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중앙시장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전국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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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앙로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고도 성장기까지만 해도 강원 영서 전역에서 사람이 몰려들던 커다란 시장이었다.
위로는 강원도청과 춘천시청, 밑으로는 춘천역을 둔 자리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춘천에 주둔한 미군으로 인해 춘천은 기지촌 역할을 맡게 됐다.
춘천시는 올해 옛 캠프 페이지 부지를 개발하는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팔소매를 걷어붙였고, 춘천역 인근에는 연일 공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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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중앙로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고도 성장기까지만 해도 강원 영서 전역에서 사람이 몰려들던 커다란 시장이었다. 위로는 강원도청과 춘천시청, 밑으로는 춘천역을 둔 자리다. 시장에는 장 보려는 사람들과 물건 찾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동시에 이곳은 오랫동안 ‘양키시장’으로 불렸다. 1952년 미 9군단이 595개 작은 점포를 설립했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전후에도 인근 미군 주둔지 캠프 페이지에서는 당시 좀처럼 구하기 어려웠던 초콜릿과 잼, 커피와 미제 생활용품들이 유통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여기까지는 춘천 중심부에 대한 아주 보편적이고, 공식적인 기억이다.
춘천의 중심부를 기억하는 방식은 하나가 더 있다. 이 기억의 방식은 공식적으로는 잘 남겨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지역적이되 보편적인 여성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다시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춘천에 주둔한 미군으로 인해 춘천은 기지촌 역할을 맡게 됐다. 중부전선을 방어하고, 군수물자를 수송한다는 명분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고작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폐허, 여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허락되지 않은 사회적 자리, 지방 소도시의 폐쇄성. 이 세 가지 조건 아래 여성들은 기지촌을 운영하는 ‘비공식적인’ 노동의 세계로 밀려났다.
한국 정부는 국가경제 발전과 외화 획득을 위해 이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부르며 동원하면서도, 이들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강제로 성병 검진을 받게 하는 등 폭력적이고 일상적인 통제를 가했다. 국가의 주권과 안보, 경제성장을 지탱하기 위해 여성들의 권리와 노동은 착취와 침묵 속에 놓여야 했다.
한 입양인이 춘천 ‘고아원’에 돌아와 던진 질문
2026년은 춘천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21년째 되는 해다. 춘천시는 올해 옛 캠프 페이지 부지를 개발하는 도시재생혁신지구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팔소매를 걷어붙였고, 춘천역 인근에는 연일 공사가 이어진다. 그러나 도시를 ‘혁신’한다고 해서 과거 국가와 사회가 조용히 묻으려 했던, 여성들의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시 재생산권을 박탈당한 여성들은 외로운 출산을 겪은 뒤 아이를 인근 ‘고아원’으로, 해외로 보내야만 했다. 이제 그 아이들은 청년이, 중년이 되어 다시 지역을 찾는다. 그리고 여성에게 가해졌던 오랜 폭력을 그들의 존재로 증명한다. 한 입양인은 자신이 춘천의 한 고아원에 머무르던 시절 사진을 들고 와 내게 이렇게 질문했다. “(한국에서) 제 권리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한때 ‘아동 수출국’이던 한국의 오명에 대해 사과하고, 입양인 권리 보호를 위해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 즉 여성에 대한 폭력은 국가, 사회, 그리고 공모자들의 묵인 속에 지금도 지속된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한국 여성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57.4%를 차지했고, 성평등가족부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토킹 범죄는 2023년 대비 12.3% 증가했다. 여성 다섯 명 중 한 명은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을 당한다. 국제적 ‘필수의약품’ 유산유도제는 한국에서만은 아직도 식약처 허가를 받지 못했다. 3월8일은 115회 세계 여성의 날이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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