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春分), 낮·밤 길이 같아지고 생명의 기운 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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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논둑에 서면 알게 된다.
20일 오후 11시46분, 태양이 황경 0도에 이르는 순간 네번째 절기 춘분(春分)이 시작된다.
태양의 길, 적도를 건너 봄의 길로 춘분은 천문학적으로 봄의 시작점이다.
서구 문명의 뿌리인 로마 제국에서도 춘분은 한 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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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는 땅에 거름 주며 농사 준비
선조들은 흐릴수록 운세 좋다 여겨
불교·기독교에서도 중요한 기준 삼아
일본·중국에선 특별한 음식 먹고 성묘

이른 아침 논둑에 서면 알게 된다. 어느샌가 흙 냄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대지가 조금씩 입을 열고, 곳곳에서 파릇한 기운이 올라온다. 이제 태양이 황도와 하늘 위의 적도를 교차하는 지점에 다다른다. 20일 오후 11시46분, 태양이 황경 0도에 이르는 순간 네번째 절기 춘분(春分)이 시작된다.
농가에서는 이 무렵을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때로 꼽는다. 완연한 봄기운 속에서도 ‘봄 추위에 장독 깨진다’는 속담처럼 갑작스러운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농가의 일년 할 일을 읊은 조선 후기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2월령은 “보쟁기 차려 놓고 춘경(春耕)을 하오리라. 살진밭 가리어서 춘모(春麰, 첫 여름에 거두는 보리)를 많이 갈고”로 이 시기 농가의 모습을 묘사했다.
조선시대 농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도 “채소·부추·오이씨 파종과 삼·대나무 재배하기” 등을 이 시기 할 일로 언급했다. 춘분 무렵은 현대에도 밭에 거름을 뿌리고 땅을 고르는 등 농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반면 이날 날씨가 지나치게 맑으면 오히려 흉조로 여겼다. 맑은 날씨는 대지의 기운을 메마르게 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여름철에 열병이 크게 돌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구름의 빛깔로도 풍흉을 가늠했는데, 푸른 구름이 보이면 충해가 적고 붉은 구름이 나타나면 가뭄이 들 것을 경계했다.

서구 문명의 뿌리인 로마 제국에서도 춘분은 한 해의 시작이었다. 로마 최초의 달력인 로물루스력은 춘분이 있는 3월을 한 해의 첫 달로 보았다. 이를 전쟁과 농경의 신 마르스의 이름을 따 ‘마르티우스(Martius)’라 불렀다. 겨울이 끝나고 전장에 나가거나 농사를 시작하는 생명력의 기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 역시 춘분을 기점으로 계산한다.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춘분 후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결정했다. 어둠을 이기고 빛이 승리하는 춘분의 상징성을 부활의 의미와 결합한 결과다.

오히간은 조상과 자연에 감사를 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이 함께 성묘를 다녀온 뒤 집 안을 청소하고, 계절이 바뀌었음을 집에 놓인 불단에 고한다.
중국에서는 춘분 정오에 달걀을 세우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수단(竪蛋)이라 한다. 달걀을 세우면 한 해 동안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또 봄 소(春牛)가 그려진 그림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돌리기도 했는데 이를 송춘우(送春牛)라 한다. 미나리 등 봄나물을 채집해 생선을 넣은 탕(春湯)을 끓여 먹고 조상의 묘에 성묘를 가기도 한다.
◇도움말=‘24절기 이야기’(한호철 지음, 지식과교양),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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