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이재용과 리사 수가 시계 톱니바퀴에 숨긴 HBM 역전극

김현우 기자 2026. 3.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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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스팟(HotSpot)'
승지원 시계가 보여준 제조의 본질
삼성과 AMD의 HBM4 협력 비화
잉여 포텐셜 제거하고 내실 집중
통합 파트너로 진화하는 삼성 반도체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삼성전자

주얼리 분야 취재 중 만난 종로 예지동의 한 시계 수리공에게서 들은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날 번쩍이는 스포츠카를 몰고 온 젊은 코인 부자가 구형 스위스제 기계식 시계를 내밀며 다짜고짜 물었단다.

"어르신 이거 수리하는 김에 초침 좀 팍팍 빨리 가게 개조 안 됩니까. 남들보다 빨리 가야 돈을 벌죠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시계가 이렇게 굼떠요."

무명 랩퍼였던 그는, 뮤직비디오 촬영용으로 시계 초짐이 빨리 돌게 만들고 싶었단다. 

장인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친 채 어이가 없다는 듯 청년을 물끄러미 보다가 혀를 끌쯧 차며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이보게 젊은이 남들보다 초침이 빨리 돌면 그게 시계여 고장 난 선풍기지. 시계는 말여 안에 있는 수백 개 톱니바퀴가 제 성질 다 죽이고 남의 이빨에 자기 이빨을 딱 맞춰야 비로소 1초를 만들어 내는 겨. 혼자 잘났다고 빨리 도는 놈이 있으면 그 시계는 당장 쓰레기통행이여."

우스꽝스러운 일화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 건 18일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연출된 한 장면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그 자리에서 카메라 렌즈는 두 사람의 악수를 비췄지만 호사가들의 눈길은 그들 뒤에 묵묵히 버티고 선 독일제 헤름레 기계식 시계에 쏠렸다.

이날 양사는 인공지능(AI) 메모리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삼성의 차세대 HBM4를 AMD의 차세대 인스틴트 MI455X에 꽂아 넣고 내친김에 파운드리까지 엮어보자는 꽤 묵직한 비즈니스 딜이었다. 한데 이 맥락을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의 트랜서핑 렌즈로 들여다보면 저 뒤에 놓인 시계의 째깍거림은 뼈 때리는 촌철살인으로 다가온다.

흥분하는 자가 진다

요즘 AI 시장을 보면 아수라장이다. 언론과 증권가는 매일 아침 누가 천하를 통일하네 누가 뒤처져서 망하네 하며 꽹과리를 친다. 트랜서핑 동네 말로 치면 이런 설레발이 바로 잉여 포텐셜이다. 무언가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흥분할수록 우주의 균형력은 그 기대치를 산산조각 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거다.

그런데 승지원의 저 시계는 어떤가. 흥분 따위는 없다. '세계 최고야'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정해진 리듬에 맞춰 오차를 줄이며 조용히 바늘을 넘길 뿐이다. 이건 AI 전쟁이라는 과열된 프레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제조 질서의 복원이라는 본질을 붙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삼성도 AMD도 지금 필요한 건 공급망 안정성과 미세한 공정 호환성이라는 냉엄한 현실이다. 혼자 빨리 도는 선풍기 코스프레를 멈추고 진짜 시간을 만드는 시계공 마인드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다.

겉멋을 버리고 속을 맞추다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승지원의 상징 오브제는 티끌 하나 없는 백자였다. 백자가 표면의 무결점 즉 완성된 결과물의 미학을 상징했다면 이 회장의 기계식 시계는 보이지 않는 내부 정렬의 미학이다.

현재 삼성이 처한 현실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HBM 시장에서 삼성은 지금 체면을 구긴 상태다. 로이터가 인용한 카운터포인트 데이터를 보면 SK하이닉스가 57%로 펄펄 날 때 삼성은 22%로 숨을 고르고 있다.

이 국면에서 '우리는 완벽해'라는 겉멋은 통하지 않는다. 대신 수백 개의 부품이 삐걱거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처럼 '우리는 설계부터 패키징 파운드리까지 오차 없이 연동되는 질서를 가진 회사다'라는 내적 정체성을 증명해야 한다.

혼자 튀는 부품은 필요 없다 슬라이드와 펜듈럼의 전환

과거의 삼성은 '우리가 메모리 최고야'라는 단일 슬라이드를 투사하며 살았다. 한데 AI 칩 시대는 독불장군을 허락하지 않는다. 메모리 패키징 파운드리 심지어 고객사의 설계까지 한 덩어리로 굴러가야 한다.

이번 AMD와의 협력이 HBM4 공급을 넘어 파운드리까지 열어둔 이유가 여기 있다. 시계에서 가장 빛나는 톱니바퀴 하나가 시계 전체의 성능을 대변하지 않듯 삼성도 압도적 부품사에서 AI 칩 통합 파트너로 주파수를 갈아탄 셈이다.

게다가 AI 시장이라는 거대한 펜듈럼은 기업들의 혼을 쏙 빼놓기 십상이다. 속도전 투자자들의 탐욕 경쟁사의 압박이 펜듈럼처럼 사방으로 흔들린다. 그런데 기계식 시계란 물건이 참 묘하다. 시계 안에 있는 추가 흔들리지만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격하게 통제된 진동을 한다. 승지원의 시계는 세상의 그 요란한 펜듈럼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대신 그 에너지를 자신들의 리듬으로 치환하겠다는 묵직한 고집이다.

승지원이라는 삼성을 압축한 무대 위에 놓인 이 시계는 묵언의 메시지다. '시계를 조립하듯 정교한 맞물림으로 AI를 하겠다'는 것. 종로 시계 장인의 일갈처럼 남의 이빨에 내 이빨을 정확히 맞춰내는 자만이 결국 AI 시대의 1초를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 HBM=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성능 메모리다. 방대한 데이터를 즉각 처리해야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구현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으로 꼽힌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