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평양행 출발 17:26’…북·중 관계 복원 급물살

이정연 기자 2026. 3. 20.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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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열차 재개 베이징역 가보니
16일 중국 베이징역 플랫폼에 평양행 K27 열차가 정차해 있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도착역 평양·출발 시각 17:26·검표 중’

지난 16일 오후 5시 중국 베이징역 12번 플랫폼에 K27 열차가 정차해 있었다. 18개 객차 가운데 짙은 초록색인 단둥행 1~16호차와 달리 마지막 17, 18호차는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행선지 팻말에 적힌 출발역은 베이징, 도착역은 평양. 이 2량은 단둥에서 분리돼, 평양으로 향하는 열차에 연결된다. 중·조(중·북) 국제연운 여객열차는 코로나19로 2020년 1월 운행이 중단된 지 6년 만에 지난 12일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날 평양행 객차에 오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중국 국적자는 공무나 사업상 북한을 방문할 수 있지만, 여행객에게는 아직 문이 닫혀 있다. 중국 공안은 평양행 객차 앞에 경비 인원을 예닐곱명 배치한 채 평양이 아닌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을 막아섰다.

북한과 중국 간 교통 채널 복원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코로나19와 북한·러시아의 군사적 밀착에 따라 얼어붙었던 북-중 교류가 전면 복원 단계에 들어선 신호로 읽힌다. 중국 국영항공사인 에어차이나도 오는 30일부터 매주 월요일 베이징-평양 직항 노선을 운영한다. 128석 규모의 보잉 737기를 투입했고, 이코노미석은 690위안(약 15만원)이다. 예매 개시 직후 2040위안(약 44만원)에서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아직 수요가 많지 않은 걸 보여준다. 열차나 항공편 모두 중국인 여행이 허용된 뒤에야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북-중 교류 확대는 각자의 치밀한 셈법 아래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경제적 이익, 중국은 외교적 이익을 노린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자국 군인까지 파병해 러시아와 군사·경제적으로 밀착했지만, 외화벌이의 핵심은 여전히 중국이다. 중국 해관총서(세관)는 18일 올해 1~2월 북-중 교역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6% 늘어난 29억위안(약 6천억원)이라고 밝혔다. 2017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한 남성이 12일 중국 베이징역에 정차해 있는 평양행 K27 열차 앞에서 ‘베이징-평양’이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두 나라를 연결하는 이 열차는 이날 약 6년 만에 운행을 재개했다. AFP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의 트럼프 집권 2기 들어 북-미 대화 가능성이 가시화하면서 대북 영향력 회복이 필요한 터다. 최근의 교류 확대는 지난해 9월 항일전쟁·2차세계대전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전승절)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베이징에 초청해 국제 외교무대에 깜짝 등장시킨 것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 속에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 지도자를 곁에 끌어모으며 대외적으로 미국 대항 세력의 중심에 선 것을 과시했다.

북-중 교류 확대 흐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신압록강대교 개통과 여행 재개다. 신압록강대교는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평북 신의주 사이에 1943년 세워진 중조우의교를 대체할 다리로, 2014년 완공됐지만 북-중 관계의 부침 속에 개통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다리의 개통은 북-중 관계의 전면 복원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로 여겨지고 있다. 단둥 현지에선 다리가 올해 6월께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단둥의 한 상가 임대인은 한겨레에 “이쪽 사업자들은 언제든 북한에 건너갈 준비가 다 됐다”며 “지난해 말까지 대교 주변 상가의 임대 계약이 거의 다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교통·물류 전문가인 안병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연구위원은 중국 단둥시의 업무보고 내용의 변화에 주목했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업무보고에는 “신압록강대교의 국경시설이 국가검수를 통과했다”고 했는데, 올해 업무보고에는 “개통을 전력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안병민 연구위원은 “개통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과 중국 사이 ‘외교적 기념행사’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인 북한 단체관광은 언제 열릴지 미지수지만, 중국 여행사들은 오는 5월 말에서 6월 사이를 염두에 두고 여행 상품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코로나19로 중국인의 북한 여행이 중단되기 전 북한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의 95%는 중국인이었다. 단둥 여행사들은 북한 관광 상품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찍고, 북한 관광비자 발급 시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영상을 게시하는 등 북한 여행 재개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베이징/이정연 특파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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