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재판소원’ 막으려면?…“‘중요 사건’ 선별 필요”

최혜린 기자 2026. 3. 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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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재판소원 적법요건 심사 방안’ 발표회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한수빈 기자

“과도한 사건 부담으로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어 새로운 방안이 긴급하게 요청된다.”

안드레아스 포스쿨레 전 독일 헌법재판소장은 2015년 헌재 홈페이지에 발표한 공개서한에서 이렇게 밝혔다. 재판소원 시행 3년만인 1954년에도 독일의 헌재 재판관들은 “부적법하거나 명백하게 이유가 없는 재판소원이 대부분”이며 “본안 심사에 앞서 이런 사건들을 걸러낼 수 있는 사전심사 제도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아직도 ‘헌재의 사건 부담을 어떻게 줄여야 하느냐’는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20일 ‘재판소원 적법요건 심사방안’을 주제로 개최한 내부 발표회에서는 “재판소원 운영 방침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헌재는 낭떠러지로 몰릴 수 있다”며 “독일의 경험을 교훈 삼아 헌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대부분 참석자는 ‘소송 폭증’을 막으려면 “사전심사를 통해 헌법적 중요성이 있는 사건을 선별하는 게 핵심”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중요한 사건’을 어떤 기준으로 따져야 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에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판관 전원이 ‘중요 사건 선별’ 참여해야” vs “기준 모호, 사실상 재판 거부 되는 것”

이날 연구회에서는 헌재 헌법연구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가 발제를 맡았다. 정광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경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강 헌재 헌법연구관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로 나선 김 변호사는 ‘헌재 판단이 필요한 사건’을 선별해야 하고, 이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아니라 재판관 전원이 평의에 참여하는 ‘전원재판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관 전원이 결정에 참여할 때 다양한 관점이 사전 심사 단계에서 반영될 수 있고, 자의적 판단도 축소될 수 있다”며 “헌법적으로 중요한 사건인지, 기본권 침해가 얼마나 중대한지를 묻는 절차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소원이 도입됐다고 해서 일반 법원의 사소한 오류까지 교정해주겠다고 나선다면 재판소원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사전심사란 단순히 사건 수를 조절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헌법적 의제를 형성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광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건의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런 식의 사건 선별은 매우 정치적이거나 자의적인 재판 거부로 비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강 헌법연구관은 “사전심사를 통해 사건을 선별하면 ‘헌재가 이런 사안까지 관여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청구인들의 불필요한 기대를 조기에 단념시키고, 재판 관계인들의 지위도 조속히 안정될 수 있다”면서도 “지정재판부가 사전심사를 하는 경우 전원재판부보다 신속한 결론 도출이 가능하고, 더 많은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소원 남발 현실화…추가 입법으로 해결해야

서경미 교수는 헌재법 개정안이 ‘재판소원 사유’를 모호하게 정하고 있어 사건이 폭증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이는 추가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헌재는 ‘중요한 헌법적 의미를 가지거나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경우’에만 재판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개정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서 교수는 “얼마든지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은 방향으로 재판소원 청구 사유가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헌재가 과도한 사건 부담에 파묻히지 않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기본권 보장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재판소원 관련 규정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재판소원 제도는 지난 12일부터 시행됐다. 제도 시행 1주일 만에 헌재에는 100건이 넘는 사건이 접수됐다.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수천만 원을 갈취한 혐의로 징역 3년을 확정받은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이 재판소원을 청구했고, 이재명 대통령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장영하 변호사도 재판소원 청구 의사를 내비쳤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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