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난방비 0원, 보일러 없는 집…유럽은 이미 살고 있다

가스 배관 없는 마을
히트펌프라 불리는 이 장치는 바깥 공기에서 열을 끌어와 집을 데운다. 냉장고가 내부의 열을 빨아서 외부로 내보내듯, 히트펌프는 그 반대다. 전기로 가동하는 히트펌프는 같은 양의 에너지로 가스보일러보다 2~3배 많은 열을 만들어낸다.

"저녁 한 끼보다 싼 난방비...온돌에 반해"
지금 사는 집에는 가스보일러 대신 히트펌프와 바닥난방, 지붕 위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스마트폰 앱 하나로 각 방 온도를 개별 조절한다. 아래층 24도, 위층은 방마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바닥을 밟자마자 온기가 느껴졌다. 로스포파 씨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바닥 아래에서 열이 올라오기 때문에 발이 가장 먼저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가스 배관 없이, 전기 히트펌프만으로 돌아가는 바닥난방이었다.
절약 효과는 숫자로 드러났다. 입주 첫해 9월 전기요금은 29파운드(약 5만 원). 이전 집에서 가스와 전기를 합쳐 매달 160파운드를 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겨울에는 올라가지만, 연평균으로도 이전 집보다 훨씬 적다. 로스포파 씨가 웃으며 말했다. "친구들한테 얘기했는데, 9월에 저녁 한 번 외식하는 게 한 달 집 난방비보다 더 들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폭등한 가스비, 유럽의 선택
0원 고지서, 실물을 보다
6개월째 거주 중인 프레이저 잭슨 씨가 집 안을 안내했다. 라디에이터는 전부 꺼져 있었지만 집은 따뜻했다. 나무 구조 자체가 단열재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항상 따뜻해요. 외출했다 돌아와서 다 꺼져 있어도 아주 빨리 데워져요. 그냥 편안해요."
이전 집에서 그는 매달 250~300파운드(약 45~50만 원)의 에너지 요금을 냈다. 지금은 0원이다.

잭슨 씨가 이메일로 받은 지난달 고지서를 보여줬다. 2월 한겨울이다. 난방을 가장 많이 쓰는 달인데 에너지 요금란에는 0이 찍혀 있었다. "진짜 0이네요?" 물었더니 잭슨 씨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안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잭슨 씨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고 했다. "스위치를 전환할 필요도 없고, 조명이 깜빡이는 것도 없어요. 그냥 작동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면 따뜻하고, 세탁기 돌리면 되고. 행동이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집을 발전소로 만드는 AI
기술혁신 디렉터 콜린 토머스가 구조를 설명했다. 지붕의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만든다. 배터리에 저장한다. 난방은 히트펌프로 전기화 돼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곳에서도 한다. 차이는 그다음이다.

'크라켄'이라는 AI 플랫폼이 실시간으로 개입한다. 가정의 전기 사용량뿐 아니라 전력망 전체의 생산량, 가장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전기가 공급되는 시점까지 파악해서 집 안 기기의 작동 방식을 실시간으로 바꾼다. 태양광, 배터리, 히트펌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어 집 한 채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고 저장하고 쓰는 소규모 발전소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토머스는 이렇게 요약했다. "고객들은 편안함이나 생활 방식에서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달라지는 건 고지서뿐입니다. 0원으로요."
이 플랫폼은 옥토퍼스 에너지에서 독립 분사를 추진 중이며, 기업가치 약 11조 원을 인정받았다. 전 세계 7,000만 개 이상의 계정을 관리하며, EDF·E.ON·도쿄가스 등에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제로빌 적격으로 승인된 주택은 5,000채 이상, 2030년까지 10만 채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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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이 기자 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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