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믿고 탔는데 멈췄다”···신속통합기획 곳곳 ‘제동’

길해성 기자 2026. 3. 2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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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비 조달 막히고 거래 제한···정비사업 추진 동력 약화
동의율 확보 이후에도 절차 중단···사업지 관망 기류 확산
핵심지·외곽 격차 확대···일부선 공공 전환 검토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현장에서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는 모양새다. 초기 인허가 기간을 줄이며 정비사업 속도를 끌어올렸지만, 실제 사업 단계에서는 이주와 자금 마련 과정에서 어려움이 이어지며 지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사업지는 아예 동의서 징구를 중단하거나 공공재개발로 선회를 검토하는 등 신통기획 이탈 조짐마저 감지된다.

◇ 동의율 확보에도 멈췄다···사업지들 '관망 모드'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재개발 현장에서는 사업 속도를 늦추거나 절차를 중단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신통기획을 준비하던 구역들조차 동의서 징구를 멈추거나 일정 조정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정책 변화를 지켜보려는 관망 기류가 확산된 결과다.

중구 신당13구역은 신통기획 신청을 위한 주민 동의율을 약 60%까지 확보했지만 최근 동의서 징구를 중단했다. 신통기획은 통상 토지등소유자 2분의 1 이상 동의를 확보하면 신청이 가능한 만큼 이미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이 단계에서는 추가 동의를 확보하며 사업을 밀어붙이는 흐름이 이어지지만 해당 구역은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일정 조정에 들어갔다. 사업 추진이 이어져야 할 시점에서 멈춰선 점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그래픽=시사저널e

종로 창신12구역 역시 신통기획 관련 동의서 확보 작업을 멈추고 향후 일정과 사업 방향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신청 요건을 채우는 과정에 있었지만 추가 동의율 확보를 서두르기보다 사업 추진 여부와 방식 자체를 다시 따져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사업 전략을 재정비하는 단계로 해석된다.

◇ 금융·거래 규제가 만든 '이중 제약'···선거 앞두고 정책 변수

사업이 멈춘 배경에는 금융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정비사업의 실질적인 진행 여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는 '이주 속도'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6·27 및 10·15 대책에 따른 서울 전역 투기과열지구 재지정은 정비사업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강화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로 인해 이주비 대출이 크게 제한됐다. 특히 다주택자와 고가 주택 소유자의 대출이 어려워졌다. 이는 세입자 비중이 높은 노후 재개발 구역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이주 예정인 43개 구역 중 91%인 39개소(약 3만1000가구)가 자금 조달 문제로 이주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기과열지구 내 조합원 지위 승계 금지는 자금난에 처한 조합원의 퇴로를 막았다. 급격한 금리 인상이나 개인적 사정으로 분담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조합원이 매물을 내놔도 매수자가 조합원 자격을 얻지 못해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 정비사업지 내 한 조합원은 "시중은행의 대출 규제로 인해 조합들은 제2금융권이나 시공사 보증을 통한 고금리 대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결국 조합원 개개인의 분담금 상승으로 직결되며 사업 추진에 대한 내부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신통기획 특유의 공공기여 부담도 변수로 작용한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과 소셜믹스, 공공보행로 확보 등 다양한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데 사업성 저하와 재산권 제약에 대한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며 "민간 재개발 방식이지만 체감 규제 수준은 공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여기에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선거 이후 서울시 정비사업 기조가 일부 조정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사업지들이 속도를 내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신당13구역과 창신12구역이 동의서 징구를 멈춘 것도 선거 이후의 정책 향방을 확인한 뒤 가장 실익이 큰 방식을 선택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 입지 따라 갈리는 명암···외곽 노후지 '고사 위기'

다만 같은 신통기획이라도 사업 속도는 입지에 따라 크게 갈리고 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와 압구정3구역 등 핵심 지역에서는 시공사 수주전이 본격화되며 사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사업성이 충분히 확보되는 지역의 경우 공사비 상승과 금융 규제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사업 추진 의지가 유지되면서 일정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반면 외곽 노후 주거지는 상황이 다르다. 관악구 신림7구역과 양천구 신정4구역 등은 이주비 마련이 어려운 데다 공사비 상승과 금리 부담까지 겹치며 사업 추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 사진=연합뉴스

특히 경사지나 기반시설이 부족한 지역은 토목 공사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 사업성이 더 악화되는 구조다. 같은 신통기획이라도 입지와 사업 여건에 따라 추진 속도와 가능성이 크게 갈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실리 앞세운 '공공 전환' 검토까지

일부 사업지에서는 공공 주도 방식으로의 전환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공공재개발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공공 방식은 용적률 인센티브가 최대 500%까지 가능하고 LH·SH가 사업비 조달을 맡는 구조로 이주비 대출 규제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성동구 용두7구역 등 일부 지역에서는 신통기획 지연 이후 공공 방식 전환을 검토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민간 재개발이라는 명분보다 자금 조달과 사업 안정성을 중시하는 실리 중심 판단이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공공 방식 전환에 따른 수익성 제한과 사업 통제 강화 등 부담도 적지 않아, 단기 대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현재 시장은 속도를 앞세운 추진 국면에서 벗어나 리스크 관리 중심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며 "사업을 서두르기보다 정책과 금융 환경을 확인한 뒤 유리한 시점을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신통기획 사업지 전반의 속도도 함께 조정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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