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이재명 대통령과 검사 박상용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그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과 입법권을 장악한 거대 여당이, 대통령의 과거 사건을 두고 검찰에 '공소 취소'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검사한테 공소 취소를 요구하거나 여당이 입법권을 동원해 행정부(검찰)에 공소 취소를 압박하면 안 된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이들도,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도 법원에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증명받았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사저널=전영기 편집위원)
"그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
로마법 시대부터 법치주의 근간을 지탱해온 이 격언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기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국가권력의 정점에 선 대통령과 입법권을 장악한 거대 여당이, 대통령의 과거 사건을 두고 검찰에 '공소 취소'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사건의 발단은 3월4일. 필리핀을 방문 중이던 이재명 대통령은 '김성태 "이재명에 돈 안 줘…검찰 장난쳐" 녹취 나와'라는 온라인 기사가 표출된 지 49분 만에 SNS에 글을 올렸다. "증거 조작은 강도나 납치 살인보다 더 나쁜 짓"이라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조회 수는 순식간에 30만 회에 육박했다.

필리핀에서 기사 표출 49분 만에 반응
대통령의 한마디는 대선 전 자신에 대한 '대북 송금 관련 제3자 뇌물 사건' 기소가 증거 조작에 의한 것이었다는 가이드라인으로 읽혔다. 민주당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3월11일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고, 19일 국회 본회의에 올렸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친명계 그룹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를 위한 모임(공취모)'인데 이름부터 대통령이 얼마나 공소 취소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이상한 장면도 연출됐다. 김어준씨의 방송이 "이 대통령 측이 검찰과 공소 취소를 거래하려 한다"는 이른바 '공소 취소 거래설'을 제기한 것이다. 청와대는 "음모론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며 불쾌해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김씨의 주장대로, 또 그가 미는 정청래 대표 주도로 검찰의 최소한 수사 관찰권마저 배제된 강경 법안들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겉으로 화를 내는 듯해도 실상은 김어준 뜻대로 법안이 처리되는 모순된 상황이 의아스럽다. 무슨 일에서든 쿨하고 자신감 넘치는 대통령이 유독 '공소 취소' 이슈 앞에서 조급해 보이는 이유가 뭔가.
공소 취소는 증거 부족이나 법령 폐지 등 성립 요건이 매우 엄격해 선례를 찾기 어렵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검사한테 공소 취소를 요구하거나 여당이 입법권을 동원해 행정부(검찰)에 공소 취소를 압박하면 안 된다. 직권남용 혹은 삼권분립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권력 앞에 홀로 선 박상용 검사(45)의 반론은 차갑고 정교하다. 그는 수원지검 형사1부 수석검사로서 이 사건을 수사했다. 박 검사는 자신의 SNS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조작을 이유로 공소 취소를 하려면 공소장이나 판결문의 어느 부분이 조작됐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 될 수 없어"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김성태의 논란이 된 발언 내용이나 이화영의 '연어회 술파티' 주장은 애초부터 공소 사실에 들어있지 않았다. 제3자 뇌물죄 공소장의 요체는 "김성태가 북한에 건넨 300만 달러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의전 비용"이라는 점이지, 두 사람 사이의 돈 거래가 아니었다. 또한 술파티 의혹은 사실무근일 뿐 아니라, 이화영 본인의 증거 부동의로 인해 처음부터 공소장이나 유죄 판결문의 판단 대상조차 아니었다는 것. 즉,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부분들이 정작 재판의 본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진정으로 억울한 조작의 희생자라면 문명 국가가 마련한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면 된다. 바로 '재심(再審)'이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이들도,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도 법원에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증명받았다. 검찰의 공소권 행사가 부당했다면 사법부의 판단을 다시 구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정도다. 권력의 힘으로 공소장을 찢으려 해선 안 된다. 죄가 없다면 권력의 비호가 아닌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면 그만이다. 피고인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려 할 때 법치는 무너진다. 어떤 국민도 다른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특권은 정답이 아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