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가 실패한 진짜 이유…대입 제도까지 연계해야

권순우 기자 2026. 3. 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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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도라더니 왜 현장은 혼란뿐인가… 유은혜가 다시 꺼낸 고교학점제의 실패 위기

고교학점제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 교육을 바꾸겠다며 출발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혼란과 불신의 상징처럼 됐다.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은 제도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준비와 지원이 끊긴 채 현장에 방치되면서 실패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지금의 혼란을 이유로 다시 과거식 수능 중심 체제로 돌아가면 한국 교육은 AI 전환 시대에 정면으로 역주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이 이번 대담에서 가장 강하게 강조한 것은 한국 교육의 위기가 단지 학교 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대학 서열을 교육의 목표처럼 여기고 있고 그 서열을 통과해야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얻는다고 믿는다. 부모의 불안은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 설계로 이어지고 학교는 그 불안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굳어졌다. 그 결과 학생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탐색하는 존재가 아니라 입시 경쟁의 플레이어로 길러졌고 공교육은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기보다 소수의 성공 경로를 반복 재생산하는 장치에 가까워졌다는 진단이다.

그가 고교학점제를 다시 꺼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교학점제의 출발점은 학생이 학교가 정해준 과목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통해 진로와 삶의 방향을 탐색하게 하자는 데 있었다. 국영수 중심의 입시 과목만이 아니라 심화 과학이나 로봇 같은 분야를 배우고 싶다면 학교 밖 대학과 기업 전문가까지 연결해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는 실제 사례로 대구의 외곽 지역 고등학교 학생을 소개했다. 로봇을 배우고 싶었던 여학생이 고교학점제를 통해 지역 대학 교수와 연결돼 방학 동안 실험과 수업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로봇을 연구하고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진로 의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례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과목 선택권이 아니었다. 한국의 고교 교육이 처음으로 학생의 관심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본격 도입되기 직전에 설계의 마지막 고리가 끊어졌다는 데 있다.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은 자신이 퇴임하던 2022년까지는 2025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지역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 수업 체계 그리고 학교 밖 전문가 연계 구조까지 단계적으로 준비했다. 모든 학교가 모든 과목을 개설할 수 없기 때문에 소수 학생이 원하는 과목은 여러 학교가 함께 듣는 공동교육과정으로 풀고 대학과 기업 전문가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센터까지 설계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이 체계를 지속적으로 밀어붙일 행정적 지원과 정책적 연계가 사실상 중단됐고 그 결과 제도는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라 미완의 상태로 학교 현장에 떨어졌다. 학교는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고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제도의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2025년 전면 도입을 맞게 됐다.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이 실패 했다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제도는 살아 있는데 제도를 지탱할 인프라와 설명 체계와 평가 체계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특히 뼈아프게 지적한 대목은 대입 제도와의 불일치였다. 고교학점제가 학생 선택권과 진로 탐색을 중심에 두는 제도라면 대입도 당연히 그 과정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했다. 어떤 과목을 선택했고 왜 선택했고 그 선택이 어떤 학업 경험과 성장으로 이어졌는지를 입시에 반영해야 제도 취지가 살아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수능과 상대평가 중심의 구조에 크게 묶여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도 그것이 입시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생긴다. 그러니 선택은 자유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가 되고 고교학점제는 적성을 넓히는 제도라기보다 무엇을 골라야 손해를 덜 보느냐를 계산하는 제도로 전락한다.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은 이 불일치를 방치한 채 고교학점제만 전면 시행한 것이 현장 혼란의 핵심 원인이라고 봤다.

그가 원래 구상했던 것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에 맞춰 2028학년도 대입 제도를 함께 개편하는 로드맵이었다. 4년 예고제가 있는 만큼 2024년 초에는 대학입시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가교육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아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평가 확대나 수능 자격고사화 또는 서논술형 평가 같은 여러 방안이 검토됐지만 정권 교체 이후 이 논의가 사실상 힘을 잃으면서 고교학점제는 입시 체계와 엇박자를 내게 됐다. 결국 현장에서는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좋은 취지의 제도가 실패 위기처럼 보이게 된 것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과 연결의 문제라는 것이다.

유은혜 전 장관도 현실의 불신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학종이든 사정관제든 취지는 좋았지만 결국 정보력과 자원이 많은 집단이 먼저 적응하고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됐다는 비판은 이미 한국 교육정책이 수없이 겪은 장면이다. 그는 고교학점제 역시 그런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지금 드러나는 문제 상당수는 본래 취지가 왜곡된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입 반영 구조와 절대평가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니 학생은 진짜 하고 싶은 과목보다 입시에 유리해 보이는 과목을 고르게 되고 학점제의 철학은 곧바로 훼손된다. 그러니 현장이 제도를 불신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상태를 이유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설계와 맞는 평가 체계를 복원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시선은 여기서 더 넓어진다. 왜 지금 교육을 바꿔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끌어왔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의대와 대기업과 안정적 전문직을 최고의 경로로 상상하지만 앞으로의 직업 구조는 그렇게 고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질병 진단 같은 영역에서도 AI의 판단 정확도가 사람을 추월하는 국면이 오고 있고 플랫폼과 창업과 정교한 기술 노동과 돌봄 노동 같은 새로운 영역이 빠르게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거의 직업 구조를 기준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그가 말하는 교육 전환은 그래서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더 많이 쓰자는 뜻이 아니다. AI 기술을 쫓아가는 교육이 아니라 AI를 활용하면서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와 질문과 판단을 길러내는 교육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그가 반복한 핵심어는 문해력과 질문하는 힘이었다. 아이들이 쇼츠와 클릭 중심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질수록 깊이 읽기와 타인 이해와 맥락 판단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 그는 문해력 저하를 단순한 독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력과 신뢰가 약해지는 현상과 연결지었다. 공교육은 정답을 빨리 맞히는 훈련보다 텍스트를 깊이 읽고 질문을 만들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는 수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모든 교과가 그렇게 변해야 하고 그 변화는 교실 구조까지 바꿔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시 학교 공간 혁신으로 이어진다.

그가 장관 시절 추진했던 학교 공간 혁신도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존 학교는 교사가 한눈에 학생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좋은 구조였다. 군막사 같고 교도소와 닮았다는 건축가의 비유를 인용하며 그는 그런 공간에서는 다양한 선택 수업과 프로젝트형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는 이동 수업이 가능해야 하고 소규모 토론도 대규모 수업도 할 수 있어야 하며 실험과 탐구가 가능한 유연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실을 재구조화하고 와이파이와 디지털 기기를 갖추고 지역사회와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복합 문화 공간처럼 학교를 바꾸는 작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가 직접 참여해 노래방과 휴식 공간을 포함한 설계를 논의한 과정도 소개했다. 그에게 학교 공간 혁신은 단순한 시설 개선이 아니라 민주주의 훈련이기도 했다. 학교를 어떻게 만들지 직접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시민 교육이라는 인식이다.

또 하나 눈에 띈 대목은 손글씨와 글쓰기의 복원이었다. 디지털 기기 활용을 무조건 부정하지는 않지만 학교 안에서는 발달 단계에 맞게 꼭 필요할 때만 기술을 쓰고 손글씨와 필기를 통해 사고를 정리하는 경험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캘리포니아가 필기 교육을 폐지한 뒤 학생들의 문해력과 사고력 저하 문제가 드러나자 다시 손글씨 수업을 의무화한 사례를 언급했다. 이는 교육이 기술의 확산 속도에 무비판적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교육은 기술 수용보다 인간 형성의 원리를 먼저 붙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터뷰 후반부에서 더 현실적인 문제도 다뤄졌다. 학부모 민원과 학교폭력 대응 그리고 교권 붕괴 문제다. 유은혜 전 장관은 이를 단순히 악성 학부모 몇 명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학교 안에 신뢰와 소통 구조가 무너지고 각 주체가 고립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코로나 시기 이후 아이들의 우울감과 고립감이 심화됐지만 그 후속 지원이 지속되지 못했고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 사이의 관계 회복 프로그램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민원119 같은 시스템을 통해 민원을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먼저 받아 교사의 직접 노출을 줄이고 법률 대응도 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학부모회와 학생자치와 교사회 같은 상시적 소통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화하지 않고 곧바로 소송으로 가는 문화 속에서는 학폭도 민원도 모두 갈등이 증폭될 뿐이라는 인식이다.

그는 특히 학생자치를 중요하게 봤다. 스마트폰 금지 같은 문제도 법으로 누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왜 수업 시간에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 학생들이 직접 토론하고 규칙을 정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학교에서 학생들이 축제 준비 회의를 하다 휴대전화 때문에 논의가 되지 않자 스스로 사용 규칙을 정하고 벌칙까지 합의했던 사례가 있다. 아이들이 자기 삶에 대한 결정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은 한국 학교가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학생 대신 해왔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유은혜 전 교육부 장관의 메시지는 하나로 정리된다. 고교학점제는 실패한 제도가 아니라 실패하게 방치된 제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은 단지 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육이 여전히 대학 서열과 수능 중심의 낡은 질서에 묶여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 교육은 기술을 쓰면서도 기술의 노예가 되고 입시를 유지하면서도 미래를 잃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학생이 무엇을 잘 외우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떤 질문을 만들며 어떤 방식으로 삶을 설계해 가는가를 평가하지 못한다면 AI 시대의 공교육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그의 고교학점제 دفاع은 단순한 과거 정책의 방어가 아니라 한국 공교육이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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