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을 사랑한 래퍼… K팝 영토를 넓히다

백수진 기자 2026. 3.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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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솔로곡 ‘대취타’의 뮤직비디오에서 슈가는 창덕궁 인정전을 재현한 야외 세트를 배경으로 곤룡포를 입고 검무를 추며 등장한다. /빅히트 뮤직

“우릴 공부하는 기계로 만든 건 누구/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 짓게 만든 건” (‘N.O’) “난 뱁새 다리 넌 황새다리/내 게 짧은데 어찌 같은 종목 하니/They say 똑같은 초원이면 괜찮잖니”(‘뱁새’)

BTS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는 가사에 담긴 저항적 메시지가 꼽힌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불평등과 무한 경쟁 사회를 향한 반항적인 노랫말은 전 세계 10대·20대의 공감을 얻었다. 그런 거친 랩을 가장 날카롭게 소화하는 멤버는 슈가였다. 분노를 토해 내는 듯한 속사포 랩과 삐딱한 에너지로 BTS의 음악에 뾰족한 모서리를 만들어줬다. 슈가 스스로도 “사회 비판적 곡이 없으면 방탄소년단의 앨범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빅히트 뮤직

슈가는 래퍼이자 프로듀서, 작곡가, 작사가로 그룹의 음악적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I NEED U’ ‘봄날’ 등 BTS의 대표곡에 작사·작곡으로 참여했다. 힙합 비트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감각을 갖췄다. 무엇보다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숨기지 않는 자기 고백적 가사가 특징이다. BTS가 이 시대 청춘의 분노를 노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현실 감각이 크게 작용했다.

/위버스

본명은 민윤기. 199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부터 컴퓨터로 비트를 만들고,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작곡과 편곡을 익혔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1000원짜리 잔치국수를 먹으면 집까지 버스를 탈 수 있고, 2000원짜리 자장면을 먹으면 그 자리부터 집까지 두 시간을 걸어가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연습생 시절에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교통사고로 어깨를 크게 다치며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

2010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래퍼 오디션을 통해 팀에 합류했다. 그룹 활동과 병행해 ‘어거스트 디(Agust D)’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솔로곡을 발표해왔다. 그의 음악에는 우울과 불안, 상처 같은 단어가 자주 반복된다. 2016년 발표한 ‘마지막’에서는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경험까지 숨김없이 드러냈다. “잘나가는 아이돌 래퍼 그 이면에/나약한 자신이 서 있어 조금 위험해/우울증 강박 때때로 다시금 도져/어쩌면 그게 내 본모습일지도 몰라” 아이돌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내밀한 자기 고백이었다.

2023년 일본에서 열린 솔로 월드 투어 '슈가 어거스트 디 투어 디데이'(SUGA | Agust D TOUR D-DAY). /빅히트 뮤직

그의 성장 서사는 BTS가 걸어온 길과도 닮았다. 가난한 환경, 가족의 반대, 교통사고, 긴 무명 시절을 지나며 불안과 우울을 음악으로 견뎌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버텨온 슈가의 가사는 팬들에게 깊은 위로를 줬다. 노래 ‘Answer : Love Myself’(2018)에서 그는 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우리 인생은 길어 미로 속에선 날 믿어/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은 오는 거야” 냉소적이고 무심해 보이지만, 팬들과 소통할 때는 누구보다 다정한 위로를 건네는 멤버로도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기부와 자선 활동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6월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50억원을 기부해 자신의 이름을 딴 ‘민윤기 치료센터’를 세웠다. 연세의료원 역사상 연예인 기부액으로는 최고액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수개월 동안 주말마다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고, 소아·청소년 자폐 환자를 위한 음악 치료 프로그램 개발에도 참여했다. 아이들은 그를 ‘민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랐다고 한다.

과거의 자신처럼 우울증을 앓거나 방황하는 청소년을 돕는 게 그의 오랜 꿈이다. 그는 한 라이브 방송에서 언젠가 심리 상담 자격증을 따고 싶다며 “나중에 저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해줄 말이 있고 싶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BTS의 음악이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준 건, 긴 시간 상처를 통과해온 그의 진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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