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이 대통령의 ‘남북관계 특별선언’을 기대하며
“체제 존중”을 “주권 존중”으로 업그레이드하고 공식 국호 사용도 고려해야
국민 의식도 변화... 지방선거 이후 남북관계 패러다임 전환 공론화하자

남북관계의 답답한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사태가 악화되면서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사고의 대전환을 담은 이재명 대통령의 ‘특별선언’을 제안하고 싶다. 건국 이래 한국 대통령이 ‘특별선언’ 형태로 남북관계의 비전을 천명한 적은 노태우의 ‘민족자존과 평화통일 특별선언’(7·7 선언)이 유일하다. 1988년에 밝힌 이 선언은 남북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교류협력·평화공존·통일로 나아가자는 취지를 담았다. 3년 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모태도 7·7 선언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선언과 기본합의서에 담긴 ‘통일지향적인 특수관계’는 종언을 고할 상황에 처했다. 그래서 우리는 ‘구체제’를 계속 붙잡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신체제’를 모색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일단 조선은 한국과 ‘절연’하겠다는 하고, 한국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변화를 통한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어떠한 대북 제안을 내놓아도 효능감을 가질 수 없다. 역사상 두 번째로, 그리고 38년 만에 대통령의 특별선언이 나오길 기대하는 까닭이다.
특별선언이 필요한 이유는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변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선 조선의 변화이다. 우리는 대개 조선의 핵·미사일 활동과 적대적 두 국가론, 그리고 김주애로의 세습 가능성에만 주목한다. 그런데 조선은 우리에 앞서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2023년 7월부터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한국)으로 불러왔고, 작년 6월부터는 ‘괴뢰’나 ‘것들’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 조선의 최상위 규범에 해당하는 당규약에서 ‘적화통일’이나 ‘남조선 혁명론’으로 간주되었던 조항을 삭제했다. 조선이 헌법 개정을 통해 두 국가론을 명시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한반도에 두 국가가 병존·공인되었다는 입장은 확고해지고 있다.
또 하나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북미관계 못지않게 남북관계의 규정력이 높아졌고, 또 북미-남북관계의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18년 이래 미국의 대북선제공격론이 사라졌고, 필요할 경우 한국을 거치지 않고도 북미간의 직접 소통이 가능해졌으며, 조선이 미국과의 평화공존의 가능성은 탐색하면서도 미국이 아닌 한국을 “불변의 제1 주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 변화는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주고 있다. 도전의 핵심에는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도 있지만, 북미관계가 잘 풀리더라도 이것이 남북관계의 적대성 해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도 있다. 반면에 기회의 핵심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한 조선의 변화가 전쟁 위기의 근원을 해결하고 평화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즉, 조선의 통일 포기를 유감스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적화통일’과 ‘무력통일’도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품고 있는 평화의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남북관계의 규정력이 커진 만큼 우리의 선택이 가져올 기대효과도 커졌다. 이러한 진단이 의미하는 바는 대안과 해법의 중요한 일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특별선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평화적 두 국가 추구’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여러 전문가와 언론뿐만 아니라 통일부도 이를 언급하고 있어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아직까진 평화적 두 국가론이 정부의 공식 방침이 아닐뿐더러 이와 배치되는 요소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은 2021년에 당규약을 개정했는데, 한국에선 2004년 이후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정치권에서 실종된 상태이다. 1990년대에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에 포함된 전시 ‘북한 점령→안정화→통일 달성’도 유지되고 있다.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 ‘충무계획’과 조선의 국가성을 부인하는 이북5도청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일부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북한” 표현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명시한 헌법 3조는 80년 가까이 토시 하나 바뀌지 않고 있고, 다양한 개헌 논의에서도 이 부분은 빠져 있다.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고 대북 접촉·접근·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사로잡힌 나머지 정작 우리의 변화에 소홀했던 셈이다.
하여 이재명 대통령이 특별선언을 발표한다면,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용단과 비전을 담길 바란다. 먼저 “체제 존중”을 “주권 존중”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어떨까 한다. 주권 존중이 유엔 헌장과 평화공존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기에 제안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북5도청을 실향민지원청으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했으면 한다. “흡수통일 불추구”도 실질화해야 한다. 핵심은 충무계획을 개폐하고 한미연합사 작전계획과 연합훈련의 2부 가운데 ‘북한 점령→안정화→통일 달성’을 제외하는 것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공식 국호 사용과 영토조항 개정도 공론화해보면 어떨까 한다. 아울러 임기 내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남북미중 평화협정 협상 개시를 제안했으면 한다.
‘비핵화’가 빠져 있는데, 비핵화는 무음으로 처리하는 게 실용적이다. ‘한반도를 포함해 핵위협과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로 대체하는 게 여러 모로 낫다. ‘통일’도 빠져 있는데, ‘오로지 평화통일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아 그 기반을 하나둘씩 다지겠다’는 취지면 족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듯 평화적 두 국가론은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는 실질적인 조치’, ‘실질적이고도 완전한 흡수통일론 배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이정표인 평화협정 임기 내 체결 추진’이라는 세 축으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이는 ‘튼튼한 안보’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민국 국방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재정의해 ‘전수방위’ 원칙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평화공존과 자주국방의 병행 전략이다.
하나같이 극심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조선을 국가로 간주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고, 평화통일이 헌법 정신이기에 흡수통일론을 실질적으로 배제하자는 데에 국민적 공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국보법 폐지도 상호주의 관점을 강조하면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작전계획과 연합훈련 수정은 미국도 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한미간에 협의해볼 수 있는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영토조항 개정은 충분한 공론을 거쳐야 할 사안이다. 아울러 대통령의 특별선언에 상기한 내용을 모두 담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면서 특별선언 발표는 지방선거 이후에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변한다고 조선이 호응할까?'라는 의문도 당연히 들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한국이 달라질 수 없다고 보기에 적대적 두 국가를 고착화하려고 한다. 이는 거꾸로 한국의 변화가 조선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와 관련해 필자를 포함한 응원단이 3월 9일에 호주에서 열린 조선과 중국의 여자축구 경기에서 “조선 이겨라”를 외치니, 경기 후에 조선 선수들이 우리 응원단을 향해 인사했다. 작은 경험이지만 ’변화를 통한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일본에 파병 못 얻어낸 트럼프 “한국 사랑해”…정부의 선택은
- [단독] ‘74명 사상’ 안전공업, ‘1급 위험물질’ 나트륨 허가 이상 반입
- “창문 있어야 깨고 나오지”…대전 화재 참사, 아들 잃은 아버지 오열
- [속보] ‘윤석열 검찰 조작기소’ 의혹 국조계획서, 국회 본회의 통과
- ‘48시간 통첩’ 트럼프 “호르무즈 봉쇄 안 풀면 이란 발전소 초토화”
- 이란, 4천㎞ 밖 ‘미·영 기지’ 공격…파괴당한 미사일 역량 유효하나
- 노무현 대통령 소망한 ‘파병 거절해도 받아들여지는 시대’ 왔나
- BTS 공연 “26만명” 온다더니, 절반도 못 미쳐…공무원 동원 적정했나
- 한국 언론들, 전쟁해서 돈 번다지만…‘천궁-Ⅱ 대박’ 기사 안 쓴 이유
- 노무현 대통령 소망한 ‘파병 거절해도 받아들여지는 시대’ 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