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장인이 묻힌 곳…‘서리풀지구’ 개발 리스크?

누적 관객 1,400만 명을 바라보는 올해 최고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세조실록을 보면, 단종은 장인 송현수의 처형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결했다고 나옵니다.
송현수는 단종의 복위를 주장했지만, 실패하고 숨진 걸로 전해집니다.
이후 200년 넘게 지난 숙종 때 단종이 복위되며 송현수도 복권됐고, 송씨 일가 후손들은 집성촌인 '송동마을(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그를 기리며 묫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송 씨 후손들이 묫자리 근처에서 묘비와 석등, 송현수의 이름이 적힌 명정(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등을 적은 기)을 발굴해 봉분을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송동마을을 포함한 우면산 인근은 정부가 2만 가구를 짓겠다며 발표한 서리풀 지구이기도 합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 당시 서울 강남 지역 '노른자 땅'인 서리풀 지구를 12년 만에 그린벨트에서 해제했습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는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며 현재 대규모 택지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 국가유산청, '여산 송 씨' 묘역추정지로 확인…"매장 유산 시굴 조사 진행해야"

송 씨 일가 집성촌인 송동마을은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재도 36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송현수 선생과 그의 아내, 아들 묘의 봉분은 마을 근처 '우면동 산 77번 일원'에 마련돼있습니다.
정부는 서리풀 1지구(1만 8,000가구)와 2지구(2,000가구)에 2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이중 (반대가 심한 곳인) 서리풀 2지구에 송동마을과 식유촌마을, 그리고 우면동 성당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 합쳐도 100가구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송동마을 주민들은 약 600년 전부터 이어온 이 마을이 사라질까, 자신들의 터전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아무런 협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규모 택지 개발을 진행한다며 '비상대책 위원회'까지 구성했는데 원하는 것은 보상도 아닌 딱 한 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은 서리풀 지구의 2% 수준으로 극히 일부니, 이곳을 제외하고 개발을 진행하라는 겁니다.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자 주민들은 송현수 일가 묘역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국가유산청에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송현수 선생과 그의 부인과 아들 묘역이 개발 구역이 포함돼 있어 훼손될 위험이 크니 사업을 막아달라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최근 정부에서 보내온 회신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조사를 진행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3일 받은 국가유산청의 답변을 보면 묘역이 있는 곳은 국가유산청에서 2021~2022년까지 '매장 유산 유존지역 고도화 사업'을 실시해 '여산송씨 묘역 추정지'를 확인한 곳이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공사 시행 전 매장 유산 시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에 대해 송동마을 주민 양형석 씨는 "유물이 출토되면 사업 계획의 수정이나 보존 결정이 불가피하다. 전례를 비춰보면 문화재가 출토되기 시작하면 사업은 전면 중단되고, 길게는 10년 이상 길어지기도 한다"며 "이 사실을 알고도 국토부가 일정을 발표했다면 국민을 기만한 '희망 고문'이고, 몰랐다면 문화유산 데이터도 확인하지 않은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습니다.
■ 국토부 "예정대로 사업 진행"…"문화재는 가장 큰 리스크"
당초 정부는 서리풀 1·2지구 모두 올 1월 지구 지정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서리풀 2지구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로 공청회도 무산되며 지연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이에 현재 1지구만 지구 지정을 마친 상태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달 중 2지구도 지구 지정을 하는 등 사업 진행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개발 초반 단계니 앞으로 주민 의견 충분히 수렴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구 지정 이후에도 계획 승인 등 여러 검토 과정이 있다. 어찌 됐든 발표한 대로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할 것"이라며 "문화재 조사나 환경영향평가, 교통 대책 등 이런 부분들은 서리풀뿐 아니라 모든 지구에도 공통으로 나오는 이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까지 감안해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도 "아직 송현수 묘역은 문화재 유산으로 지정이 되지 않은 상태로 추후 전문 기관을 통해 문화재 관련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역사적·문화적 보존 가치가 있다면 국가유산청과 협의가 이뤄진다. 이런 걸 종합적으로 고려해 토지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당초 발표한 착공 시기는 2029년, 입주는 2031년입니다. 지구 지정 이후 환경영향평가와 보상 등의 절차에서 문화재 관련 조사도 진행될 텐데 아직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 같은 문화재가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문화재가 가까이 있을 땐 사업이 상당히 유동적일 수 있다. 계획을 바꾸거나 규모를 축소하거나 사업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며 "그렇다면 사업비가 더 많이 들어가고, 수용성이 악화된다. 보통 공공택지 개발에 7~8년 정도 소요되는데 문화재 발굴은 기약할 수 없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설명했습니다.
주민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개발을 막겠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서울시의회는 주민들이 낸 민원에 대해 "보존 가치가 높은 이 마을을 제외하고 개발할 것을 요구"한다고 의결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서초구청에 해당 묘역을 '향토 유산'으로 지정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송동마을 대책위'는 "향후 감사원 감사 청구와 더불어 환경 및 역사 유적 누락을 근거로 한 행정소송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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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중 기자 (ce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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