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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에 살고 엄지에 죽는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엄지는 이토록 충격적이며 경악스럽고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는 소식에도 점점 더 무뎌지고, 최근 내가 마주한 가장 고약한 단어의 조합은 이것이다.
당신의 엄지가 '안 좋은 이유' 앞에서 멈추는 것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당장 엄지손가락을 쓰지 않고 한 시간만 있어본다면, 왜 엄지가 손 전체 기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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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에 살고 엄지에 죽는다. 콘텐츠 제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엄지손가락.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시절도, 스마트폰으로 혼자 영상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도, 목표는 하나다. 어떻게 해야 당신의 엄지를 멈출 수 있는가?
요즘 내가 가장 공들이는 것은,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스크롤을 내리는 것은 엄지 끝의 살갗이지만 요즘 내가 가장 공들이는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엄지손톱, ‘섬네일’(thumbnail). 영상의 내용을 한 컷으로 요약해 클릭을 유도하는 강력한 이미지와 한두 줄의 문구.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완성하려 공들인 몇 년의 시간도,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사람의 얼굴도, 마지막에는 결국 이 엄지손톱만 한 그림 한 장으로 납작해진다.
작가인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섬네일에 들어갈 한두 줄의 문구를 쓰는 것인데, 때로는 45분짜리 원고보다 이 두 줄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만든 상품을 광고하는 카피라고 생각하면 상품의 장점을 어필해야겠지만 이상하게도 시청자는 좋은 말보다 나쁜 말에 끌린다. 이제 ‘비밀’이나 ‘비결’ 같은 맹숭맹숭한 말로는 무심히 스크롤을 내리는 엄지손가락을 멈출 수 없다. ‘진실’이나 ‘고백’도 덧없다. 섬네일에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는 ‘충격’ ‘경악’ ‘발칵’. 무어라 한데 묶을 수 없는, 고약한 말들의 연속.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엄지는 이토록 충격적이며 경악스럽고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는 소식에도 점점 더 무뎌지고, 최근 내가 마주한 가장 고약한 단어의 조합은 이것이다. ‘○○○, 반응 안 좋은 이유’.
인간은 본능적으로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크고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 부른다. 무언가를 위험으로 간주할 때 인간의 생존 본능은 한껏 민감해진다는 것. 당신의 엄지가 ‘안 좋은 이유’ 앞에서 멈추는 것은,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수많은 장사꾼이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국에 밥 말아 먹으면 안 좋은 이유, 상장지수펀드(ETF) 투자하면 안 좋은 이유, 지금 당신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 당신이 직장 동료와 사이가 안 좋은 이유….
진짜 장사꾼들은 여기에 ‘반응’이란 단어를 슬쩍 더하며 이것이 다수의 의견이라는 뉘앙스를 보탠다. 생존 본능에 군중심리까지 파고드는 상술을, 나약한 엄지손가락이 어찌 견딜까?
당신의 엄지는 생각보다 강하다
하지만 당신의 엄지는 생각보다 강하다. 엄지손가락은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 오직 인간만이 가진 권력.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의 엄지는 다른 네 손가락과 마주칠 수 있는 ‘맞섬’ 능력이 압도적이라 물건을 쥐고 조작하는 데 유리하다.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 되는 데 엄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당장 엄지손가락을 쓰지 않고 한 시간만 있어본다면, 왜 엄지가 손 전체 기능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엄지손톱만 한 그림 한 장에 속지 말고 그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라고, 당신의 엄지를 당신이 진짜 원하는 곳에 두라고 말하기에 나의 직업은 그 손톱보다도 옹졸하지만,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의 엄지손가락은 ‘반응 안 좋은 이유’라는 이 헤드라인에 과연 반응했을까?
김영희(필명)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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