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과 사랑” 힙불교 딸 뒤엔… “과욕 버려라” 아빠 스님 가르침[M 인터뷰]

박동미 기자 2026. 3. 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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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해탈컴퍼니 주여진 대표와 태고종 태현스님
태현스님, 출가 5년만에 환속해 결혼… 딸 8살 때 재출가
‘결혼 허용’ 태고종 소속… 절에 함께 살며 가족 모두 수행
부처님 가르침 따른 양육… “안 돼”라는 말 최대한 하지 않아
주 대표, 방황의 시기 딛고 부친 제안에 ‘경전 티셔츠’ 제작
불교박람회 주목받아 ‘중생아 사랑해’ ‘깨닫다!’ 굿즈 이어져
“고통도 환희도 결국 변해… 제행무상의 가르침 기억했으면”
이달 초 강원 원주 행복자비선원에서 만난 태현스님(앞)과 딸 주여진 해탈컴퍼니 대표. 절에서 함께 사는 부녀는 최근 20∼30대 사이에 불고 있는 ‘힙불교’ 열풍의 주역들이다. 백동현 기자

원주=박동미 기자

바람이 여전히 차가운 3월 초, 강원 원주의 ‘행복자비선원’. 엄숙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이곳에 ‘힙’한 부녀가 산다고 했다. 출가, 환속, 결혼, 출가를 반복한 태현스님(아버지·61)과, 해탈컴퍼니의 주여진 대표(딸·30)다. 법당과 가정집이 한 지붕 아래에 있다. 두 사람과 마주하자, 뒤로 전기밥솥이 보인다. 성(聖)과 속(俗)이 무심하고 묘하게 버무려진 풍경. 이것이 ‘힙불교’ 열풍의 동력인 걸까.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밥솥 옆에서 해탈을 논하다’쯤 되려나.

◇스님이 결혼? 온 가족이 절에 산다고?= 해탈컴퍼니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유행에 좀 민감하다면, 최근 한번은 들어봄 직한 이름이다. ‘긍정과 사랑’ 티셔츠, ‘깨닫다’ 열쇠고리, ‘번뇌 닦이는 수건’ 등 불교 철학을 쉽고 친근하게 차용해 만든 굿즈들이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 열린 불교박람회에서 화제가 됐다. SNS를 중심으로 한 2030층의 큰 지지를 얻었는데, 이 회사를 이끄는 젊은 대표가 ‘스님 딸’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가 반야심경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디제잉을 하고, 그 리듬에 맞춰 스님이 춤을 췄다는 얘기도. 그리고 네 식구가 절에서 산다고 하니, 우선 그 사연부터 들어봐야겠다.

“한계에 부딪혔던 거죠. 승가라는 수행 시스템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도 복잡한 세상에서 흔들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어요. 세속에서 승속으로 한 번 출가했으니, 이번엔 승속에서 세속으로 출가하자 마음먹었죠.”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처음 출가한 태현스님은 수행 5년 만에 환속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다. 대학시절 불교학생회에서 인연을 맺었던 후배에게 “우리 같이 수행자의 길을 가자”고 프러포즈했다. “다시 출가해도 반대하지 않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부부는 직장과 가정에서 ‘수행자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그러다, 때가 왔다. 깨달음에 갈증을 느낀 스님은 두 번째 출가를 결심한다. “큰애(주여진)가 여덟 살이 됐을 때 결혼이 허용되는 태고종으로 재출가 했어요. 갑자기 가정을 등진 게 아니라고요(웃음).”

3월 초 강원 원주 행복자비선원에서 만난 주여진 대표(위)와 태현스님. 백동현 기자

충북 음성의 태고종 소속 절에서 살던 가족은 10여 년 전 여기 원주로 이주했다. 스님은 주지가 됐지만, 절이 ‘흥’하지는 못했다. 조계종이 대다수인 한국 불교는 일반적으로 ‘스님=독신의 수행자’이고, 가정이 있는 스님의 절에 신자가 쉽게 모이진 않는다. 그래서 태고종 스님 중엔 절과 가정을 분리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생계를 위해 안보살(아내)도 일을 해야 했고, 저도 재출가 전 하던 건설 일을 비정기적으로 하곤 해요. 괜찮습니다. 모든 게 수행이죠. 가족을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 가정을 도량(道場·수행을 위한 장소) 삼은 것이니까요.”

◇집에 오니 어느 날 아빠가 스님이 됐다=이날 해탈컴퍼니의 인기 상품 ‘긍정과 사랑’ 티셔츠를 입고 있던 주 대표. 그에겐 ‘그날’이 어땠을까. 아빠가 스님이 된 날 말이다. 아내에겐 예고된 것이었으나, 아이들은 다르지 않나. 주 대표는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거실엔 낯선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매끈한 머리와 잿빛 승복의 ‘손님’. 그는 얼마 전까지 함께 장난을 치고 놀아주던 아빠였다. “몇 달 만이었어요. 아빠가 출장을 자주 다니시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됐으니까요. 놀라고 무서웠죠.”

여덟 살 주 대표에게 아빠의 파격 변신은 버거웠다. 태현스님은 ‘가족’이라는 가장 뜨거운 화두를 껴안고, 세속이라는 도량으로 다시 출가한 것이지만, 이를 이해하기에 당시 주 대표는 너무 어렸다. “어색해서 신발끈을 정리하는 척, 인사하는 척, 애매하게 고개를 숙였던 기억이 남아 있어요.”

“아, 근데 누나, 아빠가 뭐야. ‘아빠스님’이라 해야지!” 대화가 무르익어 가는데, 한 청년이 반듯하게 깎은 과일과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말했다. 그는 주 대표의 동생 주현우(28) 씨. 그도 유명하다. 10명 남짓한 교내 불교 동아리를 수백 명 규모로 키워냈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회장까지 역임했다. 지금은 해탈컴퍼니의 한 축을 담당하는, 든든한 조력자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아빠는 ‘스님’이었다”면서 “너무 어려서 충격을 받거나 한 기억조차 없다. 다행이다”라며 웃었다.

불교박람회에서 화제를 모은 해탈컴퍼니의 불교 굿즈. 해탈컴퍼니 제공

◇‘해탈’의 시작은 침대… 이 부녀의 ‘전법(傳法)’을 보라= ‘아빠스님’으로서 일반 가정과는 다른 교육법으로 자녀들을 키우고 싶었던 스님은, ‘안 돼’라고 한 적이 없다. 아이들이 조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싶을 때도 최대한 참았다. 아이들이 직접 약간의 위험을 겪게 그냥 뒀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애들은 부모의 ‘안 돼, 위험해’ ‘안 돼, 더러워’ 소리를 듣잖아요. 최대한 그 말을 안 하기로 했었죠.”

주 대표도 “부정적인 말을 거의 안 하셨다. 무조건 ‘좋다’는 아니었지만, 자유롭게 생각하고 직접 겪고 판단하게 해주신 거 같다”고 했다. 해탈컴퍼니의 히트 상품 ‘긍정과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것 같다. 그것은 태현스님의 양육방식 그 자체다. 물론, 자식과 부모의 갈등이 수행자 가족이라고 해서 없을 리 없다. 스님은 새벽 예불을 언급하며 “아이들이 묵묵히 해줘서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며 웃었다. “어디선가 애들이 힘들어한다는 소릴 들었어요. 그래서 한번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는데, 아니 두 녀석 다 바로 그다음 날부터 안 나오더라고요. 저도 속 많이 끓였어요.”

주 대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몇 년을 방황할 때도 스님은 속이 탔다. 하지만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주 대표는 당시를 “잠만 자던 때”로 회고했다. “무기력했어요. 어느 날 침대에 멍하게 있는데 스님이 ‘너는 과학자야. 침대를 연구하는 과학자’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어요.” 스님은 ‘취업 언제 할래’ ‘잠 좀 그만 자라’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태현 스님과 주여진 해탈컴퍼니 대표가 강원 원주시 행복자비선원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주 대표가 동면을 끝낸 것도 아빠스님의 가벼운 제안에서였다. ‘실담범자(초기 불교 경전의 글자)’ 명인 인 법헌스님과 함께 관련 전시를 열었던 태현스님은, 이 문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티셔츠에 입혀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음악과 미술 등 예술적 재능을 보였던 주 대표는, 예상보다 훨씬 근사한 실담범자 티셔츠를 만들었고, 이것이 불교박람회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중생아 사랑해’ ‘긍정과 사랑’ ‘깨닫다!’ 등 해탈컴퍼니를 대표하는 굿즈들이 탄생했다. 해탈컴퍼니는 그 기세로 얼마 전 대형 쇼핑몰에서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주 대표가 제품을 판매하면 그 옆에서 태현스님은 손님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며, 상담을 해줬다. “반응이 좋았어요. 내가 이것저것 다 해본 스님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이제 보니, 이 부녀의 남다른 행보 그 자체가 21세기식 ‘전법’이다.

◇“중생들아 ‘제행무상’이야.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마”= 어딘가 주 대표의 20대처럼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청춘이 있을 것이다. 입시와 취업 등 과열경쟁에 지친 이들은 오늘도 삶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릴 것이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지쳐 잠들고, 108배를 하며 떼도 써봤던 주 대표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또래와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궁금했다. “저도 아직 자라는 중인데요. 아직 학생 소프트웨어를 사회인 소프트웨어로 바꿔 끼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는 “‘제행무상(諸行無常)만 기억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우주 만물이 생멸·변화하며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뜻이다. “지드래곤이 ‘영원한 건 절대 없어’(‘삐딱하게’)라고 노래했잖아요. 전 그게 가장 힙한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고통도, 환희도 결국은 변한다는 진리를 알면 삶이 훨씬 유연해지거든요.”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태현스님이 덧붙인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완벽해지려는 과욕을 버리라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가지라는 것이다. “너무 애쓰면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어요. 그저 하루를 살아낸 것으로 충분하다, 그 적당한 여유가 우리를 번뇌에서 구원해 줄 겁니다.”

불교밴드를 결성하고 연습 중인 주여진 대표가 해탈컴퍼니 SNS에 올린 연습 장면.
해탈컴퍼니 직원 5명과 ‘불교밴드’… “어설픈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 주 대표의 더 큰 지혜 향한 모험

주여진 대표가 이끄는 해탈컴퍼니는 처음엔 동생인 주현우 씨를 포함해 2인 회사였으나, 현재 또래가 더 합류해 총 5명이 됐다. 주 대표가 아이디어를 내 제작한, 불교 교리를 쉽게 풀면서도 재기가 넘치는 굿즈들은 2030세대에 공감을 얻으며 ‘힙불교’ 현상 중심에 섰다. 특히, 수차례 국제불교박람회에서 ‘가장 힙한 부스’로 소문이 나며, 주 대표와 아버지인 태현스님을 만나기 위해 오는 팬들도 늘었다.

MZ세대 사이에서 화제몰이했던 게스트하우스 절 홍대선원과의 협업도 흥미로웠다.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불교의 철학을 엮은 ‘업보 세탁소’ 행사다. 잘 안 입는 티셔츠를 가져오면, 주 대표가 불교의 메시지를 담아 리폼을 해줬는데, 환경오염에 대한 인간의 업보를 청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해탈컴퍼니가 단순히 굿즈를 판매하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깨닫다, 긍정과 사랑, 묵언수행중, 중생아 사랑해 등의 메시지가 각인된 티셔츠와 일상용품들은 물건이 자리한 공간을 ‘작은 사원’으로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 해탈컴퍼니의 목표와 목적이 있다. “다양한 기획을 해보고 싶어요. 굿즈 컬래버도 좋고, 수행 공동체 같은 것도 상상하고 있어요.”

최근엔 ‘불교밴드’를 결성하고 연습 중이다. 직원 수가 밴드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다. 이 중 단 한 명만 재즈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던 전공자. 나머지는 완전한 초보다. 노래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다. 슬쩍 몇 곡 들어봤다. 강렬하고 힘찬 록 사운드에 이런 가사. “월요일 아침/ 낡은 가방을 메고/ 막막한 현실 속으로/ 우리 또 달려가/ 내일은 보이지 않아….” 주 대표는 “엄청 잘할 생각은 없다. 잘할 수도 없다”며 웃었다. “잘하면 보는 사람이 재미도 없잖아요. 어설픈 모습 그대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저 조금 힘을 주는, 희망적인 움직임이면 족해요.”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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