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명의] “아침 소변이 콜라색…면역이 내 피 공격하는 희귀질환일 수도”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적혈구 보호 단백질 사라져 적혈구 깨져
혈색소 용출 돼 아침에 콜라색 소변
혈전·신부전까지 불러…생명 위협
신약으로 생존 크게 개선…보험 기준 높아

이유 없이 심한 피로가 이어지고, 아침 소변 색이 콜라처럼 짙게 변했다면 단순한 빈혈로 넘겨선 안 된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적혈구를 공격해 혈액이 깨지는 희귀질환,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일 수 있기 때문이다.
PNH는 희귀질환으로, 현재 국내 등록 환자는 5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유병률로 보면 100만 명당 10~4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이자 골수부전센터장인 박실비아 교수는 21일 저녁 9시 서울경제TV ‘지금, 명의’에 출연해 “PNH는 적혈구가 혈관 안에서 지속적으로 파괴되면서 빈혈뿐 아니라 혈전증, 신장 기능 악화 등 치명적인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라며 “과거에는 사망 위험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신약이 나오면서 생존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자기 면역이 적혈구 공격
우리 몸에는 외부 침입자를 방어하는 면역 시스템 중 하나로 ‘보체(complement)’가 있다. 원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역할을 하지만, PNH 환자에서는 적혈구 표면에 있어야 할 보호 단백질이 결핍돼 보체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PNH는 조혈모세포에 후천적 유전자 변이가 생겨 이러한 보호 단백질이 생성되지 않는 질환으로, 이로 인해 적혈구가 혈관 내에서 지속적으로 파괴된다. 그 결과 적혈구 안의 혈색소가 소변으로 배출되면서 아침에 콜라색 소변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서 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박 교수는 “콜라색 소변은 PNH의 대표 증상이지만 환자 모두에게서 보이는 것은 아니고, 약 60% 정도에서 경험한다”며 “꼭 아침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감기나 감염처럼 몸 상태가 나빠졌을 때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혈전증·신부전으로 사망도
PNH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적혈구가 깨져 빈혈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혈관 안으로 유리된 혈색소는 혈관 이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화질소를 소모한다. 그 결과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고, 여러 장기에서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박 교수는 “PNH에서는 혈전이 잘 생기는 과응고 상태가 되기 쉽다”며 “뇌혈관에 생기면 뇌경색, 복부 혈관에 생기면 극심한 복통, 폐혈관에 생기면 심한 호흡곤란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신장 기능이 악화돼 과거에는 혈전증과 신부전 때문에 사망률이 상당히 높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피로감, 숨참,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전신 통증,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박 교수는 “환자들이 너무 아파서 진통제까지 필요할 정도인데 검사상 뚜렷한 원인이 안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 신약으로 생존 곡선 정상인과 비슷
PNH는 혈액검사에서 적혈구 파괴로 인한 용혈이 확인되면, 적혈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특수 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PNH 치료의 전환점은 보체를 차단하는 신약이 등장하면서 마련됐다. 가장 먼저 나온 약이 ‘솔리리스(에쿨리주맙)’로, 적혈구 파괴의 핵심 역할을 하는 ‘보체 단백질 C5’를 억제한다. 이후 같은 표적을 겨냥하지만 투여 간격을 8주까지 늘린 ‘울토미리스(라불리주맙)’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보체 반응의 초기 단계에서 작동하는 C3와 인자 B, D 같은 핵심 단백질을 차단하는 신약들도 국내에 속속 도입됐다. 자가주사제인 ‘엠파벨리’, 경구제인 ‘파발타’ 등 치료 선택지도 다양해졌다.
박 교수는 “솔리리스가 처음 등장하면서 PNH 치료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과거에는 정상 인구보다 생존곡선이 뚜렷하게 떨어졌지만, 신약이 도입된 뒤에는 정상인에 근접할 정도로 생존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혈전증, 통증, 피로감 등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증상도 크게 호전된다”며 “환자들은 원래 자기 컨디션이 그런 줄 알고 살다가 치료 후 비로소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문제는 비싼 약값과 보험
하지만 치료 접근성에는 여전히 큰 장벽이 있다. PNH 신약은 연간 약값이 4억원 안팎에 이를 정도로 고가다. 사실상 건강보험 적용 없이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보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이다. 현재는 세포가 손상되거나 깨질 때 혈액으로 많이 나오는 물질인 젖산탈수소효소(LDH) 수치가 높고, 여기에 더해 명확한 합병증이 입증돼야 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위험 신호가 뚜렷해도 혈전이나 장기 손상 같은 합병증이 실제 발생하기 전까지는 치료 시작이 어려운 것이다.
박 교수는 “의사 입장에서는 LDH가 높고 위험한 환자에게 미리 약을 쓰고 싶지만, 지금 구조는 합병증이 생겨야 약을 쓸 수 있는 체계”라며 “예방적 치료가 아니라 손상이 생긴 뒤에야 개입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신장 기능이 많이 나빠진 뒤 치료를 시작하면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그래도 이후 다른 합병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약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지금 보험 기준 때문에 약을 바로 쓰지 못하고 애태우는 환자들이 많지만, 새로운 임상시험 기회도 있고 약제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며 “병원에서 꾸준히 추적하며 합병증을 놓치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 치료 기회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금숙 기자 ks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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