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100만원, 女 71만원…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李정부는 다를까

박지윤 2026. 3. 2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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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국정과제로 내놨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날인 지난 3월 8일,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도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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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100만원 받을 때 여자 71만원, OECD 1위
이재명 정부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법제화 추진
10년간 두 정권서 표류···이번엔 '법적 의무화'
500인 이상 기업 대상, 공시 범위 확대 목소리도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 합니다.
지난 5일 여성노동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2026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성평등공시제 도입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회사도, 직무도, 연차도 모두 똑같습니다. 다른 건 성별뿐인데 만약 옆자리에 앉은 남성 동료가 여성인 당신보다 월급을 더 받는다면 어떨까요? '혹시 우리 회사에도 임금차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문제 삼기는 어렵습니다. 급여를 확인할 길이 없으니까요. 한국에서 임금은 오랫동안 기업의 '기밀'로 취급돼 왔습니다. 임금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한, 차별을 없애달라고 요구할 근거조차 확보할 수 없다는 얘기죠.


30년 부동의 1위, 그 불명예 “보여야 바꿀 수 있다”

남성과 같은 능력과 경력을 갖춘 여성 노동자가 단지 성별 때문에 급여 차별을 받는다는 건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닙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 단 한 번도 나쁜 의미로 1등을 놓치지 않은 분야가 있는데요. 바로 성별 임금 격차입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29%로 OECD 평균(11.3%)의 두 배를 훌쩍 넘습니다. 남성 노동자가 100만 원을 받을 때 여성은 71만 원을 받는다는 뜻이죠. 38개 회원국 중 가장 큰 격차이며 2위인 일본(22%)과도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국내 민간 기업 대부분은 성별·직무·직급별 임금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국정과제로 내놨습니다. 임기 5년간 추진할 주요 정책이라는 의미죠.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란 기업이 채용·근로·승진 등에서 성별 임금의 세부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직종, 직급, 고용형태를 쪼개서 봐야 임금 격차의 원인이 드러나고 정밀한 처방도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기업에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정부 지원과 기업의 적극적 조치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입니다.

2019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회 조기퇴근 시위' 참가자들이 '3시 STOP'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를 비판하고 "오후 3시부터의 무급노동을 거부한다"며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남녀 임금 차이 공시', 숱한 표류의 역사

사실 임금 공개를 의무화하자는 논의는 이번에 처음 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 10년간 숱한 표류의 역사가 있었죠.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공약으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내걸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2018년 시행'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임금 현황 공개는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노사 갈등을 유발한다"는 경영계의 거센 반발에 밀려 흐지부지됐죠. 그나마 2019년 남녀고용평등법이 개정돼 직종·직급별 남녀 임금 현황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서울시가 투자·출연기관 23곳을 대상으로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시범 도입하며 초석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마련한 토대가 윤석열 정부에서 완전히 후퇴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성평등 임금공시제의 공식 명칭을 '성별근로공시제'로 바꾸며 임금 공개 의무 방침을 아예 제외했습니다. 직종·직급별로 세분화해 수집하겠다는 취지의 성별 임금 데이터를 남녀 전체 평균으로 통합해 버렸죠. 또 민간 기업은 아예 자율 공시로 남겨놓았습니다. 처벌 규정도 없었고요. 문재인 정부가 2년에 걸쳐 겨우 모으기 시작한 데이터를 주무 부처가 스스로 포기한 셈이죠. 여기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당시 정부의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임금 투명성 논의는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연내 추진하겠다는 이재명 정부, 이번엔 다를까

이재명 정부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주요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날인 지난 3월 8일,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도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죠. 전임 정부와의 차이점은 법적 의무화입니다. 자율 권고에 그쳤던 과거와 달리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공시를 의무화하겠다는 겁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2026 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에서 축사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시 대상은 현행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와 동일한 기준인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민간기업과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 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 그룹 계열사) 중 300인 이상 기업, 그 외 공공기관과 지방공사공단이 될 가능성이 크고요. 구체적인 공시 항목으로는 △남녀 중위임금 비율 △임금 분위별 성별 비율 △고용형태별 남녀 근로자 수 △성별 임금 격차 원인 분석 및 자체 개선 계획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주무부처도 고용노동부에서 성평등가족부로 바뀌었죠. 올해 상반기 중으로 법안을 마련하고 이듬해부터 단계적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본부장은 "정부의 의지에 기대를 건다"고 했습니다. "여성의 고용 비율, 관리자 내 여성 비율, 임금 4분위별 여성 비율 등 상세한 데이터가 공시 대상에 포함되면 성별 격차의 원인이 더 정교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건데요. "일단 공개를 시작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수치를 개선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죠.

다만 공시 범위를 두고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 여성 노동자 다수가 1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밀집해 있거든요. 때문에 500인 이상 기업만을 공시 대상으로 한다면 대다수 여성의 임금 실태가 여전히 알 수 없게 됩니다. 구 본부장은 "가까운 일본조차 100인 초과 기업은 공시를 하는데 우리의 기준은 이보다 느슨하다"고 지적합니다. 다만 "신속한 입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최소한 3년 정도 시행 후 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확대하겠다는 로드맵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5일 여성노동연대회의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세계여성의날 기념 성평등공시제 도입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시민사회의 요구는 더 강합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시 대상을 50인 이상으로 넓히라”고 촉구한 바 있습니다.


해외 선진국은 이미 단순 공개 넘어 개선 의무까지 지워

해외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성별 임금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17년부터 2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임금 정보공개청구권을 부여하고, 500인 이상 사업장은 임금 보고를 의무화했죠. 그 결과 2011년 22%였던 성별 임금격차가 법 시행 이후 유의미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영국은 2017년부터 250인 이상 기업에 성별 임금 격차 공시를 의무화했고, 아이슬란드는 25인 이상 기업에 '동일임금 인증제'를 도입했습니다. EU 역시 올해 상반기부터 성별임금격차공시지침을 시행합니다.

해외 정책의 공통점은 단순 공개를 넘어 '원인 파악'과 '개선 의무'가 한 묶음으로 추진된다는 점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 격차가 나면 설명 의무를 지우거나 시정 조치와 함께 개선 계획을 내놓게 하는 식이죠. 프랑스는 100점 만점의 '남녀평등지수'를 매겨 75점 미만이면 시정 의무까지 부과합니다.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는 첫 단추, 그 이후가 중요하다

다만 고용평등 임금공시제는 어디까지나 '첫 단추'입니다. 남녀 임금 격차를 단순히 공개한다고 해서 저절로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인데요. 구 본부장은 "성평등부가 주무부처가 된 건 기업에 대한 개선 권고 조치도 이전보다 강하게 가져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며 "공시와 함께 기업의 개선 활동을 실질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체계까지 갖춰야 한다. 이번에는 달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역시 “공시제도를 도입하는 것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상벌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정권에 걸쳐 표류했던 임금공시제가 이번에는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모든 건 ‘숫자를 드러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보여야 바꿀 수 있으니까요.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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