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서도 배울 건 배워라"

이상우 기자 2026. 3.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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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법률신문은 정주영 회장이 주재한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록을 입수했다.

그 선봉에 정주영과 현대그룹이 있었다.

법률신문은 <거인의 유산> 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현장에서 발언한 메시지를 20회로 정리해 보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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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거인의 유산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사장단 회의록 최초 공개
1984~1985년 상황 치밀한 기록
단호하고 정확한 언어 생생
집무실에서 대화하는 정주영 회장.  김명호 편저 《건설자 정주영》 (삼련서점 서울) 105쪽. 

정주영.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대한민국 재건 현장에 그가 있었다. 길을 내고, 다리를 놓고, 공장을 세우고,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농토를 만들고, 올림픽을 유치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함께 먹고 씨름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기를 즐겼다. 통일 조국을 염원하며 휴전선을 넘나들었다. 2001년 3월 21일 그가 타계했다. 북한은 2000년 남북회담의 주역인 송호경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보내 조문했다.

법률신문은 정주영 회장이 주재한 현대그룹 사장단 회의록을 입수했다. 어디에도 공개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1984년 7~12월 회의록 16편, 1985년 1~6월 회의록 11편이다. 1984년의 경제성장률은 10.4%, 85년은 7.8%였다. 3저 호황 직전이었지만 대단한 성취의 시기였다. 그 선봉에 정주영과 현대그룹이 있었다. 1983년 11월 동아일보 간부 대상 특강, 1987년 11월 사장단 회의 훈시 자료도 확보했다. 사초(史草)와도 같은 이 자료들에서는 '소떼방북'이나 오백원 지폐의 거북선으로 차관을 얻어낸 이야기와 같은 일화에 가려진 그의 경영자로서의 판단과 진면목이 드러난다. 법률신문은 <거인의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현장에서 발언한 메시지를 20회로 정리해 보도한다.  
1984년 7월 16일 사장단 회의록.

기록 속 정주영의 언어는 단호하고 정확하다. 듣고, 묻고, 확인하고, 빠르게 지시한다. 모든 발언은 존댓말이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공부해 유교식 예의가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말단직원이나 음식점 종업원을 만나도 그의 어투는 한결같았다.

목표를 향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미포조선과 인천제철이 정부 정책 변화를 이유로 수출 목표를 하향 조정하겠다고 보고했다. 정주영은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시작부터 편하게 가려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라고도 했다. 목표 달성 방법을 찾아내라는 의미다. 

반도체 사랑은 남달랐다. "첨단 기술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습니다. 자연과학도, 무기도, 탄두의 명중률도 전부 반도체에 달려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동차와 함께 현대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점 찍었다. 반도체 사업 비관론이 나오자 "회의적 시선대로라면 부자는 영원히 부자고, 가난한 사람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만 나옵니다. 이론과 논리를 들이밀면 한국은 지금까지 (반도체뿐 아니라) 성공한 게 하나도 없어야 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SK하이닉스의 모태가 현대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