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장에 웬 ‘아프리카 군단’[구정은의 수상한 GPS](26)

“케냐 형법 제68조에 따라 대통령의 서면 승인 없이는 외국 군대에 입대할 수 없다. 우리는 기만적인 모집 방식을 통해 취약계층을 착취하는 인신매매와 밀수조직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 공유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무살리아 무다바디 케냐 외교장관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 중이던 지난 3월 16일(현지시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만난 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무다바디 장관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으로 피해를 본 케냐 국민의 안녕이 핵심적인 우선순위로” 회담에서 다뤄졌다고 한다. 러시아는 자국 내 병원 등에 있는 케냐인 부상자들을 케냐로 보내주고 사망자 유해도 송환하기로 했으며, 군사작전에 동원된 케냐인들이 빠져나오게 해주고 보상금도 주기로 약속했다고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느닷없이 케냐가 튀어나온 것 같지만, 전선에 내보낼 군인이 모자라는 러시아가 아프리카에서 병력을 모집해간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더군다나 그 방식은 공개적이고 솔직한 ‘신병 모집’이 아니라 취업 사기나 인신매매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로 인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불만이 커지던 차였다. 영국 가디언은 배관공을 모집한다는 온라인 구인광고에 속아 “총 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채” 전쟁터에 떨궈졌던 케냐인들을 인터뷰했다. 자폭 임무에 아프리카 출신들을 밀어 넣으며 인종차별적 욕설을 내뱉는 러시아 병사들의 영상이 올 1월 소셜미디어에 나돌기도 했다.
케냐 정부가 의회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매달 몇천달러씩 주고 보너스도 6000달러 넘게 준다는 말에 넘어가 1000명 넘는 사람이 러시아로 갔다. 우크라이나는 전장에 투입된 케냐인이 17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자 성난 케냐가 외교장관을 러시아로 보내 더는 병력을 모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제 케냐인들이 (러시아) 국방부를 통해 입대하지 않도록 합의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더 이상 입대는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을 끌어다 쓰는 것에 대해 러시아는 그간 부인해왔으나, 케냐의 발표로 사실상 공식화돼버렸다.

케냐·카메룬·이집트·남아공 등 명단 확인
러시아가 인신매매 조직을 끼고 병력을 모집해간 나라는 케냐뿐이 아니다. 카메룬,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우간다, 짐바브웨 등 여러 나라가 대상이 됐다. 스위스 민간단체 ‘인팩트(Inpact)’는 아프리카 출신 1400여명의 전투 참가자 명단을 확인해 공개했다. 이들 가운데 5명 중 1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서아프리카의 가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자국민이 50명 이상이라고 지난 2월 밝혔다. 남아공에서는 자국민들이 ‘속아서’ 전쟁터에 끌려가는 상황에 러시아 용병회사가 연루돼 있는지 정부가 조사 중이다. ‘바그너그룹’이라 불렸던 친크렘린 용병회사는 ‘아프리카 군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크렘린 통제하에 병력을 모집하고 있다. 이 회사를 감시하는 민간단체 ‘올 아이즈 온 바그너(All Eyes on Wagner)’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병력 모집을 기록해왔다. 이런 러시아 용병회사와 인신매매 범죄조직들, 아프리카국가의 부패한 관리들이 결탁해 있으며 러시아는 그들이 모집한 사람들을 전쟁터의 소모품으로 쓰는 것으로 보인다.
살아 돌아온 이들의 증언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3월 초 알자지라방송에 보도된 남아공의 32세 남성은 경호원 일을 하는 줄 알고 러시아에 갔다가 전선으로 보내졌다. 부패로 악명 높았던 남아공 전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딸이 이 인신매매 범죄에 깊숙이 가담해 바그너그룹에서 돈을 받고 자국 젊은이들을 넘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고, 남아공 당국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국회의원이던 주마의 딸은 여론에 밀려 물러났다. ‘호크스(Hawks)’라 불리는 남아공 우선범죄수사국(DPCI)은 귀국자들과 인신매매 그룹이 ‘외국 군사원조 규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병력 손실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 법원은 전사자 정보가 ‘기밀 정보’에 해당한다며 공개와 보도를 금지했다. 러시아의 주장도, 우크라이나의 주장도 과장돼 신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추정해볼 근거는 있다. 이를테면 러시아 국방부는 2022년 9월 자국군 약 6000명이 숨졌다고 공식 확인했고, 러시아에 장악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의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정보도 있다. 푸틴 측근으로 바그너그룹을 이끌었지만, 2023년 반푸틴 행보를 보인 뒤 사망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그해 6월까지 러시아군 사망자가 12만명에 이르는데 정부가 축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라트비아에 본부를 둔 반크렘린 언론 메두자의 집계도 비슷하다. 미국 중심 5개국 정보동맹체인 ‘파이브아이즈’가 평가한 러시아 전력 현황이 의도치 않게 유출된 일도 있었다.
러시아 총알받이로 팔아넘겨
이런 정보를 분석해 여러 기관과 매체가 러시아의 사라져간 목숨을 계산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올 1월 말 미국의 보수적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의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가 12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2022년 2월부터 2025년 12월 사이 전사자는 27만5000~32만5000명으로 봤다.
푸틴은 2025년 12월 연방 국방통제센터 연설에서 “우리 군은 자신감 속에 진격하면서, 서방의 훈련을 받고 현대식 외국 무기로 무장한 적을 격파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치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가 개입한 모든 전쟁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가 가장 많은 것은 분명하다. 197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점령 때 소련군 사망자는 1만4000~2만6000명, 1990년대부터 10여년 동안 산발적으로 이어진 러시아 내 체첸공화국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에 따른 사망자는 1만2000~2만5000명이었다. 미군은 한국전쟁 때 5만4000여명, 베트남 전쟁에서는 4만7000여명을 잃었다. 이번 세기 들어 감행한 아프간 전쟁 미군 사망자는 2465명, 이라크 전쟁에서는 4432명이었다. 이런 숫자들과 비교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입은 피해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죽고 다치는 이들이 계속 늘자 러시아는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러시아 내 ‘계약 군인’들을 늘리는 것과 함께 북한군을 투입하고 취업 사기로 모집한 아프리카인들을 전선에 보내는 식으로 이중의 병력 공급망을 만든 것이다. 미국 애틀랜틱카운슬의 캐서린 스펜서는 “국내에서 반발을 살 게 뻔한 동원령을 내리지 않아도 되고, 또 러시아인보다 전쟁에 내보내는 비용도 낮기 때문에 푸틴 정권은 외국인을 모집하는 방식을 점점 더 선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BBC 러시아어판은 약 2만명의 외국인이 러시아군에 입대했다고 했다.

여성들은 취업 사기로 군수공장에
초기엔 주로 옛소련권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들이었는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 출신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AP 통신은 일자리 약속에 속아 러시아로 유인된 뒤 전쟁에 내보내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 인터뷰를 실었다. 중개업자들이 노동자들을 유인해 자신도 모르게 군 복무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사기 패턴이 방글라데시에서도 반복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 차원에서 자국 젊은이들을 러시아의 총알받이로 팔아넘기는 나라는 북한 정도밖에 없으니, ‘모병’이 인신매매 범죄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던 젊은 남성뿐 아니라 취업 사기에 속아 러시아로 갔다가 드론 조립공장에서 일하게 된 여성도 수백명에 이르며, 상당수가 아프리카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의회는 3월 12일 러시아와 관련된 인신매매 범죄 관련자들을 제재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아프리카뿐 아니라 쿠바,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취업이나 유학을 내세워 병력을 모집하는 용병 네트워크를 지목했다. 반면 오케이아프리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모스크바를 자극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러시아와 협상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남아공 외교 차관은 “지금까지의 증거로는 러시아 정부의 직접 개입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 출신들이 귀국할 수 있게 해준 푸틴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전쟁 기간 내내 남아공은 미국 등 서방 진영과 거리를 뒀으며 브라질, 인도,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에는 줄줄이 기권표를 던졌다. 남아공이 유독 비윤리적이라 말할 수는 없다. 남아공과 러시아의 역사적인 유대관계는 남아공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과 싸우던 흑인 투사들에게 소련이 무기와 훈련을 지원해준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넬슨 만델라의 유산인 인권과 평화와 화해 대신에 러시아 편을 드는 남아공 정부의 입장은 내부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부르고 있다.
조심스러운 케냐, 러시아와 가까운 남아공. 국제사회에 이슈가 생기면 아프리카의 입장은 늘 약자다. 노예를 수탈당하던 시절부터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던 시기를 지나 취업 사기에 휘말리는 지금까지, 많은 아프리카인은 ‘값싼 목숨’으로 희생됐다. 러시아의 전쟁과 병력 모집은 이런 의미에서도 제국주의적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추구하는 ‘비동맹’이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 보기가 아닌 당당한 제 발로 서기가 될 날은 언제 올까.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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