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규 아리랑 100년, 오늘은 BTS 아리랑…K헤리티지 맥박이 뛴다

유주현 2026. 3. 2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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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완전체로 컴백
‘2026년 가장 중요한 문화적 순간 중 하나’(포브스). 오늘 오후 8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BTS 콘서트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아리랑)’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3년 9개월 만의 완전체 귀환에 세계 각국에서 최대 26만 인파가 모이고 65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된다. 이 역사적인 ‘올림픽 개막식급’ 이벤트의 주최자는 글로벌 OTT 넷플릭스. 단일 아티스트 최초 생중계로 190여 개국 3억 명의 시청자에게 광화문을 비춘다.

주인공은 BTS뿐만 아니다. 서울이 품고 있는 우리 유산도 4월 19일까지 이어지는 축제 ‘BTS 더 시티 아리랑 서울’의 타이틀롤로서 존재감을 과시한다. 경복궁과 광화문을 잇는 역사적 동선을 활용한 오프닝부터 상징적이다. 멤버들은 근정전에서 출발해 흥례문과 광화문, 월대를 차례로 통과해 무대에 오른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폐막식과 수퍼보울 하프타임쇼를 16년간 이끈 ‘라이브 이벤트의 제왕’ 해미시 해밀턴이 서울의 야경과 경복궁의 능선을 활용해 재해석한 ‘왕의 길’이 열릴 때, K헤리티지와 K팝의 시너지 폭발이 시작된다.

신보 ‘아리랑’으로 4년 만에 완전체로 컴백한 BTS. [사진 넷플릭스]
무대 높이 14.7m(5층 건물 높이), 너비 17m. 9.5㎞의 전력 케이블에 흐르는 압도적인 에너지. 10개국 스태프가 참여한 초대형 글로벌 프로덕션이 광화문 육조마당에 집중된다. 장소의 상징성도 기념비적이다. 일제강점기 사라졌다가 2023년 복원된 월대는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이 내포한 ‘민족의 한과 극복, 정체성 회복’이라는 테마 그 자체. 경복궁 담장과 주요 건축물을 수놓는 첨단 미디어 파사드의 결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컴백쇼는 한국의 DNA를 알리겠다는 BTS의 의지와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21세기 서울’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송출한다.

한결 성숙해진 음악 정체성 선언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김홍남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훼손됐었던 우리 역사문화유산이 BTS와 같은 대중예술가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꽃을 피우면서 좋은 이미지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나무의 뿌리가 깊어야 꽃을 피운다’는 용비어천가의 구절처럼, 이 꽃을 오래 피우고 지속적으로 소비되기 위해 기관들이 더 큰 의무감으로 보존·복원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BTS의 컴백에 팝 시장도 들썩인다. 2020년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오른 이래 전 세계 음악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서구권에서도 BTS가 톱클래스로 인정받았고, K팝 무대도 확장일로다. 지금까지 82회 확정된 아리랑 월드투어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일정이 총 30회, 북미와 유럽 등 서구권이 52회다. 이미 티켓 대부분이 매진되며 약 500만 관객이 예상되는데, 지난해 글로벌 투어 1위였던 콜드플레이의 350만 명을 크게 웃돌며 최다 관객 기록에도 도전한다.

알맹이는 어떨까. 20일 발매된 신보 ‘아리랑’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현대적 팝 감각을 결합한 서사적 프로젝트다. 가디언 등 외신은 아리랑을 ‘한국의 비공식 국가’라고 소개하며 “서구적 이미지를 좇기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이라고 해석했다.

BTS는 꾸준히 한국의 전통을 음악과 퍼포먼스에 녹여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를 팩트로 바꿔왔다. 2018년 멜론 뮤직 어워드(MMA)에서 선보인 ‘IDOL’ 무대나 2020년 슈가의 ‘대취타’는 국내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전통 예술계가 수십 년간 모색해온 해외 진출을 BTS라는 강력한 매개체를 통해 단숨에 이뤄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아리랑’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사진 빅히트뮤직]
이는 ‘아리랑’의 앞날이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 대표 민요인 아리랑은 그간 음악가들의 해외 공연 앙코르 단골 레퍼토리로, 그리움의 정서가 담긴 특유의 선율로 외국인의 심금을 울려왔다. BTS는 아리랑을 자신들의 복귀 서사에 차용해 앨범 출시를 거대한 문화적 이벤트로 전환시켰다. 189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국인 유학생 7명이 부른 아리랑 최초 녹음본을 소환해 자신들을 ‘한국적 목소리의 현대적 계승’으로 정의한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아리랑’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스포티파이에서 진행한 단서찾기 이벤트 등으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음악인류학자 김희선 국민대 교수는 “K팝의 시류를 초월해 K헤리티지를 견인해 온 BTS가 나운규의 ‘아리랑’ 100주년인 올해 아리랑을 모티브로 컴백한다는 것은 한결 성숙해진 음악 정체성 선언인 동시에 전통 예술이 지구화되는 가능성을 여는 사건이다. 우리 근현대사를 압축한 생명력의 상징 아리랑이 인류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한 타이틀과 달리 내용물은 혼종 그 자체다. 블랙핑크 ‘뛰어’를 만든 디플로와 원리퍼블릭의 라이언 테더가 각 5곡, BTS의 오랜 동반자 피독이 6곡에 참여했고 이 외에도 엘 귄초, 제이펙마피아 등 온갖 장르 거물급 아티스트들을 용광로에 쏟아부었다. 총괄 프로듀서 방시혁과 타이틀곡 ‘SWIM’ 등 13곡에 참여한 RM은 연금술사가 된 모양새다. 괴물 같은 앨범을 들고 나온 BTS 2.0이 과연 절대강자가 사라진 팝 시장을 평정할까.

‘아리랑’ 앨범의 타이틀 곡 ‘SWIM’ 뮤직비디오. [사진 빅히트뮤직]
‘아리랑’은 멤버들의 창작 역량의 결정체기도 하다. 창작에 참여한 모든 멤버가 소회를 밝혔다. 지민은 “데뷔 직후 멤버들과 나중에 우리끼리 앨범을 만들어 보자는 말을 했기에 이번 송라이팅 세션이 굉장히 뜻깊었다”고 했다. 진과 슈가는 “다양한 방면에서 멤버들의 의견이 더해지면서 콘셉트가 잡혔고 전원이 한국인인 만큼 한국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담았다”고 밝혔고, 제이홉은 “가사에도 한국의 흥과 문화를 녹였다. 다시 돌아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것은 결국 뿌리에서 시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RM은 “여러 아이디어 중에 태권도를 소재로 곡을 만든 적도 있다”면서 “아리랑을 새롭게 해석해 보고 싶었고, 과하지 않은 변주와 우리만의 해석이 더해질 때 정서가 더 넓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국은 ‘SWIM’에 대해 “가사도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잘 보여주고, 퍼포먼스도 새로운 포인트가 있어서 주목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고, 뷔는 마지막 트랙 ‘Into the Sun’에 대해 “운동을 하고 오는 길에 들은 테마에 영감받아 바로 노래를 불러봤다. 현장 반응이 좋고 전체적인 멜로디를 다 마음에 들어 해줘서 앨범에 실렸다”고 전했다.
서울 매력 살린 ‘더 시티’ 프로젝트 함께
20일 오픈된 ‘아리랑’ 팝업. [사진 빅히트뮤직]
월드투어에서 ‘아리랑’에 못잖은 또 하나의 키워드는 ‘더 시티’다. K팝의 비즈니스 모델을 ‘라이프 스타일 및 문화 경험 수출’로 확장시킨 브랜드로, 2022년 4월 라스베이거스 투어에서 탄생했다. 20일부터 4월 19일까지 열리는 ‘BTS 더 시티 아리랑 서울’은 서울 전역을 BTS 테마파크로 만든다. 공연장 밖에서도 BTS를 느끼게 하는, 공연과 도시의 협업 모델이다. 2022년 당시 공연이 열린 2주간 라스베이거스는 온통 BTS 축제였다. 네바다 주지사가 SNS에 환영 메시지를 올리고, 밤마다 각종 랜드마크가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으로 변했다. 외곽의 공연장부터 도심 한가운데까지 약 5㎞ 구간에서 사진전·팝업스토어·콘서트 애프터 파티가 열렸고, MGM그룹이 동참해 테마 객실부터 콘서트 라이브 플레이 상영, 분수쇼와 팝업 레스토랑까지 운영했다.

이번엔 정부와 함께 K헤리티지를 더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문화기관 5곳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달항아리 등 멤버들이 좋아하는 유물을 영어로 소개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BTS가 기증한 ‘타임캡슐’과 관련 영상을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서울시도 매력 어필에 나섰다. 광화문 인근 미디어 파사드에 멤버들이 서울의 랜드마크 곳곳을 걷는 워킹 컨셉트 영상을 투사하고 뚝섬 한강공원 드론 라이트쇼, 세빛섬 등 랜드마크 15곳에서 아리랑 앨범의 상징인 붉은색 경관 조명으로 BTS 컴백을 환영한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BTS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러브송 라운지’는 멤버 정국이 디자인에 참여한 아리랑 로고 모양이다.

문화 경험을 강조하는 ‘더 시티’는 ‘BTS노믹스’의 폭발로 이어진다. 이번 투어의 경제효과를 집중 조명한 가디언은 콘서트 티켓 1장이 지역 경제에 3배 이상의 소비 효과를 창출한다며 각 도시에서 관광·숙박·소비 전반의 수요 증가를 예상했고, 2022년 라스베이거스 투어도 지역 경제에 약 1억6000만 달러(약 240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전했다. 당시 관람객도 26만 명이었는데, 증권가에선 아미들이 3박 4일간 1인당 최소 500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했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1일 공연은 웬만한 국가 이벤트에 필적한 경제효과가 예상된다. 방문객 직접 소비는 기본이고, 수억 명의 글로벌 시청자에게 노출되며 K브랜드의 글로벌 홍보 효과, 포스트 이벤트 임팩트로 관광객 증가도 예상된다. 결국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8시 광화문 광장 컴백쇼로 돌아오는 BTS 완전체. [사진 빅히트 뮤직]

24일 뉴욕 팬 이벤트 이후 4월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시작되는 월드투어는 2027년까지 전 세계 34개 도시에서 ‘더 시티’를 전개한다. BTS의 아리랑 프로젝트가 전 세계인의 일상에 한국적 문화 DNA를 심는 ‘K컬처 3.0’ 시대의 서막이 될까. 이미 아리랑 로고를 새긴 가짜 굿즈까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치고 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누구도 못 가본 길을 개척하고 있는 BTS의 행보는 소통의 문법이라는 시대 정신을 잘 맞춰갔기에 이뤄진 고무적인 성과”라면서도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탔기에 가능했다. 이 성과가 지속가능하려면 K팝 산업 자체가 건강한 생태계에서 후속주자를 키울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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