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30년 봉사 인생, 69세 김영란씨 “봉사가 좋아서 하다 보니 대상까지”
우면산 산사태 등 재난 현장 헌신…청년 참여 절실

지난해 연말, 대구시 '대구자원봉사자 대회'에서 달서구에 거주하는 김영란(69)씨가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1997년부터 매년 개최돼 온 이 행사는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바탕으로 자원봉사 활동에 헌신한 봉사자들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자리로, 대구 지역 자원봉사의 산 역사를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가정주부인 김씨가 대구시로부터 최고상을 받게 된 배경에는 30여 년에 걸친 묵묵한 봉사 활동이 있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냥 봉사가 좋아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말에는 특별한 거창함이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소박한 그의 태도가 30년 봉사 인생의 진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수영장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된 30년 봉사 여정
김씨가 자원봉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의외로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40세 무렵, 그는 건강을 위해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어느 날 5층에 위치한 수영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자원봉사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계획이나 준비 없이,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지원서를 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리라고는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식 기록상으로는 24년 6개월의 봉사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김씨는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봉사 활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기록에는 24년으로 나왔는데 사실은 그전에도 했거든요. 대구시에 봉사 기록 같은 게 별로 없었을 때부터 했으니까요"라고 설명하며, 따져보면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30년쯤 됐다고 덧붙였다.
봉사 활동을 시작할 당시, 주변 지인이 장애인 쪽 자원봉사를 권유했다. 그 권유가 계기가 되어 김씨는 지금까지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을 중심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특정 분야에 집중하며 전문성을 쌓아온 그의 봉사 활동은 단순한 일회성 참여가 아닌, 깊이 있는 헌신의 결과물이었다.

△400여 명 회원 이끈 리더십,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
김씨의 봉사 활동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조직적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회원이 400여 명에 이르는 대구사랑봉사단의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자원봉사 활동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현재는 고문직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명예직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에서 직접 봉사하는 그의 모습은 후배 봉사자들에게 살아있는 귀감이 되고 있다.
그동안 김씨가 받은 포상 기록만 봐도 그의 헌신적인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대구시장 표창을 시작으로, 2011년 대구시자원봉사센터장 표창, 2018년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 그리고 2024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총 7차례에 걸쳐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봉사 활동은 여러 차원에서 인정받아 왔다.
△우면산 산사태 현장,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 활동
30년 가까운 봉사 활동 중 김씨가 가장 보람 있었다고 꼽은 순간은 2011년 7월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현장에서의 경험이었다. 당시 집중호우로 인해 16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부상당한 대형 재난 현장이었다. 김씨는 대구에서 첫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고, 노래방을 운영하던 피해자의 집 지하로 들어가 진흙과 잔해를 치우고 정리하는 작업을 도왔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김씨는 특별히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연세가 많이 든 어르신이 오셔서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 묻길래 '대구에서 왔다'고 하니까 '멀리 대구에서 여기까지 와 줘서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인사를 했던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재난으로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가 보여준 감사의 눈물은, 김씨에게 봉사 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힘들어도 마치고 나면 기분 좋아"
김씨는 자원봉사 활동의 본질을 "도와주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할 땐 약간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마치고 나면 보람 있고 뿌듯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봉사 활동이 항상 쉽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 성취감과 보람이 모든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로 그는 세계 육상 대회 때의 경험을 들었다. "세계 육상 때에도 저희들이 캄캄한 새벽에 4시 반에 나왔어요. 큰 사고 없이 마치니까 오후 2시쯤 됐는데 뿌듯함이 들었어요." 새벽 일찍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긴 봉사 활동이었지만,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느낀 성취감은 육체적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김씨의 이러한 태도는 봉사 활동에 대한 건강한 관점을 보여준다. 봉사를 의무나 부담으로 여기지 않고, 과정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로 얻는 기쁨에 집중하는 자세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봉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노령화되는 봉사자, "젊은 세대 참여 절실"
대상 수상의 기쁨 속에서도 김씨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자원봉사자의 노령화 문제였다. "진짜 요즘, 자원봉사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데 봉사자가 노령화 추세에 있어 안타까워요"라고 현실을 진단했다.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김씨는 "제가 시작할 적에 40대에는 정말 펄펄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노령화 돼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때 젊은 나이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봉사자들이 이제는 고령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자리를 채울 젊은 세대의 참여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김씨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젊은 봉사자가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자원봉사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세대 간 계승이 필수적이며,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소박함 속에 담긴 진정성
김씨의 봉사 철학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하다. 대상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일부러 소감이라 할 것도 없고 그냥 봉사가 좋아 가지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좋은 큰 상도 또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고맙지요"라고 답했다. 거창한 포부나 철학을 늘어놓기보다는, 봉사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의 말에는 꾸밈없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운동(수영)하러 다니다가 봉사하는 계기가 되고 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라는 그의 말은, 인생의 의미 있는 전환이 때로는 아주 작은 우연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영장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본 공고 하나가 30년의 봉사 인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작은 관심과 실천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한다.
김영란씨의 30년 봉사 인생은 화려한 수사나 거창한 철학이 아닌, 꾸준함과 진정성으로 쌓아올린 헌신의 기록이다. 40세에 우연히 시작한 봉사 활동이 69세가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대구사랑봉사단의 고문으로서, 그리고 여전히 현역 봉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후배 봉사자들에게 살아있는 롤모델이다. 7차례에 걸친 각종 표창과 이번 대상 수상은 그의 헌신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지만, 정작 본인은 "봉사가 좋아서" 한다는 소박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있다.
그가 우려하는 자원봉사자의 노령화 문제는 비단 대구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전체가 직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김씨가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젊은 세대가 자원봉사에 더 많이 참여하여, 봉사와 나눔의 정신이 세대를 넘어 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
"할 때는 조금 힘들어도 하고 나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라는 김씨의 말은, 봉사 활동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일 것이다. 30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한 마디가, 봉사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