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성폭력 생존자 “국가의 국민 존엄 침해…시대의 아픔 해소되길”

“재판장님, 이 사건은 시대에 대한 판단을 넘어 국가 권력이 국민 존엄을 침해한 사례를 어떻게 규명하냐에 대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희 세대의 고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다음 세대에는 국가 폭력이 용납되지 않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박정호)가 20일 진행한 5·18 성폭력 피해자 국가배상 소송 두 번째 변론에서 원고 김복희씨가 이렇게 말했다. A4 용지 석 장에 직접 손으로 쓴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김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방청석에서는 조용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경찰 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자조 모임 ‘열매’ 대표를 맡고 있다. 수십년간 침묵으로 고통을 삭이려 애썼던 이들은 2023년 경향신문 여성서사 아카이브 플랫을 통해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린 뒤인 2024년 12월,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 14명과 가족 3명 등 총 17명은 “국가가 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는 갱신 절차를 거친 뒤 원고인 김씨에게 발언 기회를 부여했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개인의 피해 사실이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1980년 5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무고한 시민에게 국가가 가한 신체적·정신적 폭력은 생애사적 영향을 미쳤다.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오랜 침묵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침묵은 자발적이지 않았다”며 “2018년 김선옥님이 언론을 통해 피해를 증언하고 여기까지 오는 데도 9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수십년간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못하면서 피해자들은 자살하거나 우울증을 앓거나 암 투병을 하고 있다”며 “이 아픔을 역사 속에 드러내지 못하고 가신 분들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나. 이번 소송을 통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에서 제출한 서면과 증거를 확인하고 증거조사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원고 측에게 “과거 국가폭력 사건들을 참고해 위자료 판단에 필요한 고려사항들을 정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원고 측 대리인인 하주희 변호사가 “원고 두 명 정도가 법정에서 진술하기를 원한다”고 하자, 재판부는 “증거조사 이후 원고 당사자 신문을 위한 기일을 잡을지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5월15일 열린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071350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410021043001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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