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모인 노라 노의 패션 세계…"옛 애인 만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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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면 건달이 아니지. 내가 100살까지 살고 90대까지 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건달 정신 덕분이에요."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는 평소 자신을 '백수건달'이라 칭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경운박물관에서 열리는 '노라 노: 퍼스트 & 포에버(First & Forever)' 전시를 앞두고 20일 만난 노라 노는 "백수 노인이 인터뷰까지 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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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옷으로 여성들 깨어났으면…철저한 장인 정신 기억해주길"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후회하면 건달이 아니지. 내가 100살까지 살고 90대까지 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건달 정신 덕분이에요."
패션 디자이너 노라 노는 평소 자신을 '백수건달'이라 칭한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세상의 흐름에 따른다는 의미. 그저 좋아서, 신이 나서 옷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진짜 '백수'(白壽·아흔아홉 살)를 맞았다.
영원한 현역인 그가 한국 패션사와 함께한 여정이다.
서울 강남구 경운박물관에서 열리는 '노라 노: 퍼스트 & 포에버(First & Forever)' 전시를 앞두고 20일 만난 노라 노는 "백수 노인이 인터뷰까지 한다"며 웃었다.

1928년생인 그는 대한민국 1호 패션 디자이너로, 한국 패션의 살아있는 역사, 전설로 꼽힌다.
한복과 양장(洋裝·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서양식으로 꾸밈)이 있던 그 시절, 195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한복 원단을 세련되게 되살린 '아리랑 드레스', 여성 듀오 펄시스터즈의 판탈롱 팬츠, 가수 윤복희가 유행시킨 미니스커트 등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1987년 미국 '하퍼스 바자' 잡지에 화보로 실려 미국 노드스트롬 백화점 전 매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게 했던 랩 드레스 또한 그의 대표작이다.

노라 노는 패션 인생을 돌아보며 "스무 살에 옷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옷 제작과 관련해)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것 같다"고 회상했다.
노라 노의 생일인 3월 21일 개막하는 전시는 의상 70여 점을 선보인다.
초기 디자인부터 미국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레스, 당대 인기 배우가 입은 의상,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문구가 선명한 라벨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모교인 경기여고 동창회 '경운회'와 경운박물관을 중심으로 후배들이 힘을 모았고, 한국 패션사 100년의 흐름을 맞춰 전시품을 선별했다.

노라 노는 의상실 거울 앞이 아니라 전시실을 채운 옷을 둘러보며 "옛날 애인을 만난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K-패션을 이끈 그지만, 인생 여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나, 2년 만에 짧은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본명인 '노명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노라 노' 이름을 단 패션 브랜드를 안착시키기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옷을 만들면서 여성들이 깨어나길 원했어요. 자존심을 살리고, 능력을 살리고, 그러한 인생을 걸어줬으면 좋겠다고요." (노라 노 인터뷰 영상 중)
아흔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패션을 향한 열정은 그대로인 듯했다.
검은 재킷에 금빛 목걸이를 찬 그는 카메라 앞에서 환히 웃으며 포즈를 했다. '백수가 이렇게 걸어 나와서 사진 찍는 것 봤냐?'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옷으로 이어진 인연과 추억도 생생하게 떠올렸다.

1959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나간 오현주를 언급할 때는 "걸어 나오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했고, 영화 '춘희'에서 배우 최은희가 입은 옷을 제일로 꼽기도 했다.
오랜 패션 여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일까. 노라 노는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패션쇼를 언급했다.
그는 "한 신문 기자가 쇼를 본 뒤에 '절제된 우아함'(Well-controlled elegance)이라고 리뷰를 썼다. 그때부터 내 디자인을 그 말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노라 노는 어떤 말보다 '패션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바랐다.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살았던 노라 노로 기억해주세요."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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