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과 장항준 '30년 우정'의 시작은? 촬영장 비극이 이어준 인연

라제기 2026. 3. 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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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은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장항준 감독과 첫 협업을 하게 된다. 영상 캡처
당신이 잘 몰랐던 배우 유해진<2>

장항준 감독은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영화감독의 길을 가고 싶었다. 방송국에서 일하다 영화계에 발을 디뎠고, ‘박봉곤 가출 사건’(1996)의 각본을 쓰며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데뷔 각본은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올랐다. 신인으로서는 눈에 띄는 출발이었다.

하지만 메가폰을 잡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감독 데뷔는 쉽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한 영화사에서 제작하기로 했던 영화가 촬영을 눈앞에 두고 무산된 적도 있었다. 연출부를 꾸리기까지 한 상황이었으니 장 감독으로서는 난처하기만 했다. 장 감독은 나 몰라라 하는 제작사 대신 연출부원들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쥐어주고 싶었다.

장 감독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이관수 프로듀서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이 프로듀서는 연예기획사였던 에이스타스엔터테인먼트 제작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장 감독은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프로듀서는 장 감독의 재능을 알기에 연출 계약을 맺자고 그 자리에서 제안했다. 급전이 필요한 장 감독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 감독은 코미디 영화 각본 작업에 들어갔다. 계단 밑으로 떨어진 총을 줍다가 난간에 머리가 낄 정도로 어리숙한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인 영화였다.

이 프로듀서는 에이스타스엔터테인먼트에서 ‘주유소 습격사건’(1999)과 ‘선물’(2001) 각본으로 각광 받고 있던 박정우 작가(2004년 ‘바람의 전설’로 감독 데뷔)의 ‘라이터를 켜라’(2002) 각본의 영화화를 준비 중이었다. 당초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2001)의 김상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연출을 할 수 없게 됐다. 배우 차승원 캐스팅까지 확정된 상황이라 새 감독을 찾는 일이 급했다. 이 프로듀서는 장 감독에게 연출 제의를 했다. 자신이 쓴 각본으로 장편 데뷔작을 만들고 싶던 장 감독으로서는 선뜻 나설 수 없었다. 하지만 장 감독은 각본 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 데뷔 기회가 언제 찾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장항준(왼쪽) 감독은 연출 데뷔작인 '라이터를 켜라'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라이터를 켜라’는 2001년 12월 13일 경기 화성시에서 크랭크인을 했다. 감독 자리에는 신인 장 감독이 앉았다. 유해진은 여러 조연배우 중 하나였다. 유해진의 역할은 크다 할 수 없었으나 촬영 중 뜻밖의 사고로 장 감독과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됐다.


“그러려니 하세요…” 능청의 힘

영화 '라이터를 켜라'는 배우 김승우(왼쪽)와 차승원이 주연으로 나선 코미디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라이터를 켜라’는 서른 살 남짓 백수 허봉구(김승우)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다 ‘전 재산’인 라이터 하나를 잃어버리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건달 두목 양철곤(차승원)이 봉구와 라이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유해진은 봉구와 철곤이 열차 안에서 다툴 때 곤경에 처하는 승객 중 하나인 침착남으로 출연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인물이나 선입견과 달리 예상치 못했던 면모를 보여준다.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라는 대사는 내성적으로 여겨졌던 침착남의 능청을 잘 보여준다. 유해진의 코믹한 면모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영화는 조폭을 소재로 한 코미디였으나 촬영장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중년 단역 배우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촬영 중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유족들은 당연히 거세게 항의했다.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 일이었으나 제작진으로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련이었다. 30대 초반 신인 장 감독은 슬픔과 정신적 충격이 컸음에도 무너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영화를 완성해야 했으니까.

‘라이터를 켜라’는 2002년 7월 16일 개봉했다. 130만 명 정도가 봤다.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도, 실패했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수치였다. 다만 장항준이라는 재치와 유머 감각을 지닌 젊은 감독의 등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영화인 사랑방 된 장항준 감독 아파트

유해진은 '라이터를 켜라'에서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 침착남을 능청스럽게 표현해냈다. 영상 캡처

‘라이터를 켜라’는 인상적인 흥행 성적을 남기지 않았으나 제작진에겐 남다른 인간관계가 남았다. 비극을 겪으면서도 영화를 완성해 개봉까지 했기에 관계자들은 끈끈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종영하고도 장 감독과 배우들, 제작자 등은 종종 만남을 가졌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한 아파트가 ‘아지트’ 역할을 했다. 장 감독이 아내 김은희(2006년 영화 ‘그해 여름’으로 작가 데뷔, 드라마 ‘유령’ ‘시그널’ ‘킹덤’ 등 집필) 작가와 함께 살던 곳이었다. 회합 멤버에 유해진과 가수 윤종신 등이 있었다. 20대 때부터 장 감독과 우정을 나눴던 윤종신은 ‘라이터를 켜라’ 영화음악을 맡았다. 그로서는 첫 영화음악 참여였다. 장 감독이 “영화음악은 가요와 다르다”는 제작자를 설득해 이뤄진 일이었다.

가수 윤종신은 장항준 감독의 오랜 절친으로 영화 '라이터를 켜라'의 음악을 담당했다. 윤종신 SNS

‘라이터를 켜라’ 종영 후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장 감독 집에 ‘라이터를 켜라’ 동지들이 모였다. 유해진도 함께했다. 수다와 술잔이 오갔다. 자리에 있던 A가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안 있어 아파트 단지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탁, 탁, 탁…’ 둔중한 물건으로 뭔가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였다. 유해진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씩 웃으며 태평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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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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