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의 산림치유 일지] 관악산과 할머니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관악산이 MZ들의 발길로 북적인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주말이면 정상 연주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30분씩 줄을 서고, 관악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30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MZ 사이에 거세게 불고 있는 인증 챌린지는 유행이고, 바람이다.
정상석 인증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과정에 머물러보는 건 어떨까.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관악산이 MZ들의 발길로 북적인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주말이면 정상 연주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30분씩 줄을 서고, 관악산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30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고 한다. 등산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MZ들의 낯선 행동이어서 관심이 갔다. MZ들의 관악산 등산 열풍은 인기 TV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한다. 한 역술인이 "인생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가서 정기를 받으면 좋다"라고 조언한 게 기폭제가 되었다. 이른바 운을 열어주는 산행을 의미하는 '개운산행(開運山行)' 참여 릴레이가 거세게 불고 있다는 거다.
우리 집에는 3대가 산다. 구순의 장모님과 우리 부부, 그리고 20대 두 딸. 이렇게 5명이 3대 가족의 구성원이다. 지난 정월 대보름날, 둘째 딸이 한 얘기다. "친구들이 온갖 나물을 해 먹는 우리 집을 이상하다고 얘기해요"라고. 친구 대부분은 대보름도 모르지만, 그날 각종 나물반찬을 해 먹는 걸 신기해 한다는 얘기다. 우리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장모님은 우리 식탁에 절대 권력(?)을 행사해 왔다. 당연히 절기마다 먹는 전통 먹거리에 익숙하고, 입맛도 자연히 옛날의 건강식이다.
MZ 사이에 거세게 불고 있는 인증 챌린지는 유행이고, 바람이다. 유행에 둔감한 나도 궁금했던 '두쫀코(두바이 쫀득 쿠키)'는 한 계절을 넘기며 이젠 시들해진 듯하다. 한때 거리마다 넘쳤던 '탕후루' 가게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정 인플루언서나 방송 콘텐츠 속 인물이 먹고 즐기는 걸 따라 하는 소비는 봄바람과 같다. 봄바람 같은 MZ들의 경험 소비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왕 따라 하는 소비 트렌드를 쫓는다면 제대로 즐겼으면 한다. 좋은 기(氣)를 받기 위해 산 가는 건 너무나 좋다. 정상석 인증에만 매몰되지 말고, 그 과정에 머물러보는 건 어떨까.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숲속 너럭바위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보는 것도 근사한 인증샷이 될 수 있다. 할머니의 삶에 스며든 우리 딸들이 건강한 입맛을 갖게 된 것처럼, 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숲이 주는 위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MZ의 일상은 전쟁터와 다름없다. 취업, 사랑, 사람과의 관계에서 항상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이기호의 소설 속 하소연이 남 일 같지 않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의 소설 주인공은 "나도 눈높이를 좀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 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라고 토로한다.
우리 집 아이들도 지금 격렬한 취업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여유를 가지라고 해주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데는 숲이 최고다. 도종환 시인은 "벚꽃이 십 리 가득 피었는데/ 이렇게 의자에 앉아 있는 건/ 내 인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노래했다. 지친 청춘들이 잠시라도 숲에 머무르며 자신에 대한 예의를 차릴 수 있기를, 그 봄바람이 잠시 스치는 유행이 아닌 삶의 단단한 뿌리가 되기를 응원해 본다.
김태일 Story 산림치유연구소장·산림치유지도사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