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인의 미담] BTS·블랙핑크서 영부인까지…가장 한국적인 옷으로 세계를 물들이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2026. 3. 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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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해진 옛날 옷’ 한복의 재발견]
아이돌들 믹스매치 선보이며 K패션 주목
아카데미 ‘케데헌’ 무대선 한복 무용 공연
김혜경 여사 한복외교·홍보 활동도 눈길
국가 맞춤 색상 입고 정상 부인들에 선물
전문가 만나 전통복식 고증·역사 공부도
동양 3국 중 옷짓기·패턴 활용 가장 발달
유네스코 무형유산 ‘한복생활’ 등재 추진

방탄소년단(BTS)이 경복궁 월대를 무대로 완전체 컴백곡 ‘아리랑’을 선보이는 장면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들에게 실시간 생중계되는 시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 옛 옷이던 한복이 K컬처 확산에 힘입어 가장 멋진 옷이 됐다.

이달 15일(현지시간) 미국 LA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수록곡 ‘골든’ 축하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한복을 입고 공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국을 배경으로 해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달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의 2관왕에 오르던 날. 주제곡 ‘골든’의 축하 무대는 한복을 차려입은 무용수들이 열어젖혔다. 극중 ‘사자보이즈’의 실사판인 갓 쓰고 도포 입은 한복 차림의 남성들도 눈길을 끌었고 객석에 앉은 유명 배우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열광하는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다음 날인 17일에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한창인 금기숙 작가 기증 특별전 ‘댄싱, 드리밍, 인라이트닝’이 국내 단일 전시 역사상 최초로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약 70일의 실전시 기간 절반 이상 전시장을 찾았던 금 작가는 “기적 같고 선물 같은 사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복식사와 미술사 연구를 접목해 “한복에서 ‘떨림과 흔들림’의 미학을 발견했고 여기서 기운생동과 생명력의 동적(動的) 요소를 발견했다”는 금 작가는 이를 발전시켜 철사 구조물에 한복 자투리 천부터 폐기물로 버려질 플라스틱 조각 등을 붙여 화려한 ‘패션아트’를 완성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가느다란 철사 옷 뒤로 그림자의 겹침 효과까지 더해진 화려한 장면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시 감상 후기로 입소문을 탔다. “작품과 그림자가 겹쳐서 마치 옷이 흔들리는 듯한 착시는 두 겹으로 만든 한복 저고리에서 옷감의 결이 서로 달라 일렁이는 물결무늬가 보이는 간섭 효과, 즉 무아레 현상이 생겨나는 것과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한복의 유려한 곡선과 ‘떨림’의 미학에 집중해 온 금기숙 작가의 서울공예박물관 기증 특별전이 지난 17일 기준으로 누적 관객 100만명을 넘기며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제공=서울공예박물관

한복이 K패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지점에도 BTS가 있었다. 이들은 2018년 ‘아이돌(IDOL)’ 뮤직비디오에서 한복 도포와 갓을 착용했다. 2020년 9월 미국 NBC 간판 프로그램 ‘지미 팰런쇼’에 출연했을 때는 검은색 한복 정장 차림으로 경복궁 공연을 선보였다. BTS는 풋풋한 신인 시절 박술녀 한복부터 한복과 양복을 믹스매치한 김리을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한복을 보여줬고 한국을 방문하는 팬들이 한복을 챙겨 입게 만드는 이유가 됐다.

걸그룹 블랙핑크도 데뷔 초부터 과감한 신개념 한복을 선보였다. 2020년 공개한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에서는 고려시대 무관의 옷인 철릭과 저고리·가슴가리개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배꼽티 한복’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국적 불명’의 한복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한복에 대한 인식과 미감도 변화한다. 한국 복식사 연구자인 송미경 서울여대 패션산업학과 명예교수는 “한복 관련 교양 수업을 진행하며 매 학기마다 한복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하는데 2020년에는 블랙핑크의 옷을 한복으로 본다는 의견이 10%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같은 의상 사진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80%가 한복으로 여긴다고 했다”면서 “패션이 유행을 타듯 조선시대 한복도 시대별로 다르게 변화했고 1960~1970년대 한복에는 서양식 옷감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생활한복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어떤 한복이 더 우수하다는 건 차치하고 시대별 한복이 달라지듯 세대별로 한복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한복 정체성에 대한 간극’을 채워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복을 한복답게 하는 요소로 특유의 곡선미, 옷감 등 소재, 제작 방식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한복의 특징은 이부식(二部式) 구조, 즉 저고리와 치마·바지로 이뤄진 투피스 형식이라는 점이다. 단추나 지퍼가 아닌 ‘고름’으로 옷깃을 여미는 방식도 한복의 특징이다. 서울 궁궐에 무료 입장할 수 있는 한복의 요건도 치마·저고리 혹은 바지·저고리를 갖췄는지를 우선으로 따진다. 지금도 경복궁에는 한국인보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이 더 많을 정도로 ‘고궁 체험 한복’이 확산됐지만 이들 한복에는 전통성 논란이 따라온다.

한복을 차려입은 김혜경 여사와 브라질 대통령 부인 잔자 룰라 다시우바 여사가 지난 2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 방한 환영 만찬에 참석해 어린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한복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면서 전통 한복에 대한 정의, 한복 정체성에 대한 연구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눈길을 끄는 행보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 부인 김혜경 여사의 ‘한복 외교’와 ‘한복 홍보’ 활동이다. 김 여사는 지난해 6월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통해 외교 무대에 데뷔했는데 연노랑 치마에 보라색 깃이 돋보이는 녹색 저고리의 한복을 입었다. 과한 장식 없이 절제된 미감으로 대한민국 영부인의 단아한 첫인상을 남겼다. 과거 대통령 부인들이 한복을 종종 착용했으나 최근에는 전통 한복의 미감을 자주 보여주는 영부인이 드물었기에 김 여사의 한복이 유독 주목을 끈다. 지난해 6월 호국보훈의 달 행사 때는 채도 낮은 분홍 계열의 치마저고리를 통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처음 맞이하는 손님에 대한 따뜻함과 환영의 메시지를 고상한 색채로 드러냈다. ‘한복 외교’도 탁월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외국 정상의 국빈 방문이던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방한 때는 그의 배우자인 응오프엉리 여사에게 맞춤 한복을 선물했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한복 패션쇼와 배우자 오찬, APEC에 참석한 정상 부인들과의 불국사 방문 등을 주도하며 행사 내내 한복 차림으로 문화적 자부심을 보여줬다. 방한한 캐나다 총리 부인과의 환담 때는 색 고운 한복의 장점을 활용해 단풍색 치마를 입었다. 올해 2월 말 방한한 브라질 영부인과의 만남에서는 연노란 치마에 진한 파란색 저고리를 택했다. 초록과 노랑 바탕에 브라질의 하늘을 상징하는 짙푸른 원으로 이뤄진 브라질 국기를 고려한 색채였다.

김 여사는 이 외에도 한복인들과의 만남, 한복 홍보 행사 참여, 공예박물관 방문 등 한복 문화 확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복은 복식 문화와 전통 공예의 종합 선물 세트다. 전통 공예 기술을 계승한 국가무형유산 가운데 한복을 만드는 종목으로 바느질의 침선장, 솜을 넣어 보온성을 더하는 누비장, 실로 문양을 만드는 자수장, 금박으로 화려한 문양을 넣는 금박장이 있다. 한복의 재료가 되는 옷감 제조 과정에 포함되는 명주짜기, 삼베짜기, 한산모시짜기, 나주 샛골나이(무명짜기)와 전통 기법으로 색을 들이는 염색장 등이 국가무형유산이다. 노리개와 술을 만드는 매듭장, 신발을 만드는 화혜장, 남성 한복의 머리 장식인 망건장과 갓일까지도 한복과 연결된다.

한복을 차려입은 김혜경 여사가 지난 1월 5일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전통 복식 전문가인 심연옥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영부인이 격식 있는 외교석상에서 옛날 왕비 의복인 당의를 갖춰 입는 모습도 인상적”이라며 “현대식 서양 복식의 상용화로 명맥을 잇는 것조차 버거운 우리 무형유산 장인들이 영부인의 한복 행보에서 힘을 얻고 나아가 현대 한복 디자이너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 관계자는 “여사님은 단순한 의복 착용을 넘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그 가치를 세계에 증명하려는 ‘K컬처의 진심’을 한복 행보에 담고 있다. 틈틈이 전통 복식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며 복식의 역사와 고증을 공부하시는 중”이라며 “우리 땅에서 난 국내산 원단과 장신구가 다시금 빛을 발하기 바라며 우리 옷의 기품을 담아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주립대 패션공과대학(FIT)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변경희 교수는 “과거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정장 원피스에 모자까지 챙겨 입는 수고로움을 전통미로 승화했는데 전통 한복을 챙겨 입는 김 여사의 모습도 그런 의미에서 호평을 받는다”면서 “한복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산업화 이전의 천연 재료로 만든 고급 원단에 있고 특히 오늘날 테일러링에 해당하는 옷짓기와 패턴 활용이 동양 3국 중 가장 발달한 점이 옷맵시의 근간이고 국제적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한복 생활’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노력이 전개 중이다. 2024년에 북한이 한복을 ‘조선옷차림 풍습’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했지만 우리는 한복에 담긴 문화 다양성과 소통, 전통과 창의성이 어우러진 지속 가능한 발전과 확장성 등을 핵심 가치로 여긴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이룬다. 새삼 절감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힘을 가진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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