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미나리는 삼겹살, 노안미나리는 오리탕과 궁합

2026. 3. 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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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찰나의 맛’
청도 한재미나리와 삼겹살. [사진 박상현]
2016년 재미 교포 요리사들의 활약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촬영 차 미국을 방문했었다. LA에서 시작해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솔트레이크시티를 거쳐 뉴욕에서 마무리한 제법 긴 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3세 요리사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매우 흥미로운 특징을 하나 발견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 조금씩 다른데 그 배경은 자신들의 할머니, 어머니가 한국을 떠난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에게 한국 음식은 곧 어머니의 음식, 혹은 할머니의 음식이었다.

2021년 개봉한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아래 사진)’도 그 연장선에 있다. 1980년대 한국인의 이민사를 그린 영화 제목이 왜 하필 미나리였을까. 영어 제목도 그렇다. 한국인 배우가 출연하고 한국어 대사가 많지만 ‘미나리’는 분명 미국 자본으로 만든 미국 영화다. 미나리를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할만한데 굳이 ‘Minari’로 표기했다.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이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에서 가져간 미나리 씨앗을 깊은 계곡에 심은 할머니(윤여정역)는 미나리를 뜯으며 미국에서 태어난 손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나리는 이렇게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미나리는 아플 때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미나리는 낯설고 척박한 땅에서도 억척스럽게 생존하는 한국인의 상징이었다. 이런 상징은 한국에서만 살아온 한국인은 쉬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접근이다. 너무 당연하고 흔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미나리는 물이 있고 뿌리 내릴 곳만 있으면 어디든 잘 자라는 식물이었다.

생존 위해 먹던 나물서 건강식으로 변신
봄은 나물의 계절이다. 한국의 봄 식탁이 풍요로운 건 나물 덕분이다. 한국만큼 다양하게 나물을 즐기는 민족은 없다. 이렇게 다양한 유산을 남겨주신 선조들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나물이 다채롭다는 건 풍요가 아닌 생존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언 땅을 뚫고 나온 생명을 뜯고, 뽑고, 꺾고, 캐다 보니 이렇게 다채로운 나물을 먹게 된 것이다. 봄나물이 요긴한 건 향과 식감뿐만 아니라 영양 때문이다. 겨우내 부족해진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기에 이만한 식물이 없었다.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나물이 이제는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대상이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미나리는 이 아이러니의 정점에 있다. 생존이 아니라 육류를 더 많이 섭취하고 죄책감 없이 먹기 위한 최적의 대안으로 선택되었다. 그런데 그 선택에도 영남과 호남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브랜드를 가진 대표적인 미나리가 경상북도 청도군의 ‘한재미나리’와 전라남도 나주시의 ‘노안미나리다’. 미나리 재배의 첫 번째 조건은 물이다. 재배 과정은 당연하고 수확한 미나리를 세척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양의 물이 소비된다. 차갑고 깨끗한 물로 씻어서 포장해야 미나리의 신선함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물이 맑은 것은 물론 수량도 풍부해야 한다. 청도군은 화악산 계곡 암반수를 사용하고, 나주시는 영산강 퇴적층을 통과한 지하수를 사용한다. 둘 다 향이 강하고 아삭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다.

중금속 배출 효과, 미세먼지 많은 봄에 제격
나주 노안미나리와 광주 오리탕. 미나리는 여러 식재료와 궁합을 맞춰 먹는 재미가 있다. [사진 박상현]
차이는 활용 방식에 있다. 청도군의 한재미나리는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합으로 유명하다. 이 조합은 어느덧 전국적으로 퍼져 봄의 별미로 굳어지는 추세다. 미나리와 삼겹살은 맛은 물론이고 식감과 색감의 조합 역시 탁월하다. 무엇보다 돼지고기와 미나리는 몸속 중금속 배출에 시너지 효과가 있어 미세먼지가 많은 봄에 제격이다. 이에 반해 나주시의 노안미나리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은 광주광역시 북구의 오리탕거리다. 광주의 오리탕은 오리 육수에 아주 곱게 간 들깨를 곁들여 걸쭉한 게 특징이다. 이 오리탕에 미나리를 데쳐 먹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기 일쑤다. 오리는 뒷전이고 미나리를 더 찾게 된다. 미나리에 풍부한 식이섬유가 체내에 오리 기름이 쌓이는 걸 막아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궁합이다.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합도, 미나리와 오리탕의 조합도 기호와 상황에 따른 선택의 결과다. 그런데 그 결과의 배경을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 차이가 발견된다. 한재미나리는 줄기 속이 꽉 차있는 반면, 노안미나리는 상대적으로 속이 비어있다. 그러니 한재미나리는 기름에 구워도 식감이 무너지지 않고, 노안미나리는 국물을 듬뿍 품을 수 있다. 올봄에는 이 차이를 확인하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권한다. 그러면 아마도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까. 참고로 한재미나리도 노안미나리도 지금이 가장 맛있는 시기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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