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미셸 푸코, 박경리, 김찬삼, 구봉서

20세기에 우뚝 솟은 철학자 미셸 푸코,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세계여행가 김찬삼, 코미디언 구봉서. 이들은 1926년생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올해가 탄생 100년이 되는 해다.
필자는 미셸 푸코의 난해한 저서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를 꾸역꾸역 완독했다. 에이즈로 사망한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도 읽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정통파 학계에서는 배척당하며 한때 북유럽, 미국에서 '떠돌이' 연구활동을 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타 강사'로 인기가 높았다. 그가 주창한 권력 이론은 오늘날 철학, 사회학, 심리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고교생들도 논술시험을 준비하며 그가 《감시와 처벌》에서 설명한 판옵티콘(원형 감옥) 개념을 공부한다.
그에게 유독 관심을 가진 것은 생몰연도(1926~1984)가 필자의 선친과 같다는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부친의 삶의 족적과 서양 철학자의 인생 궤적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살피는 게 흥밋거리였다.

질문, 답변은 주로 서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출판 이후 선친은 책 수백 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모친이 부친 서재를 뒤지다 책상 서랍에서 박 선생이 보낸 편지 뭉치를 발견하고 질투심에서 몽땅 불태웠다. 이 편지가 남아있다면 문학사에서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터인데…. 훗날 박 선생의 따님 김영주 여사에게 이 사실을 문의하니 "금시초문"이라 대답했다.
해외여행이 매우 어렵던 시절에 160개국을 여행하고 기행문을 남긴 김찬삼 교수는 한국의 원조 세계여행가이다. 1958년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한 그는 세 차례의 세계일주, 20여 차례의 세계 테마여행, 1000여 개 도시를 방문했다. 기행문은 신문, 잡지에 연재됐고 이를 묶어 《김찬삼의 세계여행》이란 책으로 냈다. 숱한 소년소녀들이 이를 읽고 세계를 향한 웅지를 품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은 청년들에게 모험정신을 북돋우었다.
구봉서 코미디언은 한 시대를 풍미한 희극배우였다. 영화, TV 등에서 맹활약했다. 관객은 그의 얼굴만 봐도 폭소를 터뜨렸다. 지방 극장의 쇼 무대에 출연한 그를 부친과 함께 몇 번 육안으로 본 적이 있다. 분장을 해서 그런지 부친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최근 세계 최고령 현역 성악가 홍운표 테너를 만났다. 명함을 받으니 '백세 테너'라 쓰였다. 1926년생인데 허리가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씩씩해 80대 초반처럼 보였다. 몇 차례 방송에 출연하니 공연 요청이 줄을 잇는단다. 기획사와 매니지먼트 계약도 체결했다. 요즘도 하루 두세 시간 피아노를 치며 노래 연습에 몰두한다.
건강 비결은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대신에 계단을 걷고 햄버거를 포함한 다양한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이란다. 충남 공주에서 성장할 때 집에 있는 축음기로 서양음악을 자주 들었다. 뜻도 모르면서 따라 불렀는데 어른들은 칭찬하며 노래를 자꾸 시켰다.
1943~1948년에 일본 도쿄 음악학교에서 공부했고 귀국해서는 음악 교사, 대학강사로 근무하면서 간간이 무대에 섰다. 1982년 도쿄에서 당대 최고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1921~2008)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그때 이탈리아 민요 '오 솔레미오'를 불렀는데 스테파노가 "귀하가 나보다 더 잘 불렀소!"라고 격찬했단다. 홍 테너는 "100년 음악인생에서 지금이 최전성기"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서기 위해 연마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홍 테너의 전성기가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고승철(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