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문과생이 보면 더 뭉클하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93번째 레터는 18일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입니다. 이 영화, 재밌습니다. 가능한한 큰 화면으로 보세요. 깜깜한 우주 너머를 밝히는 인간미와 유머, 굳건한 따스함에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서실 거예요. 돌무더기 왕거미처럼 생긴 외계인을 안아주고 싶어지다니. 저도 예상 못 했습니다. 과학 원리를 엄중하게 따지는 하드SF 영화지만 공부 안 하고 보셔도 아무 지장 없습니다. 저는 소설을 먼저 읽어서 결말을 알고 봤는데, 몰랐으면 영화의 여운이 더 강했다 싶더군요. 결말은 빼고, 알고 보시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포인트 위주로 이번 레터 보내드립니다.

맷 데이먼의 영화 ‘마션’ 기억하시나요. ‘마션’의 작가 앤디 위어가 ‘마션’ 다음다음으로 발표한 소설이 ‘프로젝트 헤일메리’(2021)입니다. ‘마션’과 마찬가지로 혼자가 된 주인공이 과학 지식과 유머, 긍정과 희망으로 상황을 돌파해나갑니다. 큰 차이가 있긴 해요. 우주에서 누굴 만나거든요.
그전에 먼저, 제목부터 들어가보실까요.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 마지막 승부수를 말합니다. 1970년대 한 미식축구 선수가 패색이 짙은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공을 힘껏 던졌는데 뜻밖의 승리를 하게 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구, 저도 이럴 줄 몰랐어요, 공을 던지기 전에 성모송(헤일메리)을 빌었는데, 그 덕분인가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실화고요. 그 후로 ‘헤일메리’의 뜻이 지금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죽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프로젝트명이 헤일메리입니다. 태양을 어떤 나쁜 놈들이 먹어치우거든요. 정확하게는, 태양빛을 먹고 에너지로 저장하는 미생물인 아스트로파지가 태양 표면을 덮어버릴 정도로 번식하면서 지구가 멸망 위기에 처합니다. 아스트로파지를 어떻게 없애버릴 것인가, 과학자들이 연구에 들어갔는데 신기하게도 많고많은 별 중에 홀로 아스트로파지에 먹히지 않고 계속 빛나는 별(그 이름 타우세티)을 발견하고 거기로 우주선을 보내기로 합니다. 타우세티는 어떤 비결이 있길래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낼 용사, 우주선 헤일메리호에 탑승할 과학자가 우리의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입니다.

그레이스는 중학교 교사인데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과학자연합을 이끄는 수장 에바(산드라 휠러)에게 발탁됩니다. 라이언 고슬링의 그레이스는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다른 배우가 있을까 싶게 잘 어울려요. 일단 외로워보여서 합격.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인터스텔라’와 비교하는 글을 보실텐데,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혼자거든요. ‘인터스텔라’는 우주가 배경인 SF이긴 하지만, 가족영화이기도 합니다. 천만영화가 된 것은 아빠와 딸의 관계가 강하게 드러난 점도 있겠고요. 엄마의 집밥만큼이나 부녀의 정에도 국내 관객이 쉽게 동화합니다. 예를 들어 작년 흥행작 ‘좀비딸’.
하지만 그레이스는 혼자입니다. 흔한 친구도 한 명 없던 그를 우주로 보내려하며 에바가 하는 말이 있어요. “직계가족도 없잖아요. 기르는 개도 없고.” 헤일메리 미션은 편도거든요. 못 돌아옵니다. 왕복 연료가 없어서요. 타우세티에 가서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고 우주에서 생을 마쳐야해요. 외로운 그레이스가 우주라는 망망대해에서 만난 뜻밖의 친구가 로키(Rocky)입니다. 다리가 다섯 개 달린 외계인인데, 표면이 돌(Rock)처럼 생겨서 이름을 그레이스가 그렇게 붙였어요. 붙이고 보니 영화 ‘록키’와 같은 이름이 됐는데, 후반부에 ‘록키’ 장면도 잠시 보여주고, ‘록키’의 그녀, 에이드리언도 의미 있게 등장한답니다. 어떻게 등장하는지는 직접 보시고 확인을. 저는 ‘록키’가 제 인생 영화 중 하나라서 무척 엄청 반가웠어요.

혼자였던 그레이스는 로키를 만나고 둘이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새롭게 알게 돼요. 흔한 이야기 아니야, 하실 수 있는데, 다리 다섯의 돌무더기 외계인이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해준다면 엄청 흔한 얘기는 아니겠지요. 게다가 그 외계인이 무척 사랑스럽고 충직하다면.
영화는 편도 미션을 맡아서 떠난 그레이스가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고 우주선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하고, 그레이스가 지구의 기억을 점점 깨달아가면서 양쪽을 교차해보여줍니다.(편집을 잘해서 전혀 헷갈리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떠나기 전후 그레이스의 변화를 쉽게 보실 수 있어요. 저는 그레이스의 변화, 그리고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은 단어 ‘용기’가 와닿았습니다.
원래는 그레이스가 우주로 파견될 담당자가 아니었거든요. 지구를 구할 미션에 선발된 이들에게 그레이스가 말합니다. “어떤 유전자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나요.” 거기에 대한 선발된 이들의 답변. “유전자가 아니에요.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이 있으면 돼요.”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 살아돌아가지 못할 거대한 미션에 투입돼 홀로 우주의 어둠과 마주하며 그레이스는 뜻밖에도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정확히는 ‘사람’은 아니지만)을 만납니다. 머나먼 별에서 온 외계인 로키는 그레이스 안에 숨어있던 용기를 누구보다 알아봐주고 끌어내줍니다. “너는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용감해”라고도 말해주고요. 그레이스가 영화 후반부에 진짜 엄청난 용기를 내거든요. 어떤 용기인지, 그래서 지구는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는 영화를 직접 보시고 확인을.

영화 결말이 예상간다고 하실 수 있는데, 의외인 부분이 있어요. 그야말로 예상가능한 선택으로도 끝날 수 있었는데 약간 비틉니다. 저는 그래서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이것도 보셔야 아실 수 있는. 만약 아직 책을 안 보셨다면 영화를 먼저 보세요. 책엔 책만의 재미가 촘촘하게 들어가 있지만, 영화는 과감하게 생략한 부분이 많거든요. 대신 책은 못하고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우주를 마음껏 보여줍니다. 귀여운 로키가 떼구르르 구르는 장면처럼 눈으로 보니 즐거운 모습도 많고요.
작가가 이과(컴퓨터과학 전공)고, 그레이스와 로키도 과학자와 엔지니어로 모두 이과이다보니 전공자들이 보시면 흥분하실만한 디테일이 꽤 있습니다. 특히 책에. 그래도 비중 높은 문과 분야가 하나 나오는데 바로 언어학입니다. 외계의 존재가 소통하려면 언어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SF에 언어학이 자주 등장하죠. 에이미 애덤스가 주연한영화 ‘컨택트’에서 그녀의 직업도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레이스가 로키를 처음 만나 로키의 말을 녹음하는데 단어 250개를 채집해서 데이터로 만듭니다. 그리고 의사 소통에 성공. 학부 전공이 언어학이라, 저는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더군요. (그러면 저 말고 다른 관객은 전부 나가버리겠죠) 음성론 음운론 시간에 딴짓만 했는데 이제와서 관심이 솟다니. 상영시간 156분에 필수적인 이야기 풀어놓을 시간도 부족한테 단어 습득 과정 보여줄 짬이 어디 있겠어요. 무엇보다, 말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아서요. 언어는 수단이었을뿐, 16.3 광년 떨어져 살았기에 확률로는 제로였던 만남이 이루어진 그레이스와 로키는 말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봐준 마음으로 통하게 된거니까요.
여러분 곁에는 ‘용기를 내게 해줄 사람’이 있으신가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시면서 그 사람을 다시 떠올려보시길.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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