그래미 수상’이라는 수식이 음악가의 생애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권위를 가진 시상식은 단순히 상찬을 나누는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음악 생태계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하나의 기준을 만든다. ‘올해의 앨범’이나 ‘올해의 노래’라는 선택은 무엇이 동시대적으로 의미 있었는지, 어떤 시도와 성취가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좌표다. 다음으로 기억을 남긴다. 우리는 종종 ‘그해의 수상자가 누구였지?’라는 질문으로 한 시절의 분위기를, 그리고 그때의 음악을 떠올린다. 더불어 수상 기록은 훗날 그 시대의 음악을 설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음악의 가치를 다시 배분한다. 권위 있는 시상식은 이미 많이 팔린 장르나 이름만 반복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의미 있는 작업을 조명하고, 시장 논리와는 다른 선택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든다. 차트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차트가 놓친 부분을 보완한다. 시상식의 권위란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무엇을 더 오래 기억해야 할지 제안하는 힘이다. 그래서 권위 있는 시상식은 한 시대의 음악 신과 문화를 정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작은 기준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 온다 하면 점수 주기 좀 그렇지”

물론 그래미처럼 위상이 높은 시상식 역시 후보군에 대한 논란과 수상 결과에 대한 반발은 뒤따른다. 그럼에도 많은 이가 여전히 그 결과를 의미 있는 판단으로 받아들인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독자적인 기준과 심사 체계를 갖춘 제도라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비판 속에서도 판단의 무게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상태, 모든 시상식이 진짜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시상식의 권위가 약해지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심사 대신 수치가 말하고, 평가 대신 투표 동원력이 승부를 가른다. 또한 참여진을 섭외하는 능력으로 시상식의 위상을 포장한다. 스트리밍 횟수와 판매량, 팬덤 규모가 고스란히 점수로 환산되고 그대로 트로피로 이어진다면, 그 자리는 더 이상 판단의 공간이 아니다. 이미 알려져 있는 통계를 한 번 더 발표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상식은 결국 또 하나의 대형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한국 음악 시상식의 현실이 딱 그렇다. 비슷한 성격의 시상식이 동시다발로 생겨나 서로의 권위를 잠식해가는 형국이다. 대표가 없으니 기준이 흐려지고, 기준이 흐려지니 신뢰도 쌓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선택지가 풍부해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하나도 결정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시상식의 규모나 연출이 더 화려해지는데도 좀처럼 기대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이 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한 해의 음악을 평가했는지, 이 무대가 다른 행사와 무엇으로 구별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겉모습만 화려해진 셈이다. 목적과 의미를 잃은 증식은 결국 소모를 낳는다. 트로피는 매년 누군가에게 주어지지만, 정작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매우 드물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상으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드의 트로피. ⓒ그래미 어워드 홈페이지

좀 더 다양한 장르와 인디까지 폭넓게 아우르려는, 이른바 대안적이라 불리는 시상식들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본과 규모의 논리 안에서 메이저 시상식들이 하지 못한, 혹은 간과한 부분들을 어느 정도 충족해주며 시상식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중의 관심과 흥행에 목말라하며 공정성을 거스르는 유혹에 굴복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소규모로 진행되거나 대중에게 덜 알려진 시상식일수록 인지도 높은 메이저 아티스트의 참석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의 모든 시상식이 저마다의 이유로(누군가는 브랜드 사업의 일환으로, 누군가는 음악 신의 부흥을 위해) 세간의 관심과 흥행이 필요하다 보니 선정 과정에서 옳지 못한 일까지 벌어진다. “○○○ 이번 시상식 참석할 수 있대요? 참석을 해야지. 못 온다고 하면 점수 주기가 좀 그렇지.” “(아이돌 그룹) ○○○ 측이 시상식에 오기 어렵다고 했다는데, 상을 받는다고 미리 알려주면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요? 그렇게 다시 섭외해보죠.”

믿기 어렵겠지만, 시상식을 위해 내로라하는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실제로 목격한 일들이다. 이런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시상식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티스트, 대중, 언론, 기획사, 음악시장, 과연 누구를 위한 시상식인가. 때로는 선정위원 개개인의 영광과 과시를 위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한국 음악계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상식이 아니라, 이 과잉을 멈추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많은 ‘올해의 최고’가 필요한가. 아니면 단 하나의, 제대로 된 결산만으로도 충분한가. 오늘날 우리의 시상식에 ‘상’은 넘쳐나지만, 정작 ‘이 상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턱없이 부족하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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