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본질은 모르지만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삶’… 그래서 소환된 실천이성[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2026. 3. 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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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채의 인문 디톡스 - (4) 너 자신을 알라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인식·윤리·미학 결합 끊어진 근대
‘순수이성비판’은 칸트적 사유의 출발점
“생각하는 내가 있다는 게 존재의 증명일 순 없다”
경험없는 오성은 허깨비, 오성없는 감각은 쓰레기
칸트, 감성과 오성을 겹쳐놓으며 둘의 결합 모색
게티이미지뱅크

1. 너 자신을 알라. 흔히 소크라테스의 말로 유명한 구절이다. 본래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벽에 박혀 있는 경구이니, 신탁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자기 분수를 잘 챙겨서 신 앞에 공손한 태도를 취하라는 말이겠다. 인간을 향한 신의 말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근대 철학의 완성자 칸트가 하고 있다면 어떨까. 인간이 자기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의 형식이라서, 이번에는 감계보다는 신의 침묵 속에서 행해지는 고백이나 청유에 가깝다. 소크라테스가 아름다운 청년 알키비아데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모쪼록 투철하게 자기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칸트는 말한다. 인간 이성의 지적 한계를 조곤조곤 논리적으로 고백하는 ‘순수이성비판’이 곧 그 기록이다.

2. 칸트 철학이 근대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한국 미인대회의 진선미 체제에서도 확인된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생긴 이래로 한국 미인의 랭킹은 진선미로 매겨진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나.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하는 대회라면 당연히 미가 가장 앞에 나와야 할 텐데 순서는 왜 또 진선미가 되었나.

칸트의 사상 체계를 떠올리면 곧바로 답이 나온다. 진선미는 칸트의 사상을 대표하는 세 이념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50대 중반 이후 그가 펴낸 세 권의 주저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이 진선미 세 영역을 담당한다. 여기에서 진선미의 서열은 책이 나온 순서에 불과할 뿐이다. 윤리의 영역을 다루는 ‘실천이성비판’이 분량은 가장 적지만 내용의 무게로는 오히려 으뜸이라고 해야 한다. 지식이나 미학 없이도 삶은 가능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 없이 삶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순수이성비판’은 가장 앞자리에 있는 것으로서, 이 세 영역을 위한 생각의 체계와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칸트의 세 비판서가 표상하는 인식, 윤리, 미학의 영역은 오랫동안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의 대표 영역이기도 하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현저하게 달라진 것은 이 셋 사이의 확고했던 결합이 끊어졌다는 점이다. 가치의 절대성이 존재하는 전통 세계에서 참된 것은 선한 것이자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어야 했다. 근대성의 출현과 함께 해체된 가치 결합체의 모습은 ‘악의 꽃’이라는 보들레르의 시집과 진화론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참된 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도 착하지도 않고, 꽃은 추악함 속에서 피어난다.

근대성의 세계 속에서 가치의 세 영역은 서로를 배척한 채로 자기 고유의 질서를 만든다. 과학과 윤리와 예술이 각자의 길을 간다. 이런 세계의 초입에서 칸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한번 따져보자. 신의 도움 없이, 인간 자신이 알 수 있는 것과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이 곧 칸트적 사유의 출발점으로서 ‘순수이성비판’이 제공하는 논리의 핵심 틀이다. 세 권의 책이 모두 비판이라는 제목을 가진 까닭도 자명하다. 인간이 지닌 이성의 여러 능력을 조목조목 따져보겠다는 뜻이다.

3. ‘순수이성비판’에 따르면 사람의 지적 능력은 네 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성, 감각 데이터에 질서를 부여하는 오성,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맥락을 만드는 판단력, 그리고 이들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것이 이성이다. 감성의 기능은 직관이고 오성의 기능은 개념화, 판단력은 판단, 이성은 추리이다. 이런 지적 능력이 인간의 인식 체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세목화해서 기술한 것이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그 이전까지 근대의 철학자들이 했던 생각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흔히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종합한 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람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까닭에 경험이 없으면 지식도 없다는 로크의 생각이 한편에 있고, 사람은 선천적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고유의 기제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라이프니츠의 생각이 반대편에 있다. 칸트는 기능적으로 구분된 감성과 오성을 겹쳐놓음으로써 이 둘을 결합한다. 그에 따르면, 공기가 없으면 비둘기가 훨씬 빠르게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공기가 없으면 아예 날 수가 없다. 감성과 오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경험 자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순수한 오성은 허깨비에 불과하고, 오성 없이 받아들여진 감각 자료들은 쓰레기더미에 지나지 않는다.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지닌 한계란 기본적으로 감각 구조가 지닌 한계에 기인한다.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볼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눈이다. 게다가 인간이 지닌 감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 일찍이 데카르트가 그런 질문을 했었다. 어떤 엄청난 힘을 가진 악마가 인류 전체를 속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누가 보장하느냐. 다만 그런 의심을 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의심할 수 없으니,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일단 인정하자고 했었다. 칸트는 반박한다. 생각하는 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나의 존재 증명일 수는 없다고. 이것이 칸트가 비판하는 오류추리의 세계이다.

또한 인간은 네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시작과 끝이 있는지 없는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영혼 같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세상의 어떤 것도 원인이 없는 결과란 없는데 이런 상태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닌지, 수많은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변치 않는 절대 필연성으로서의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세계와 영혼, 자유, 신, 이 네 항목에는 앞선 철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거니와, 무한 세계와 불가분의 영혼이라는 문제는 20세기의 물리학의 언어로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율배반의 세계이다.

4. 오류추리와 이율배반의 내용을 합해 놓으면 인간 존재의 실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은 자기가 사는 세계의 전모를 모르고, 자기 존재의 본질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인격체, 그 자신이 진짜로 존재하는지조차 확언할 수 없는 존재가 곧 인간이다. 그게 사람이다. 부디 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 어째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는 하잘것없는 존재라도 사는 데까지는 살아봐야 하지 않나. 순수이성이 정박하는 곳에서 실천이성이 출발한다. 앎과 삶, 인식과 윤리, 필연과 자유가 구분된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 오성을 통해 재구성된 세계이다. 진짜 세계는 그 너머에 있다. 그것이 곧 칸트의 용어로는 물자체의 영역이며, 사람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신도 인간의 영혼도 세계의 전모도 그 영역에 있다. 인간은 진짜 세계의 정체를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 눈앞의 삶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 요청이 필연의 반대편에 있는 자유의 세계, 실천이성의 세계를 다시 불러낸다. 물자체의 세계로 추방당했던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성이 그래서 다시 윤리 세계로 소환된다. 차갑고 냉정한 순수이성 너머에서 귀환한, 온순해서 더욱 냉정한 존재들, 칸트의 화신들이다.

문학평론가

■ 인물 설명
칸트 (1724~1804)

프로이센의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도시에서 보냈다. 46세에 그토록 바라던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철학 교수가 되었고, 11년의 침묵 끝에 대작 ‘순수이성비판’을 내놓았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까닭에 교수가 되기까지 가정교사, 강사, 도서관 사서 등의 일로 생계를 꾸려야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엄격한 생활 루틴을 지켰다. 산책하는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강의를 잘해서 베를린으로부터 초빙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쾨니히스베르크가 물산이 풍부한 항구도시라 다른 세계의 소식과 문물을 접하는 데 좋은 조건이었고,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 쾨니히스베르크는 프로이센 왕국의 초대 수도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2차 대전 후 소련에 편입되어 현재는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다. 이름도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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