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 가득한 지하 1000m 실험실…암흑물질을 찾아라!

○ 암흑물질 지하 1000m에서 찾다?!
● 우주 방사선을 피해 지하로 내려가다
지난 2월 14일 지하 1000m 아래에 위치한 실험실에 다녀왔습니다.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자 약 3분 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 600m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승강기에서 내려 카트를 타고 안으로 이동하니 거대한 실험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강원도 정선 '예미랩'이었습니다.
정선 예미랩은 2022년 강원도 정선군에 지어진 지하 실험실로 크기가 3000㎡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지하 실험실이자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예미랩에서는 여러 분야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우주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물질입니다. 암흑물질은 신호가 약해서 지하에서 주로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카트에서 내려 앞을 바라보자 공기가 바깥으로 드나드는 배관 두 개가 길게 뻗어 있었습니다. 실험실 입구에는 소음이나 먼지를 막기 위해 방진문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중 암흑물질을 연구하는 실험실은 붉은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기계인 ‘코사인-100U’ 때문이었습니다. 소중호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원은 “붉은빛은 에너지가 가장 낮다”며 “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자극을 줄여 암흑물질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미세한 암흑물질의 신호를 찾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합니다. 특히 우주 방사선은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우주 방사선은 우주에서 만들어져 지구로 향하는 방사선입니다.
우주 방사선이 지구의 대기와 부딪히면 ‘뮤온’이라는 아주 작은 입자가 만들어집니다. 손바닥만 한 면적을 하루에도 8만 6000여 개 지나갈 만큼 뮤온은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뮤온이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기계에 부딪히면 기계가 암흑물질 신호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미랩은 뮤온을 피하고자 지하 깊은 곳에 지어졌습니다. 소 연구원은 “예미랩에서는 하루에 뮤온이 2개 정도만 통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미랩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덧붙였습니다.

○ 암흑물질 정체는?
● 질량이 있지만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암흑물질은 1933년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에 의해 처음 발견됐습니다. 츠비키는 3억 광년 떨어진 별의 무리를 관측하다가 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알려진 별과 가스의 질량만으로는 별이 회전하는 속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츠비키는 보이지 않지만 중력으로 은하를 붙잡는 물질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것이 암흑물질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암흑물질의 중요한 특징은 질량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 정확한 질량이 알려지지 않아 추측만 할 뿐입니다.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우주 표준 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암흑에너지 약 70%, 암흑물질 25%, 별과 가스 같은 보통 물질 5%로 구성돼 있습니다.
황호성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천문학과 교수는 “암흑물질이 보통 물질보다 5배 더 많아서 질량이 5배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암흑물질은 보통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보통 물질은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의 네 가지 힘을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지만 암흑물질은 이러한 힘과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대신 질량이 있어서 중력의 영향은 받습니다. 그래서 다른 물질을 끌어당기거나 다른 물질에 끌릴 수 있습니다.
암흑물질은 다른 힘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아서 존재를 간접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중력 렌즈 현상이 있습니다. 중력 렌즈 현상은 멀리 있는 은하의 빛이 질량을 가진 물질의 중력에 의해 휘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멀리 있는 별을 관찰하면 별 사이의 암흑물질 때문에 실제 위치와 다르게 보입니다.
은하가 회전하는 속도도 암흑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합니다. 원래라면 중심에서 거리가 먼 별은 중력이 약해져 회전 속도가 느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중심과 가까이 있는 별과 멀리 떨어진 별의 회전 속도가 비슷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별이 빠르게 돌려면 그만큼 큰 질량이 필요합니다. 물체의 질량과 중력이 비례하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보통 물질만으로는 그만큼의 질량이 나올 수 없어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지만 질량이 있는 물질이 존재한다고 추측했습니다.

○ 암흑물질 우주 구조의 열쇠?
● 우주 구조를 만들다
지난 1월 16일 영국 더럼대 등 공동 연구팀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암흑물질 지도를 네이처 천문학에 공개했습니다. 연구팀은 적도 근처에 있는 한 별자리를 255시간 동안 관측한 후 80만 개의 은하를 식별했습니다. 은하에서 오는 빛이 암흑물질의 중력에 의해 어떻게 휘어지는지를 분석해 암흑물질의 분포를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지금껏 발표된 암흑물질 지도 중 가장 선명하다”며 “은하 주변에 암흑물질이 늘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주에 암흑물질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을 넘어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이라는 엄청난 폭발로 탄생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에 암흑물질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의 온도가 낮아졌고 이에 따라 양성자나 중성자 등 원자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약 4억 년 후 별이 최초로 탄생했습니다.
이후 암흑물질의 거대한 중력에 의해 가스나 먼지, 별들이 모여 은하가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 또한 이렇게 형성됐습니다. 은하가 수천 개 정도 모이면 거대한 은하 집단인 은하단이 만들어집니다.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의 정체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두 가지 입자가 암흑물질의 유력한 후보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바로 윔프와 액시온입니다.
윔프는 약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무거운 입자라는 뜻입니다. 윔프를 검출하기 위해 원자핵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검출기 안의 원자핵과 윔프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측정하면 윔프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미랩에 있는 코사인-100U가 윔프 관측 실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액시온은 아주 가볍고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는 입자입니다. 액시온은 강한 자기장 안에서 빛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액시온이 빛으로 바뀔 때 빛의 주파수를 측정하면 액시온의 에너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IBS는 액시온을 찾기 위해 지구 자기장보다 약 10만 배 이상 강한 자기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중호 연구원은 “윔프와 액시온의 에너지를 측정하면 이들의 질량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며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직 암흑물질의 명확한 신호는 찾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연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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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정 기자 yjyj08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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