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늘면 행복? 삶 만족도는 지갑 두께순이 아니다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경제성장과 주관적 행복
![2009년 소르본대에서 GD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하자고 연설하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중앙포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1/joongangsunday/20260321000702099quub.jpg)
1989년 여름에 개봉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그 당시 대단한 흥행작은 아니었지만 제목만큼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였고 사회적 반향도 컸다.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워져 입시 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영화 개봉 이후 30년이 넘게 흐른 2020년대에도 우리 중고교 현장에서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청소년 중 일부는 출구 없는 절망에 빠져 미래를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중년 남성의 자살·사회적 고립 계속 증가
학창시절 성적이라는 것이 인생에서 꽤 중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겠지만, 모든 청소년의 삶과 미래가 학업성취도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행복이 GDP 순일까’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GDP, 즉 국내총생산은 일정 기간 한 나라 안에서 생산되어 최종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모두 더한 것으로 정의된다. 남에게 팔릴 만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만큼 내가 돈을 벌 수 있고 벌어들인 만큼 소비할 수 있으니,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일단 뭔가 많이 만들어야 한다. 결국 생산은 소득과 소비의 기반이다. 따라서 ‘얼마나 많이 생산했나’를 측정하는 지표인 GDP는 그 나라 국민의 삶을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해서는 역시 별로 이견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행복이 GDP 하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경제성장을 해서 1인당 GDP가 가장 큰 나라가 되더라도 그 나라 국민이 자동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학창시절 전교 1등을 하고 수능 만점을 받은 학생이 반드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처럼.
그러면 사람들의 주관적인 행복과 GDP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경제학계에서 이런 연구의 출발점은 1974년 발표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교수는 19개국에서 사람들에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어본 설문조사 자료를 구해서 이것을 GDP 수준과 비교해 봤다. 그랬더니 일부 국가들, 특히 선진국에서 GDP의 증가가 곧바로 행복도의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같은 해에 이루어진 설문조사를 서로 비교해 보면(횡단면 자료) 1인당 GDP가 더 높은 나라에서 행복도가 높았다. 그런데 같은 나라에서 여러 해에 걸쳐 이루어진 설문조사를 따라가면서 보면(시계열 자료) 1인당 GDP는 계속 높아지는데 국민 중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 계속 증가하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횡단면 자료와 시계열 자료의 괴리. 그래서 ‘역설(paradox)’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다양한 연구에서 같은 현상이 계속 확인되었다.


이런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GDP라는 지표가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복이나 삶의 질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지표를 하나 만들어보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GDP가 행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을 GDP의 ‘단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9년 파리 소르본대에서 강연하면서 “현재의 GDP는 실제 경제 발전 정도를 나타내지 못하는 눈속임 지표에 불과하며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등에게 GDP의 단점을 보완해달라고 부탁했는데,
1년 반 동안의 연구 끝에 발표된 ‘스티글리츠 보고서’에는 새로운 지표의 개발을 위한 여러 방향의 유익한 제안들이 담겨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이 새로운 지표의 완성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어떤 ‘행복 지수’가 개발되어 GDP처럼 널리 이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워낙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고 있는 데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주관적인 잣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야심찬 ‘스티글리츠 보고서’ 좌절한 이유
건강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검진센터에 가면 체중,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심전도, 폐활량 등 다양한 지표들을 측정한다. 그 결과를 보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체중을 줄여야 할지, 좋은 지방산을 더 먹어야 할지, 유산소 운동을 더 해야 할지 결정한다. 여기서 굳이 모든 지표를 종합해서 하나의 ‘건강지수’를 만들 이유가 없다. GDP가 삶의 질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단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체중계 위에 올라서서 왜 혈압이 측정되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GDP는 사람의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지만 애초에 행복의 지표가 아니고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양적 지표일 뿐이다.
비만인 사람이 성인병에 걸린다면 일단 체중부터 줄여야 하겠지만 적정 체중이 된다고 모든 건강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일단 생산력을 높여 GDP를 키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GDP의 증가가 언제까지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진정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GDP와 함께 다른 여러 지표를 면밀히 살펴보고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구석부터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 된다. 애먼 지수 탓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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