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챙기다 병드는 보호자…”숨 고르는 시간 가져야”
![짧은 시간이라도 보호자에게 허락된 시간 내에서 지지적으로 환자를 돌보는 것 역시 좋은 돌봄이다. [출처 Gettyimagesbank]](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20/552808-sAjZM54/20260320084039807kkhh.jpg)
치매 환자 보호자들은 매일 슬픔과 분노, 죄책감 사이를 오간다. 병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가족을 보며 슬픔이 밀려오다가도 간병에 지칠 땐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날 선 말을 쏟아낸 날이면 죄책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처럼 치매 환자 보호자들은 경제적·신체적 부담은 물론, 사랑했던 가족이 조금씩 달라져 가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정서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더군다나 치매 돌봄은 단기간에 끝나는 일이 아니기에 이러한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환자를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건강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건강은 더욱 그렇다. 고려대학교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현강 교수는 "치매 환자 보호자 10명 중 2~3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보호자가 건강해야 좋은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의 도움말로 치매 환자 보호자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살펴본다.
하루도 쉴 틈 없는 돌봄, 우울·소진으로 이어져
치매 초기에는 기억력 저하로 인해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돌봄이 시작된다. 이후 질환이 진행될수록 보호자가 챙겨야 할 영역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진다. 익숙하던 길을 헤매는 환자를 따라다니고, 병세가 깊어지면 식사는 물론 대소변 처리까지 보호자의 몫이 된다. 그렇게 보호자는 24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돌봄의 굴레 속에서 서서히 지쳐간다.
지치는 것은 몸만이 아니다. 마음도 서서히 병들어 간다. 정 교수는 "심한 치매에서는 가족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성격 변화 같은 정신행동심리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보호자 입장에서는 치매 이전에 환자와 나눠온 관계 맺음과 의사소통 방식이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한 슬픔에 돌봄 과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면서 보호자는 심리적 압박과 불안, 우울, 소진 등을 경험하기 쉽다.
문제는 보호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삶과 간병에 치이다 보면 여유롭게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내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보호자에게도, 더 나아가 환자에게도 좋지 않다. 보호자가 소진되면 돌봄의 질도 함께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소진되면 환자가 도움이 필요할 때 곁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치매 환자들은 우울, 불안, 과민함 같은 정신행동심리증상이 흔하게 나타나는데, 이떄 보호자가 먼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야 환자를 차분히 대하고 안정시킬 수 있다.
혼자보다 함께…돌봄은 나눠야 지속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다. 이 긴 여정을 끝까지 함께 걷기 위해서는 보호자가 건강해야 한다.
그 시작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환자에게 짜증이나 화를 쏟아낸 뒤 자책감에 빠지거나, 환자에 대한 원망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맴돈다면 이미 마음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거나 매사에 흥미가 없고 무기력한 느낌이 드는 것이 우울증의 핵심 증상"이라며 "이러한 증상과 함께 수면 문제나 식욕 변화까지 동반될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을 고를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보호자가 24시간 환자 곁에만 머물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다 보면 오히려 장기적인 돌봄이 어려워진다. 좋아하는 취미나 활동을 규칙적으로 즐기고 소진되기 전에 충분히 쉬어야 더 오래, 더 잘 돌볼 수 있다. 환자를 돌보는 중간중간 산책하거나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며 감정을 환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 된다.
긴 돌봄의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한 명의 보호자가 모든 돌봄을 도맡으면 처음 몇 달은 버텨낼 수 있지만 결국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 정 교수는 "가족 중 특정 한 명에게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기간을 정해 돌봄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가 장기요양서비스를 활용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거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돌봄 과정이 막막할 때는 전문 프로그램이나 자조 모임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각 지역 치매안심센터와 의료원 치매클리닉에서 운영하는 치매 가족 교실을 통해 우울, 불안, 공격성, 망상, 배회 등 치매 환자의 정신행동심리증상에 대한 대처법을 배울 수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보호자들과 소통하는 자조 모임을 통해서는 정서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현재 겪는 고통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서로 공감과 이해를 나누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처음 가족이 치매 진단을 받거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면 많은 분들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상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점점 나빠질 것만 같았던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고, 치매를 앓는 가족과 나누는 자신만의 소통 방식도 형성됩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우울, 불안, 소진을 느끼고 있다면 환자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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