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분쟁, 쿠팡 파문… '비밀 여는 열쇠' K-디스커버리를 아시나요?
한국형 디스커버리의 함의 1편
美 민사소송 핵심 ‘디스커버리’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 해소
국내서도 도입 논의 활발해
기업들에만 중요한 이슈일까
![최근 법조계에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한 장면.[사진 | 더스쿠프 포토]](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thescoop1/20260320115650951lfqf.jpg)
#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기술 탈취와 개인정보 유출 등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심한 분쟁에서 약자를 도와주겠다는 취지입니다. 고려아연의 미국 자회사 사례부터 우리 일상을 뒤흔든 쿠팡 사태에 이르기까지, 거대 기업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떠오른 디스커버리 제도를 더스쿠프가 두 편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그 첫번째 편입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거대 기업과 전면전을 치러야 하는 개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ㆍ제미나이]](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thescoop1/20260320115652326ohgr.jpg)
승리를 확신한 직원은 중금속 폐수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설득해 PG&E와의 집단소송을 준비합니다. 그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덕분에 주민들은 지루한 법적 공방 없이 PG&E로부터 총 3억3300만 달러(약 4964억원)에 달하는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요? 놀랍게도 199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2000년)'가 제작되기도 했으니, '영화 같다'는 말이 아주 틀리진 않았네요.
그런데, 어떻게 기업의 내부 자료에 외부인(법률사무소 직원)이 접근할 수 있었을까요? 이게 가능했던 건 미국 민사소송제도 중 하나인 '디스커버리(Discoveryㆍ증거개시)' 덕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인 1938년 도입돼 미국 민사소송의 필수 절차로 자리잡은 제도입니다.
이 제도에 따르면, 원고와 피고 양측은 재판 전에 '서로가 가진 패'를 미리 공개해야 합니다. 서류는 물론이고 이메일, 문자 메시지, 녹음, 영상 등 상대방의 거의 모든 정보를 요구할 수 있죠. 이를 거부할 경우 법원의 징계를 받거나 재판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스커버리 제도는 앞선 사례처럼 개인과 거대 기업 간 분쟁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이 제도 덕분에 자금력과 정보력이 부족한 개인도 거대 기업과 비교적 대등한 위치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디스커버리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도 디스커버리 제도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상대방의 패를 미리 확인하면 자신이 승소할지, 패소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법적 공방 없이 합의나 조정으로 사건을 조기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시간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중요한 민사소송 절차'로 평가받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이 절차에만 소송 시간과 비용의 대부분을 쏟아붓기도 합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thescoop1/20260320115653634xvtn.jpg)
사건의 발단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고려아연은 미국 자회사 '페달포인트홀딩스'를 통해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업체 '이그니오홀딩스(Igneo Holdingsㆍ이하 이그니오)'의 지분 100%를 58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이그니오의 자본 총계가 –18억7300만원(2022년 11월 공시 기준)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단 점입니다. 이 때문에 부실기업을 턱없이 비싼 가격을 주고 샀다는 논란이 일었죠. 이를 근거로 영풍은 고려아연의 인수가격 적정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고, 2024년 9월엔 고려아연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하고 4005억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도 냈습니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빛을 발한 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영풍은 증거 수집을 위해 지난해 7월 미 연방지방법원에 "페달포인트홀딩스가 이그니오 인수 관련 증거를 제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1심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페달포인트홀딩스가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됐습니다.
이를 통해 영풍은 이그니오 인수와 관련된 핵심 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습니다. 만약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었다면 국내 기업이 미국 기업의 정보를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을 거란 게 법조계의 분석입니다.[※참고: 고려아연과 영풍의 소송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 李 대통령 공약 속 디스커버리 = 이런 디스커버리의 효용성을 눈여겨봤는지, 최근 국내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디스커버리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맞물리면서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인 '기술 탈취 근절' '공정사회 건설'과도 상당 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 것이 2월 19일 공포된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입니다. 골자는 손해배상소송에서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원고)이 침해 의혹이 있는 기업(피고)이 가진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핵심 증거가 피고에 쏠려 있어 원고의 피해 입증이 어렵다는 한계를 반영한 조치입니다.
![[사진 | 뉴시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thescoop1/20260320115654929cwdj.jpg)
전문가는 피고의 사무실이나 공장, 기타 장소에 출입해 자료를 열람하거나 장치를 작동하는 등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조사 결과는 재판의 주요 증거로 활용됩니다. 피고 측이 정당한 사유 없이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할 경우 원고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재 조항도 포함됐습니다.
아울러 개정안은 조사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자료 보전 명령 제도'도 담았습니다. 이름이 말해주듯 자료가 훼손되는 걸 사전에 방지하는 게 핵심입니다. 기존 민사소송법상에도 소멸ㆍ변형을 우려해 증거를 미리 확보하는 '증거 보전 제도'가 있긴 합니다만, '자료 보전 명령 제도'는 그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증거 인멸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받습니다.
상생협력법 개정안은 2028년 2월 20일 시행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국한해 있지만, 법조계에선 이른바 'K-디스커버리'의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질 거란 전망을 내놓습니다. 현재 특허법, 실용신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일반 민사소송법에 이르기까지 'K-디스커버리 도입'을 골자로 한 개정안들이 국회에 줄줄이 발의돼 있기 때문입니다.
정종채 변호사(법무법인 정박)는 "이번 개정안에 도입된 K-디스커버리 제도는 손해배상소송에서 입증책임을 오로지 원고에게만 부담시켰던 우리 민사소송법에서 혁명과 같은 조치"라면서 "향후 민사소송법 전반에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K-디스커버리 제도는 법조계에선 뜨거운 이슈지만, 일반 서민에겐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이 제도를 거대 기업 간의 이권 다툼에 사용하는 법적 도구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속 사례처럼, 거대 기업과 전면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진 | 중소벤처기업부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thescoop1/20260320115656234casf.jpg)
이대로 시간에 묻혀 논란이 잠잠해지나 싶었습니다만, 일부 쿠팡 이용자와 주주들이 미국에서 집단소송을 진행하면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건 '디스커버리 제도'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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