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아마이드, ‘맛과 암’ 사이 미묘한 줄타기[김정호의 생명과 환경](10)

갓 구워낸 빵의 노릇한 색, 기름에 방금 튀겨낸 감자튀김의 바삭한 질감, 깊은 풍미를 머금은 진한 커피 향. 이 모든 순간은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요리의 기술과 감각을 갈고닦으며 얻어낸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이 매혹적인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함께 찾아온다. 바로 암 발생 위험이 있는 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의 생성이다.
풍미를 만드는 갈변의 과학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고기 한 조각이 서서히 색을 바꾼다. 처음에는 핏빛이던 고기가 회색빛이 되고, 곧 표면이 점점 짙어지면서 고소하고 깊은 향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빵집의 오븐 속에서 갈색으로 변해 가는 따뜻한 빵, 갓 볶은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향, 양파가 투명함을 지나 황금빛으로 물드는 순간. 우리가 ‘맛있겠다’라고 느끼는 수많은 장면 뒤에는 잘 알려진 과정이 있다. 바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라 부르는 화학 반응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과 음식 속 당이 열을 받을 때 서로 결합하며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다. 이 반응은 단순히 색을 갈색으로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수백, 수천 가지의 새로운 분자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며, 우리가 구운 고기에서 느끼는 풍부한 감칠맛, 빵 껍질의 고소함, 커피의 깊은 향 같은 음식의 복합적인 풍미가 탄생한다. 맛의 과학에서 마이야르 반응은 일종의 “향을 만들어내는 공장”에 비유된다.

1912년 프랑스의 화학자였던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Louis-Camille Maillard)는 흥미로운 화학 반응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당과 아미노산을 함께 가열하면 갈색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단순한 화학 실험처럼 보였지만, 이후 연구를 통해 이 반응이 빵, 커피, 초콜릿, 고기 등 거의 모든 조리 식품의 향과 색을 만드는 핵심 과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늘날 식품과학에서 마이야르 반응은 “맛의 근원”으로 불린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충분한 열이 있어야 하고, 표면이 너무 젖어 있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삶은 고기보다 팬에 구운 고기가 훨씬 더 향기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도가 올라가고 수분이 줄어들수록 반응은 더욱 활발해지며, 음식은 점점 더 진한 색과 깊은 풍미를 띤다. 우리가 “잘 구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바로 이 화학 반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를 의미한다.
문제의 아크릴아마이드는 어떻게 생기나
아크릴아마이드는 식품에 첨가되는 성분이 아니다. 이것은 조리 과정에서 우연히, 그리고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부산물이다. 이 현상의 핵심은 풍미를 만들어내는 마이야르 반응 과정에 있다. 특히 아스파라긴(asparagine)과 포도당이나 과당과 같은 환원당(reducing sugar)이 고온에서 반응할 때 아크릴아마이드가 생성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릇노릇한 갈색과 고소한 향은 미각의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암 발생 위험과 연결될 수 있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크릴아마이드는 탄수화물이 많은 식품에서 특히 잘 생성된다. 대표적으로 감자를 튀긴 식품에서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며, 커피콩을 볶는 과정과 빵류를 굽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크래커나 쿠키, 심지어 우리가 가볍게 즐기는 일부 스낵류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아크릴아마이드를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다. 인체에 들어온 아크릴아마이드는 그 자체로도 반응성이 있어 신경독소로 작용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아크릴아마이드가 간에서 사이토크롬 P450 계열 효소인 CYP2E1 효소에 의해 대사돼 생성되는 에폭사이드 구조의 글리시다마이드(glycidamide)라는 물질이다.

글리시다마이드는 유전독성(genotoxic) 물질로 작용할 수 있는 대사산물이다. 이 물질은 핵 속의 DNA에 결합해 DNA 부가체(adduct)를 형성한다. 이에 따라 DNA 염기 구조가 변형돼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돌연변이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돼 DNA 손상이 장기간 축적되면 결국 암 발생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세계 각국의 보건당국은 아크릴아마이드를 줄일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권고하고 있다. 첫 번째 권고는 음식을 조리할 때 색깔을 ‘황금빛(golden yellow)’ 단계에서 멈추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진한 갈색이나 검게 태우면 아크릴아마이드가 급격히 늘어난다. 둘째는 감자의 경우 냉장고에 보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냉장 온도에서는 감자의 전분이 더 많이 당으로 바뀌어 조리 시 아크릴아마이드 생성이 늘어난다. 따라서 감자는 상온의 서늘한 곳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블랜칭(blanching)이라는 과정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자를 튀기기 전에 뜨거운 물에 잠깐 담가 전분이나 당분을 줄이는 방식인데, 이 과정을 거치면 아크릴아마이드 생성이 눈에 띄게 감소한다. 식품 업계는 튀김 온도를 조금 낮추거나 조리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으로도 아크릴아마이드 생성을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조리법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아크릴아마이드 섭취량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식탁 위의 현명한 선택
그렇다면 우리는 감자튀김이나 커피를 이제 완전히 포기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현시점에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아크릴아마이드가 위험성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고, 다양한 음식을 함께 섭취하는 균형 잡힌 식단이라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특정 음식군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발생한다. 끼니마다 튀긴 음식이나 가공식품만 섭취한다면 아크릴아마이드 노출이 높아질 수 있지만, 곡물이나 채소, 과일이나 단백질 등 다양한 식품군이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식단은 그 자체로 방어막 역할을 한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밝혀지면 매우 못마땅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뭘 먹으라는 거냐’며 불평 가득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긍정적인 소식은 맛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크릴아마이드의 위험성을 낮출 수 있는 다양한 식품 관련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크릴아마이드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 방법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은 거부하기 어렵다. 지금 당장 미식의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조리법을 조금만 바꾸고, 식단을 다양화하며, 음식의 색깔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맛과 동시에 건강도 지킬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에 옮기는 태도다.
김정호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성진의 국방 B컷](53) 이란의 ‘섞어 쏘기’와 ‘가성비’ 전술을 북한이 쓴다면…우리는 준비
- 트럼프, 다카이치 면전서 “왜 일본은 진주만공격 사전통보 안했나”
- [꼬다리]대통령의 ‘주유소 폭리’ 프레임이 놓친 것들
- 담임교사가 두 차례나 신고했는데…포착된 위험신호에도 비극 못 막아
- [구정은의 수상한 GPS](26) 우크라이나 전장에 웬 ‘아프리카 군단’
- ‘인간새’ 듀플랜티스, 적수도 한계도 없다
- [취재 후] 고향을 빨리 떠나야 이득이 되는 나라
- ‘성추행 의혹’ 장경태 탈당…“결백 입증하고 돌아오겠다”
- 5호선 연장선 추가역 “우리 지역에”…인천·김포 ‘동상이몽’
- [김정호의 생명과 환경](10) 아크릴아마이드, ‘맛과 암’ 사이 미묘한 줄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