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구는 안 빠르고, 변화구는 안 변하고… 얻어맞는 한국 야구
1200만 관중 시대 韓야구 민낯… 미국 153km-일본 151km 쌩쌩
한국 145km… 20개국 중 ‘18위’
슬라이더 밋밋하고 커브는 정직… 속구 느려 체인지업 효과도 미비
고립 벗어나 ‘구속 혁명’ 동참해야

《빅데이터로 본 ‘한국야구 민낯’
프로야구 1200만 관중에 가려져 있던 한국 야구의 민낯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드러났다. 17년 만에 8강에 진출했지만 세계의 높은 벽을 확인했다. 한국 야구, 특히 마운드의 문제를 ‘빅데이터’로 살펴봤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일본 도쿄에서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일정을 마친 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날아가 2라운드(8강) 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8강전을 하루 앞둔 13일 경기 장소인 론디포파크에서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과 차례로 타격 연습을 진행했다. 한국 선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미니카공화국 타자들은 연신 ‘총알 타구’를 쏘아댔다.
지난해 MLB 평균 타구 속도 1위(약 156.9km)가 이번 대회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 멤버 오닐 크루스(28·피츠버그)다. 이 카리브해 섬나라 대표 선수 6명이 이 부문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타자들이 줄줄이 나와 배팅 볼을 받아치고 있으니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총액 300억 원이 넘는 계약을 따낸 노시환도, 지난해 KBO리그 신인왕 안현민도 ‘구경꾼 모드’가 될 만도 했다.
1200만 관중에 취해 있던 한국 야구가 이번 WBC를 통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 이 장면에 녹아 있다. 이튿날 한국 투수들이 ‘배팅 볼’을 던지면서 0-10,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하면서 확실히 그렇게 됐다. 군사용 레이더 기술로 투·타구 정보를 추적해 알려주는 ‘스탯캐스트’를 통해 한국 마운드 현실을 들여다봤다.

현대 야구에서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강속구’다. 투수가 던지는 가장 빠른 공은 흔히 ‘직구’라고 부르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2015년 MLB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속도는 시속 148.4km였다. 10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151.4km로 약 3km가 늘었다.
이 시속 3km 차이가 정말 대수일까. 이번 WBC에서 이긴 팀 투수가 던진 속구 계열(포심, 투심, 컷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50.2km, 진 팀은 147.0km로 3.2km 차이가 났다. 또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12개 팀(146.8km)과 2라운드에 진출한 8개 팀(150.3km)은 3.5km 차이였다. 한마디로 빠른 공을 던지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2010년대 이후 ‘구속(球速) 혁명’ 바람이 전 세계 야구계에 불었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한국 야구는 ‘갈라파고스’에 갇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WBC 2라운드에 진출한 건 2009년 제2회 대회 이후 17년 만이었다. 2009년 당시 한국(146.3km)은 일본(147.5km)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공을 던지는 팀이었다. 대회 결과 역시 일본이 우승, 한국이 준우승이었다.

한국도 구속 혁명 물결에서 완전히 비켜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한국프로야구에서 10이닝 이상 던지면서 속구 평균 시속 150km 이상을 기록한 투수는 총 14명이었다. 이 14명 중 11명이 김영우(21·LG·152.7km), 문동주(23·한화·152.3km) 같은 25세 이하 선수였다. 이들은 부상 등을 이유로 이번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홈플레이트는 움직이지 않는다”(새철 페이지)
투수에게 스피드를 강조하는 이야기에는 ‘공이 아무리 빨라도 제구가 엉망이면 소용없다’는 반론이 늘 따라다닌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한국 투수는 제구가 엉망이다’는 평가가 맞는 말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투수들이 던진 공 734개 가운데 331개(45.1%)가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20개 참가팀 중 9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소위 ‘코너 워크’, 그러니까 스트라이크 존 상하좌우 코너로 들어온 비율은 16.5%(121개)로 10위였다.
4사구가 너무 많은 것도 아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다섯 경기를 치르는 동안 9이닝당 4사구 5.1개를 기록했다. 미국(2.4개), 일본(2.5개), 도미니카공화국(2.9개) 같은 팀과 비교하면 4사구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대회 평균(5.2개)과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한 것만 해도 ‘대담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던지면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홈런을 허용한 투구 10개 중 9개가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한국 투수진은 스트라이크 존 안에 공을 던졌을 때 총 49루타를 허용했다. 이를 장타율로 바꾸면 0.544가 된다. 20개 참가국 중 네 번째로 나쁜 기록이다. 물론 2라운드 진출팀 가운데는 가장 나빴다.
참고로 한국프로야구에서 홈런 418개를 남긴 ‘국민 거포’ 박병호(40·은퇴)의 통산 장타율이 0.538이다. 상대 팀과 무관하게 한국 투수가 스트라이크 존 안에 던진 공은 배팅 볼이 되고 말았던 거다. 시속 150km가 넘는 공도 펑펑 때려내는 상대 타선을 이겨내기에는 한국 투수들 구위가 역부족이었다.

슬라이더는 너무 밋밋한 게 문제였다. 슬라이더는 직구처럼 오다가 타자 앞에서 옆으로 휘어 나가는 구종이다. 이번 대회 한국 투수들이 던진 슬라이더는 ‘좌우 무브먼트’ 14.2cm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야구공 지름이 7.3∼7.5cm니까 직선 궤적보다 공 두 개 정도 바깥으로 휘어 나간 셈이다. 이 부문 1위 도미니카공화국(26.7cm)과 비교하면 좌우 움직임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낙폭은 아예 최하위였다.
커브는 반대로 너무 많이 떨어져서 문제였다. 한국 투수가 던진 커브는 이번 대회 20개 참가국 투수가 구사한 같은 구종 가운데 ‘상하 무브먼트’가 33.3cm로 가장 컸다. 여기에 평균 구속(시속 123.0km)은 네 번째로 느렸다. 이러면 상대 타자는 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 ‘커브’라고 예상하게 된다. ‘너무 정직한 변화구’로는 상대 타자를 속일 수 없다.
체인지업이 그나마 ‘최후의 보루’였다. 한국산 체인지업은 상대 타자를 타율 0.149로 막았다. 재미있는 건 체인지업은 일반적으로 땅볼을 유도하고자 할 때 던지는 구종이지만 이번 대회 때는 뜬공 유도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체인지업은 속구가 뒷받침될 때 위력이 배가된다. 그런데 속구 자체에 힘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겼다.
요컨대 ‘세계 야구’가 스위퍼, 킥 체인지 같은 신종 변화구를 ‘명품 조연’으로 활용할 때 한국은 속구라는 ‘주연’ 캐스팅에도 애를 먹고 있다. 그 바람에 변화구마저 녹슬고 말았다. 명심하자. 배팅 볼은 아무리 제구가 잘돼도 배팅 볼일 뿐이다.
도쿄·마이애미=황규인 기자·미국야구연구협회(SABR) 회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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